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가르침과 집착을 즐기는 사람들

위빳시 부처가 깨달은 가르침의 여덟 성질과 사람들이 집착을 세 방식으로 즐기는 상태를 범천에게 설명함

“그때 나에게, 범천이여, 이런 생각이 들었느니라. ‘내가 깨달은 이 가르침은 깊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뛰어나며, 사유의 영역을 넘고, 미묘하여 지혜로운 이라야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집착을 즐기고, 집착을 사랑하며, 집착에 만족한다.’”

Tassa mayhaṁ, brahme, etadahosi: “adhigato kho myāyaṁ dhammo gambhīro duddaso duranubodho santo paṇīto atakkāvacaro nipuṇo paṇḍitavedanīyo. Ālayarāmā kho panāyaṁ pajā ālayaratā ālayasammuditā.

디가 니까야 DN 14 대전기경 (Mahāpadānasutta)

배경

설법을 생각했다는 답 뒤, 위빳시 부처는 마음이 달라진 근거를 범천에게 다시 들려줍니다. 가르침은 깊음·보기 어려움·깨닫기 어려움·고요함·뛰어남·사유의 영역을 넘어섬·미묘함·지혜로운 이가 앎이라는 여덟 성질로 열거됩니다. 반면 사람들은 집착을 즐기고 사랑하며 만족한다는 세 표현으로 묘사됩니다. 어려운 대상과 그것을 받아들일 사람들의 현재 성향이 맞물리며, 다음의 두 “보기 어려운 것”을 설명할 토대가 됩니다. 뒤의 같은 후렴 2회는 앞서 온전히 제시된 문장을 그대로 되풀이하므로, 같은 말을 거듭 적지 않고 이 흐름을 이어 읽습니다.

묵상

가르침의 여덟 성질과 집착을 즐기는 세 표현이 한 생각 안에서 마주합니다.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할 부류로 나눌 필요는 없어요. 어려움이 내용과 듣는 조건 양쪽에 있다는 점은 어떻게 다가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