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푸른 수련 못이나 붉은 연꽃 못이나 흰 연꽃 못에서, 어떤 푸른 수련·붉은 연꽃·흰 연꽃은 물에서 나고 자라 물 위로 오르지 못한 채 물속에서 자라고, 어떤 세 꽃은 물에서 나고 자라 수면에 머물며, 어떤 세 꽃은 물에서 나고 자라 물 위로 솟아 물에 젖지 않고 서 있는 것과 같다.
Seyyathāpi nāma uppaliniyaṁ vā paduminiyaṁ vā puṇḍarīkiniyaṁ vā appekaccāni uppalāni vā padumāni vā puṇḍarīkāni vā udake jātāni udake saṁvaḍḍhāni udakānuggatāni anto nimuggaposīni. Appekaccāni uppalāni vā padumāni vā puṇḍarīkāni vā udake jātāni udake saṁvaḍḍhāni samodakaṁ ṭhitāni. Appekaccāni uppalāni vā padumāni vā puṇḍarīkāni vā udake jātāni udake saṁvaḍḍhāni udakā accuggamma ṭhitāni anupalittāni udakena.
디가 니까야 DN 14 대전기경 (Mahāpadānasutta)배경
다섯 대립쌍을 본 뒤 하나의 긴 비유가 이어집니다. 푸른 수련·붉은 연꽃·흰 연꽃의 세 종류가 첫 무리에서는 물 아래 잠긴 채 자라고, 둘째 무리에서는 수면에 머물며, 셋째 무리에서는 물 위로 솟아 물에 젖지 않고 섭니다. 빠알리는 세 단계마다 꽃 세 종류와 물에서 나고 자랐다는 조건을 되풀이합니다. 한국어는 둘째와 셋째에서 “세 꽃”으로 받되 수량과 위치를 모두 보존했으며, 이 차이를 사람의 고정된 가치 서열로 확장하지 않습니다.
묵상
물 아래, 수면, 물 위라는 세 위치 가운데 어느 장면이 가장 선명하게 그려지나요? 자신을 특정한 꽃무리에 배정하거나 성장 정도를 평가할 필요는 없어요. 같은 물에서 서로 다르게 선 모습은 어떻게 보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