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요소는 안에도 밖에도 있느니라.
몸 안의 땅 요소란 단단하고 굳어 취해진 것이니,
머리털·몸털·손발톱·치아·피부·살·힘줄·뼈·골수·콩팥·
심장·간·횡격막·지라·허파·창자·장간막·위 내용물·똥과
그 밖에 몸 안의 단단하고 굳은 모든 것이니라.”
Katamā ca, bhikkhu, pathavīdhātu? Pathavīdhātu siyā ajjhattikā siyā bāhirā. Katamā ca, bhikkhu, ajjhattikā pathavīdhātu? Yaṁ ajjhattaṁ paccattaṁ kakkhaḷaṁ kharigataṁ upādinnaṁ, seyyathidaṁ—kesā lomā nakhā dantā taco maṁsaṁ nhāru aṭṭhi aṭṭhimiñjaṁ vakkaṁ hadayaṁ yakanaṁ kilomakaṁ pihakaṁ papphāsaṁ antaṁ antaguṇaṁ udariyaṁ karīsaṁ, yaṁ vā panaññampi kiñci ajjhattaṁ paccattaṁ kakkhaḷaṁ kharigataṁ upādinnaṁ—
맛지마 니까야 MN 140 요소 분석경 (Dhātuvibhaṅgasutta) 배경
몸 안의 땅 요소는 딱딱하고 단단한 성질입니다. 부처님은 머리털과 몸털에서 시작해 손발톱, 치아, 피부, 살, 힘줄, 뼈와 골수, 콩팥, 심장, 간, 횡격막, 지라, 허파, 창자와 장간막, 위의 내용물과 똥까지 구체적으로 열거하십니다. 보기 좋은 부분만 몸이라고 고르는 대신 안의 기관과 배설물까지 같은 단단함으로 봅니다. 열거되지 않은 몸 안의 모든 굳은 것도 포함됩니다. 몸의 외양을 자아로 붙드는 시선을 성질의 관찰로 바꾸는 분해입니다.
묵상
몸의 겉모습만 나라고 여기며 좋아하거나 싫어하나요? 머리털부터 뼈와 내장과 배설물까지 모두 같은 단단함의 요소로 본다면, 몸을 미워하지 않으면서 외모를 자아로 붙드는 힘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이것을 몸 안의 땅 요소라 하느니라.
안의 땅과 밖의 땅은 그저 땅 요소일 뿐이니, 바른 지혜로 보라.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나는 이것이 아니며, 나의 자아가 아니다.’
그렇게 보면 땅 요소에 싫증 내어 마음이 집착을 떠나느니라.
물 요소도 안과 밖에 있느니라. 몸 안의 물 요소란 무엇인가?”
ayaṁ vuccati, bhikkhu, ajjhattikā pathavīdhātu. Yā ceva kho pana ajjhattikā pathavīdhātu yā ca bāhirā pathavīdhātu pathavīdhāturevesā. ‘Taṁ netaṁ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evametaṁ yathābhūtaṁ sammappaññāya daṭṭhabbaṁ. Evametaṁ yathābhūtaṁ sammappaññāya disvā pathavīdhātuyā nibbindati, pathavīdhātuyā cittaṁ virājeti. Katamā ca, bhikkhu, āpodhātu? Āpodhātu siyā ajjhattikā siyā bāhirā. Katamā ca, bhikkhu, ajjhattikā āpodhātu?
맛지마 니까야 MN 140 요소 분석경 (Dhātuvibhaṅgasutta) 배경
몸 안의 단단함과 바깥 사물의 단단함은 본질적으로 같은 땅 요소입니다. 경계는 편의를 위한 것이지 안쪽만 특별한 자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내 것이 아니다, 내가 아니다,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는 세 관찰로 소유·동일시·실체화를 끊습니다. 그 결과 땅 요소를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영원한 나를 찾던 마음이 싫증 내어 집착에서 멀어집니다. 같은 관찰은 이어지는 물 요소에도 적용되며, 안과 밖의 물을 구별한 뒤 몸 안의 물을 묻습니다.
묵상
몸의 단단함과 바깥 물질의 단단함을 전혀 다른 것으로 여기나요? 둘을 같은 땅 요소로 보고 내 것·나·자아라는 세 관계를 하나씩 내려놓으면, 몸을 통제하려는 긴장과 돌보는 책임은 어떻게 구별될까요?
“몸 안에서 물이고 물의 성질로 취해진 것은
쓸개즙·가래·고름·피·땀·지방·눈물·기름기·침·콧물·
관절액·오줌과 그 밖의 모든 액체이니라.
안팎의 물은 그저 물 요소일 뿐이니, ‘내 것·나·자아가 아니다’라고
바로 보라. 그러면 물 요소에 싫증 내어 마음이 집착을 떠나느니라.”
Yaṁ ajjhattaṁ paccattaṁ āpo āpogataṁ upādinnaṁ seyyathidaṁ—pittaṁ semhaṁ pubbo lohitaṁ sedo medo assu vasā kheḷo siṅghāṇikā lasikā muttaṁ, yaṁ vā panaññampi kiñci ajjhattaṁ paccattaṁ āpo āpogataṁ upādinnaṁ—ayaṁ vuccati, bhikkhu, ajjhattikā āpodhātu. Yā ceva kho pana ajjhattikā āpodhātu yā ca bāhirā āpodhātu āpodhāturevesā. ‘Taṁ netaṁ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evametaṁ yathābhūtaṁ sammappaññāya daṭṭhabbaṁ. Evametaṁ yathābhūtaṁ sammappaññāya disvā āpodhātuyā nibbindati, āpodhātuyā cittaṁ virājeti.
맛지마 니까야 MN 140 요소 분석경 (Dhātuvibhaṅgasutta) 배경
몸 안의 물 요소는 흐르고 젖고 응집하는 모든 성질입니다. 쓸개즙, 가래, 고름, 피, 땀, 지방, 눈물, 기름기, 침, 콧물, 관절액, 오줌과 그 밖의 모든 몸 안 액체가 포함됩니다. 평소에는 일부를 귀하게 여기고 일부를 불결하다고 밀어내지만, 요소로 보면 모두 같은 물의 성질입니다. 몸 안의 물과 바깥의 물도 결국 하나의 물 요소입니다. 이 사실을 내 것·나·나의 자아가 아니라고 바로 보아, 액체의 변화 속에서 자아를 찾던 마음을 떠나게 합니다.
묵상
피와 눈물은 특별하게 여기면서 땀과 콧물과 오줌은 나와 무관한 듯 밀어내나요? 몸 안팎의 액체를 같은 물 요소로 보면, 깨끗함과 더러움에 기대어 자신을 판단하는 습관은 어떻게 느슨해질까요?
“불 요소는 안에도 밖에도 있느니라.
몸 안의 불 요소란 몸을 덥히고 늙게 하며,
열병으로 달아오르게 하고,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본 것을
알맞게 소화시키는 열이니라.
그 밖에 몸 안에서 불의 성질로 취해진 모든 것도 그러하니라.”
Katamā ca, bhikkhu, tejodhātu? Tejodhātu siyā ajjhattikā siyā bāhirā. Katamā ca, bhikkhu, ajjhattikā tejodhātu? Yaṁ ajjhattaṁ paccattaṁ tejo tejogataṁ upādinnaṁ, seyyathidaṁ—yena ca santappati, yena ca jīrīyati, yena ca pariḍayhati, yena ca asitapītakhāyitasāyitaṁ sammā pariṇāmaṁ gacchati, yaṁ vā panaññampi kiñci ajjhattaṁ paccattaṁ tejo tejogataṁ upādinnaṁ—
맛지마 니까야 MN 140 요소 분석경 (Dhātuvibhaṅgasutta) 배경
불 요소는 불꽃만이 아니라 몸 안에서 작용하는 열입니다.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힘, 세월과 함께 몸을 늙게 하는 변화, 열병 때 몸을 달아오르게 하는 열,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본 것을 소화하는 기능이 모두 포함됩니다. 이 네 작용 밖에도 몸 안에서 열의 성질로 취해진 것은 모두 불 요소입니다. 건강할 때의 온기와 아플 때의 열을 서로 다른 자아의 표지로 보지 않고, 조건에 따라 변하는 같은 요소로 관찰합니다. 몸의 생리 작용을 소유자의 명령이 아니라 자연의 과정으로 보는 시야입니다.
묵상
몸의 온기와 소화가 늘 내 뜻대로 움직여야 한다고 기대하나요? 따뜻함·노화·열병·소화를 하나의 변하는 불 요소로 본다면, 몸이 달라질 때 생기는 두려움과 돌봄의 태도는 어떻게 구별될까요?
“이것을 몸 안의 불 요소라 하느니라.
안의 불과 밖의 불은 그저 불 요소일 뿐이니,
‘내 것·나·자아가 아니다’라고 바르게 보라.
그렇게 보면 불 요소에 싫증 내어 마음이 집착을 떠나느니라.
바람 요소도 안과 밖에 있느니라. 몸 안의 바람 요소란 무엇인가?”
ayaṁ vuccati, bhikkhu, ajjhattikā tejodhātu. Yā ceva kho pana ajjhattikā tejodhātu yā ca bāhirā tejodhātu tejodhāturevesā. ‘Taṁ netaṁ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evametaṁ yathābhūtaṁ sammappaññāya daṭṭhabbaṁ. Evametaṁ yathābhūtaṁ sammappaññāya disvā tejodhātuyā nibbindati, tejodhātuyā cittaṁ virājeti. Katamā ca, bhikkhu, vāyodhātu? Vāyodhātu siyā ajjhattikā siyā bāhirā. Katamā ca, bhikkhu, ajjhattikā vāyodhātu?
맛지마 니까야 MN 140 요소 분석경 (Dhātuvibhaṅgasutta) 배경
몸을 덥히고 소화하는 안의 열과 바깥의 불은 모두 같은 불 요소입니다. 몸 안에서 일어난다고 해서 내 소유나 자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 것이 아니고, 내가 아니며, 나의 자아가 아니라고 바른 지혜로 보면 불 요소에 대한 집착이 식습니다. 이어 부처님은 바람 요소로 넘어갑니다. 바람 역시 몸 안과 밖에 있으며, 다음에는 위아래로 흐르는 바람과 배와 창자 속의 바람, 팔다리를 도는 움직임, 들숨과 날숨을 구체적으로 살핍니다. 동일한 세 부정이 움직임에도 적용될 준비입니다.
묵상
몸 안의 열은 나이고 바깥의 불은 남이라고 단단히 가르나요? 둘을 같은 불 요소로 보며 소유·동일시·자아화를 놓은 뒤, 호흡과 몸의 움직임도 같은 방식으로 관찰하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몸 안의 바람 요소란 위로 오르는 바람, 아래로 내려가는 바람,
배와 창자 속의 바람, 팔다리를 두루 도는 바람,
들숨과 날숨과 그 밖의 모든 움직임이니라.
안팎의 바람은 그저 바람 요소일 뿐이니, ‘내 것·나·자아가 아니다’라고
바로 보라. 그러면 바람 요소에 싫증 내어 마음이 떠나느니라.”
Yaṁ ajjhattaṁ paccattaṁ vāyo vāyogataṁ upādinnaṁ, seyyathidaṁ—uddhaṅgamā vātā adhogamā vātā kucchisayā vātā koṭṭhāsayā vātā aṅgamaṅgānusārino vātā assāso passāso iti, yaṁ vā panaññampi kiñci ajjhattaṁ paccattaṁ vāyo vāyogataṁ upādinnaṁ—ayaṁ vuccati, bhikkhu, ajjhattikā vāyodhātu. Yā ceva kho pana ajjhattikā vāyodhātu yā ca bāhirā vāyodhātu vāyodhāturevesā. ‘Taṁ netaṁ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evametaṁ yathābhūtaṁ sammappaññāya daṭṭhabbaṁ. Evametaṁ yathābhūtaṁ sammappaññāya disvā vāyodhātuyā nibbindati, vāyodhātuyā cittaṁ virājeti.
맛지마 니까야 MN 140 요소 분석경 (Dhātuvibhaṅgasutta) 배경
바람 요소는 몸 안의 움직임과 압력입니다. 위로 오르고 아래로 내려가는 바람, 배와 창자 속의 바람, 팔다리를 따라 흐르는 움직임, 들숨과 날숨이 모두 포함됩니다. 이 밖의 몸 안 움직임도 바람의 성질입니다. 호흡은 매우 친밀하게 느껴지지만 바깥 공기와 끊어진 내 소유물이 아닙니다. 안과 밖의 바람은 하나의 요소이며, 내 것·나·자아가 아니라는 세 관찰을 적용합니다. 움직임을 억누르지 않으면서 그 속에 영속하는 주인을 세우지 않을 때 마음은 집착에서 멀어집니다.
묵상
호흡과 몸의 움직임을 내가 완전히 지배한다고 여기나요? 들숨과 날숨이 안팎을 오가고 여러 움직임이 조건에 따라 일어남을 보면, 숨을 붙들지 않으면서도 세심히 돌보는 평온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공간 요소는 안에도 밖에도 있느니라.
몸 안의 공간 요소란 귀의 구멍·콧구멍·입,
음식과 음료가 들어가고 머물다 아래로 나가는 빈 곳과,
그 밖에 살과 피가 닿지 않은 몸 안의 모든 틈과 구멍이니라.”
Katamā ca, bhikkhu, ākāsadhātu? Ākāsadhātu siyā ajjhattikā siyā bāhirā. Katamā ca, bhikkhu, ajjhattikā ākāsadhātu? Yaṁ ajjhattaṁ paccattaṁ ākāsaṁ ākāsagataṁ upādinnaṁ, seyyathidaṁ—kaṇṇacchiddaṁ nāsacchiddaṁ mukhadvāraṁ yena ca asitapītakhāyitasāyitaṁ ajjhoharati, yattha ca asitapītakhāyitasāyitaṁ santiṭṭhati, yena ca asitapītakhāyitasāyitaṁ adhobhāgaṁ nikkhamati, yaṁ vā panaññampi kiñci ajjhattaṁ paccattaṁ ākāsaṁ ākāsagataṁ aghaṁ aghagataṁ vivaraṁ vivaragataṁ asamphuṭṭhaṁ maṁsalohitehi upādinnaṁ—
맛지마 니까야 MN 140 요소 분석경 (Dhātuvibhaṅgasutta) 배경
공간 요소는 아무것도 없다는 추상이 아니라 몸의 구조를 가능하게 하는 빈 곳입니다. 귀의 구멍, 콧구멍, 입, 먹고 마신 것이 들어가는 통로, 음식이 머무는 자리, 아래로 배출되는 통로가 열거됩니다. 살과 피로 채워지지 않은 몸 안의 모든 구멍과 틈도 포함됩니다. 단단한 부분만 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빈 공간이 없으면 듣고 숨 쉬고 먹고 배설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은 차 있는 것과 빈 것을 함께 요소로 보게 하여, 몸을 하나의 고정된 덩어리로 보는 습관을 느슨하게 하십니다.
묵상
채워진 부분만 중요하고 빈 곳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나요? 귀·코·입과 소화 통로의 공간이 삶을 가능하게 함을 보면, 몸과 마음에서 비워 둔 자리의 가치를 어떻게 새롭게 볼 수 있을까요?
“이것을 몸 안의 공간 요소라 하느니라.
안의 공간과 밖의 공간은 그저 공간 요소일 뿐이니,
바른 지혜로 보라.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나는 이것이 아니며, 나의 자아가 아니다.’
그렇게 보면 공간 요소에 싫증 내어 마음이 집착을 떠나느니라.”
ayaṁ vuccati, bhikkhu, ajjhattikā ākāsadhātu. Yā ceva kho pana ajjhattikā ākāsadhātu yā ca bāhirā ākāsadhātu ākāsadhāturevesā. ‘Taṁ netaṁ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evametaṁ yathābhūtaṁ sammappaññāya daṭṭhabbaṁ. Evametaṁ yathābhūtaṁ sammappaññāya disvā ākāsadhātuyā nibbindati, ākāsadhātuyā cittaṁ virājeti.
맛지마 니까야 MN 140 요소 분석경 (Dhātuvibhaṅgasutta) 배경
몸의 구멍과 통로라는 안의 공간과 몸 밖의 넓은 공간은 모두 같은 공간 요소입니다. 피부의 경계가 공간을 내 것과 남의 것으로 바꾸지는 않습니다. 부처님은 앞의 네 요소와 마찬가지로 내 것이 아니고, 내가 아니며, 나의 자아가 아니라고 세 관계를 바로 보게 하십니다. 그러면 공간 자체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빈 곳에까지 자아를 투사하던 집착이 식습니다. 다섯 물질 요소를 모두 안과 밖에서 하나로 본 뒤, 남는 의식 요소와 느낌의 조건을 살피는 단계로 넘어갑니다.
묵상
몸의 경계 안에 있는 공간까지 내 소유라고 느끼나요? 안팎의 공간이 하나의 요소임을 보고 내 것·나·자아라는 세 생각을 놓는다면, 몸의 경계와 바깥 세계를 대하는 긴장은 어떻게 달라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