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빳시의 가르침을 듣고 집착 없이 마음이 풀려나다

위빳시 부처가 두 사람을 보여 주고 받아들이게 하며 북돋고 기쁘게 한 뒤 형성된 것의 결함과 열반의 이익을 밝힘

위빳시 세존, 아라한,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이는 가르침에 관한 이야기로 그들에게 보여 주고, 받아들이게 하고, 북돋고, 기쁘게 했다. 형성된 것들의 위험·비천함·오염과 열반의 이익을 밝혔다. 그들이 이처럼 가르침을 받는 동안, 오래지 않아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마음이 번뇌들에서 풀려났다.

Te vipassī bhagavā arahaṁ sammāsambuddho dhammiyā kathāya sandassesi samādapesi samuttejesi sampahaṁsesi; saṅkhārānaṁ ādīnavaṁ okāraṁ saṅkilesaṁ nibbāne ānisaṁsaṁ pakāsesi. Tesaṁ vipassinā bhagav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dhammiyā kathāya sandassiyamānānaṁ samādapiyamānānaṁ samuttejiyamānānaṁ sampahaṁsiyamānānaṁ nacirasseva anupādāya āsavehi cittāni vimucciṁsu.

디가 니까야 DN 14 대전기경 (Mahāpadānasutta)

배경

두 사람이 출가와 구족계를 얻은 뒤 위빳시 부처의 가르침은 계속됩니다. 가르침의 이야기는 보여 주기·받아들이게 하기·북돋기·기쁘게 하기의 네 작용으로 묘사됩니다. 내용은 형성된 것들의 위험·비천함·오염이라는 세 결함과 열반의 이익입니다. 마지막 문장은 앞의 네 동사를 수동 진행형으로 되받아, 바로 그렇게 가르침을 받는 동안 오래지 않아 두 사람의 마음들이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번뇌들에서 풀려났다고 인과를 닫습니다. 설법의 방식과 내용, 결과가 한 흐름으로 연결됩니다.

묵상

네 가지 가르침의 작용, 형성된 것의 세 결함, 한 가지 이익 뒤에 마음의 풀림이 옵니다. 해탈을 성취해야 한다고 자신을 몰지 않아도 괜찮아요. 이해를 돕는 말 가운데 보여 줌과 격려는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