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수행자들이여, 그 대범천은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이의 마음속 생각을 알고 게송으로 말했다. “바위산 꼭대기에 선 사람이 사방의 사람들을 바라보듯, 지혜로운 분, 두루 보는 분이시여, 가르침으로 된 누각에 오르소서. 슬픔을 벗어난 분께서는 태어남과 늙음에 짓눌려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굽어보소서.”
Atha kho so, bhikkhave, mahābrahmā vipassi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cetasā cetoparivitakkamaññāya vipassiṁ bhagavantaṁ arahantaṁ sammāsambuddhaṁ gāthāhi ajjhabhāsi: ‘Sele yathā pabbatamuddhaniṭṭhito, Yathāpi passe janataṁ samantato; Tathūpamaṁ dhammamayaṁ sumedha, Pāsādamāruyha samantacakkhu; Sokāvatiṇṇaṁ janatamapetasoko, Avekkhassu jātijarābhibhūtaṁ.
디가 니까야 DN 14 대전기경 (Mahāpadānasutta)배경
중생들의 차이를 본 뒤 대범천은 위빳시 부처의 생각을 알고 게송 청원을 시작합니다. 바위산 꼭대기에 선 사람이 사방을 보는 장면은 지혜로운 분이자 두루 보는 분이 가르침으로 된 누각에 오른다는 비유로 대응됩니다. 이어 슬픔을 벗어난 부처와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대조하고, 사람들의 상태에는 태어남과 늙음에 짓눌렸다는 원인을 붙입니다. 누각은 높은 관찰 지점을 나타내는 게송의 이미지이며, 다음 연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설해 달라는 직접 청원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바위산 꼭대기와 가르침의 누각은 모두 사방을 보는 높이를 만듭니다. 자신이 슬픔의 어느 자리에 있는지 분류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거리를 두고 넓게 보는 일이 연민과 어떻게 이어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