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자시여, 이렇게 노래하자 밧다 수리야왓짜사는 제게 말했습니다. ‘벗이여, 나는 그 세존을 직접 뵌 적이 없습니다. 다만 삼십삼천 신들의 수담마 회당에서 춤추러 갔을 때 그 세존에 관해 들었습니다. 벗이여, 그대가 그 세존을 칭송하니 오늘 우리의 만남이 이루어져도 좋습니다.’ 존자시여, 바로 그때 그 자매와 만났고, 그 뒤로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Evaṁ vutte, bhante, bhaddā sūriyavacchasā maṁ etadavoca: ‘na kho me, mārisa, so bhagavā sammukhā diṭṭho, api ca sutoyeva me so bhagavā devānaṁ tāvatiṁsānaṁ sudhammāyaṁ sabhāyaṁ upanaccantiyā. Yato kho tvaṁ, mārisa, taṁ bhagavantaṁ kittesi, hotu no ajja samāgamo’ti. Soyeva no, bhante, tassā bhaginiyā saddhiṁ samāgamo ahosi. Na ca dāni tato pacchā”ti.
디가 니까야 DN 21 제석문경 (Sakkapañhasutta)배경
노래가 끝난 뒤 비로소 밧다의 직접 응답이 나옵니다. 그는 빤짜시카를 “벗이여”라고 두 번 부르고, 세존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수담마 회당에서 춤출 때 들었다고 구별합니다. 이어 세존을 칭송했기 때문에 오늘 만나도 좋다고 말합니다. 빤짜시카는 세존께 이 일을 보고하며 “존자시여”를 두 번 쓰고, 만남은 바로 그때 한 번뿐이며 이후에는 없었다고 부정합니다. 구애의 결과를 과장하지 않고 상대의 말과 실제 만남의 한계를 함께 밝히는 결론입니다.
묵상
상대의 응답이 내 기대와 일부만 맞을 때 그 범위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가요? 한 번의 만남과 그 뒤의 부재를 덧붙인 말에서 어떤 정직함이 느껴지나요? 그 말은 어떻게 들리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