“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가르침을 설해 주소서. 선서께서는 가르침을 설해 주소서. 눈에 티끌이 적은 중생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가르침을 듣지 못해 쇠퇴합니다. 가르침을 이해할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desetu, bhante, bhagavā dhammaṁ, desetu sugato dhammaṁ, santi sattā apparajakkhajātikā; assavanatā dhammassa parihāyanti, bhavissanti dhammassa aññātāro’ti.
디가 니까야 DN 14 대전기경 (Mahāpadānasutta)배경
세 동작으로 예를 갖춘 대범천은 같은 desetu를 써 설법을 두 번 청합니다. 첫째는 “세존이시여”라는 호격과 세존이라는 주어가 있고, 둘째는 선서를 주어로 삼으므로 두 문장의 호칭을 합치거나 세 번으로 늘리지 않습니다. 이어 눈에 티끌이 적은 중생들이 가르침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쇠퇴한다는 원인을 들고, 이해할 이들이 있을 것이라는 미래의 가능성으로 청원을 맺습니다. 요청의 강도보다 들을 조건이 있는 이들의 존재가 설법을 청하는 근거입니다.
묵상
두 번의 “설해 주소서” 다음에 듣지 못한 까닭과 이해할 이들의 가능성이 놓입니다. 누군가의 요청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자신에게 요구할 필요는 없어요. 부탁과 그 이유를 함께 들을 때 판단이 어떻게 달라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