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과 느낌에서 맑은 평온으로

접촉에 따라 생기고 멎는 세 느낌을 알아차리고, 맑고 유연한 평온마저 조건 지어진 것으로 봅니다.

“그 뒤에는 맑고 밝은 의식만 남느니라. 그 의식은 즐거움·괴로움·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을 아느니라. 즐거움을 주는 접촉에 기대어 즐거운 느낌이 생기면 ‘즐거운 느낌을 느낀다’고 알고, 그 접촉이 멎으면 거기서 생긴 즐거운 느낌도 멎고 가라앉는다고 아느니라.”

Athāparaṁ viññāṇaṁyeva avasissati parisuddhaṁ pariyodātaṁ. Tena ca viññāṇena kiṁ vijānāti? ‘Sukhan’tipi vijānāti, ‘dukkhan’tipi vijānāti, ‘adukkhamasukhan’tipi vijānāti. Sukhavedaniyaṁ, bhikkhu, phassaṁ paṭicca uppajjati sukhā vedanā. So sukhaṁ vedanaṁ vedayamāno ‘sukhaṁ vedanaṁ vedayāmī’ti pajānāti. ‘Tasseva sukhavedaniyassa phassassa nirodhā yaṁ tajjaṁ vedayitaṁ sukhavedaniyaṁ phassaṁ paṭicca uppannā sukhā vedanā sā nirujjhati, sā vūpasammatī’ti pajānāti.

맛지마 니까야 MN 140 요소 분석경 (Dhātuvibhaṅgasutta)

배경

다섯 물질 요소에서 자아 집착이 식으면 맑고 밝은 의식 요소를 살핍니다. 의식은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구별해 압니다. 먼저 즐거운 느낌은 즐거움을 경험하게 하는 접촉에 의존하여 생깁니다. 수행자는 느낌이 일어날 때 그것을 즐거운 느낌이라고 분명히 알고, 그 접촉이 멎으면 거기에 맞추어 생긴 느낌도 멎고 가라앉는다고 압니다. 즐거움을 부정하지 않되 원인 없이 지속되는 소유물로 여기지 않는 지혜입니다.

묵상

즐거운 느낌이 생기면 오래 붙들 수 있는 내 것이라고 여기나요? 어떤 접촉에 기대어 생겼고 그 접촉이 멎으면 함께 가라앉는다는 것을 몸에서 확인한다면, 즐거움을 누리는 방식은 어떻게 더 가벼워질까요?

“괴로움을 주는 접촉에 기대어 괴로운 느낌이 생기면 ‘괴로운 느낌을 느낀다’고 알고, 접촉이 멎으면 그 느낌도 멎고 가라앉는다고 아느니라. 중성 느낌이 생기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낀다’고 알고, 그 접촉이 멎으면 거기서 생긴 느낌도 멎는다고 아느니라.”

Dukkhavedaniyaṁ, bhikkhu, phassaṁ paṭicca uppajjati dukkhā vedanā. So dukkhaṁ vedanaṁ vedayamāno ‘dukkhaṁ vedanaṁ vedayāmī’ti pajānāti. ‘Tasseva dukkhavedaniyassa phassassa nirodhā yaṁ tajjaṁ vedayitaṁ dukkhavedaniyaṁ phassaṁ paṭicca uppannā dukkhā vedanā sā nirujjhati, sā vūpasammatī’ti pajānāti. Adukkhamasukhavedaniyaṁ, bhikkhu, phassaṁ paṭicca uppajjati adukkhamasukhā vedanā. So adukkhamasukhaṁ vedanaṁ vedayamāno ‘adukkhamasukhaṁ vedanaṁ vedayāmī’ti pajānāti. ‘Tasseva adukkhamasukhavedaniyassa phassassa nirodhā yaṁ tajjaṁ vedayitaṁ adukkhamasukhavedaniyaṁ phassaṁ paṭicca uppannā adukkhamasukhā vedanā sā nirujjhati, sā vūpasammatī’ti pajānāti.

맛지마 니까야 MN 140 요소 분석경 (Dhātuvibhaṅgasutta)

배경

괴로운 느낌과 중성 느낌도 즐거운 느낌과 같은 조건의 법칙을 따릅니다. 괴로움을 경험하게 하는 접촉 때문에 괴로운 느낌이 일어나면 “괴로운 느낌을 느낀다”고 분명히 알고, 접촉이 멎을 때 그 느낌도 멎는다고 압니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일어날 때에도 그 느낌을 실제로 느끼고 있음을 알고, 알맞은 접촉의 소멸과 함께 가라앉는다고 압니다. 세 느낌 가운데 중성 느낌은 쉽게 놓치기 쉽지만 예외가 아닙니다. 느낌의 종류마다 생김·경험의 알아차림·멎음의 세 단계를 온전히 봅니다.

묵상

괴로운 느낌은 영원할 듯 두려워하고 중성 느낌은 없는 듯 지나치나요? 두 느낌이 각각 접촉에 기대어 생기고 멎는 과정을 알아차리면, 불편함을 밀어내거나 무감각에 빠지는 습관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두 나무토막을 맞대어 비비면 열과 불이 생기지만, 둘을 떼어 놓으면 거기서 생긴 열도 멎고 가라앉느니라. 그처럼 즐거운 접촉에 기대어 즐거운 느낌이 생기면 ‘즐거운 느낌을 느낀다’고 알고, 접촉이 멎으면 그 느낌도 멎고 가라앉는다고 아느니라.”

Seyyathāpi, bhikkhu, dvinnaṁ kaṭṭhānaṁ saṅghaṭṭā samodhānā usmā jāyati, tejo abhinibbattati, tesaṁyeva dvinnaṁ kaṭṭhānaṁ nānābhāvā vinikkhepā yā tajjā usmā sā nirujjhati, sā vūpasammati; evameva kho, bhikkhu, sukhavedaniyaṁ phassaṁ paṭicca uppajjati sukhā vedanā. So sukhaṁ vedanaṁ vedayamāno ‘sukhaṁ vedanaṁ vedayāmī’ti pajānāti. ‘Tasseva sukhavedaniyassa phassassa nirodhā yaṁ tajjaṁ vedayitaṁ sukhavedaniyaṁ phassaṁ paṭicca uppannā sukhā vedanā sā nirujjhati, sā vūpasammatī’ti pajānāti.

맛지마 니까야 MN 140 요소 분석경 (Dhātuvibhaṅgasutta)

배경

부처님은 느낌의 조건성을 두 나무토막의 비유로 다시 보여 주십니다. 두 나무를 맞대어 비빌 때 열과 불이 생기지만, 서로 떼어 놓으면 그 만남에 의존한 열도 더는 지속되지 않습니다. 즐거운 느낌 역시 접촉이라는 만남에 기대어 생깁니다. 수행자는 즐거운 느낌이 있는 동안 그것을 정확히 알고, 해당 접촉이 멎으면 느낌도 멎고 가라앉는다고 압니다. 느낌은 무에서 솟는 나의 본질도 아니고 억지로 없애야 할 적도 아니라, 조건이 모이고 흩어질 때 생멸하는 현상입니다.

묵상

즐거운 느낌이 사라질 때 빼앗겼다고 느끼나요? 두 나무의 만남에서 생긴 열처럼 접촉에서 생겨 조건이 풀리면 멎는다고 본다면, 즐거움을 붙들기 위한 조급한 행동을 어디에서 멈출 수 있을까요?

“괴로운 접촉에 기대어 괴로운 느낌이 생기면 그 느낌을 분명히 알고, 접촉이 멎으면 느낌도 멎느니라. 중성의 접촉에 기대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생기면 그 느낌을 분명히 알고, 접촉이 멎으면 거기서 생긴 느낌도 멎고 가라앉는다고 아느니라.”

Dukkhavedaniyaṁ, bhikkhu, phassaṁ paṭicca uppajjati dukkhā vedanā. So dukkhaṁ vedanaṁ vedayamāno ‘dukkhaṁ vedanaṁ vedayāmī’ti pajānāti. ‘Tasseva dukkhavedaniyassa phassassa nirodhā yaṁ tajjaṁ vedayitaṁ dukkhavedaniyaṁ phassaṁ paṭicca uppannā dukkhā vedanā sā nirujjhati, sā vūpasammatī’ti pajānāti. Adukkhamasukhavedaniyaṁ, bhikkhu, phassaṁ paṭicca uppajjati adukkhamasukhā vedanā. So adukkhamasukhaṁ vedanaṁ vedayamāno ‘adukkhamasukhaṁ vedanaṁ vedayāmī’ti pajānāti. ‘Tasseva adukkhamasukhavedaniyassa phassassa nirodhā yaṁ tajjaṁ vedayitaṁ adukkhamasukhavedaniyaṁ phassaṁ paṭicca uppannā adukkhamasukhā vedanā sā nirujjhati, sā vūpasammatī’ti pajānāti.

맛지마 니까야 MN 140 요소 분석경 (Dhātuvibhaṅgasutta)

배경

두 나무 비유의 원리는 괴로운 느낌과 중성 느낌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괴로운 접촉에서 괴로운 느낌이 생기고, 그것을 알아차리며, 접촉이 사라지면 느낌도 가라앉습니다. 중성 접촉에서 생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같은 세 과정을 따릅니다. 되풀이되는 설명은 어느 느낌 하나도 예외로 남기지 않기 위한 것입니다. 즐거움만 조건 지어졌고 괴로움은 나의 운명이라고 보거나, 중성 느낌은 변화하지 않는 배경이라고 보는 치우침을 함께 끊습니다.

묵상

즐거움의 덧없음은 인정하면서 괴로움만은 나의 운명이라고 여기나요? 괴로움과 중성 느낌에도 생김·알아차림·소멸을 똑같이 적용하면, 지금의 감정을 설명하는 말에서 어떤 단정이 사라질까요?

“그 뒤에는 순수하고 밝고 유연하며 쓸모 있고 빛나는 평정만 남느니라. 숙련된 금세공인이 화로에 금을 넣어 때로 불고 물을 뿌리며 지켜보면, 찌꺼기가 빠진 금이 부드럽고 다루기 좋으며 빛나고 잘 부서지지 않아 원하는 팔찌·귀걸이·목걸이·금화환이 되듯, 이 평정도 그러하니라.”

Athāparaṁ upekkhāyeva avasissati parisuddhā pariyodātā mudu ca kammaññā ca pabhassarā ca. Seyyathāpi, bhikkhu, dakkho suvaṇṇakāro vā suvaṇṇakārantevāsī vā ukkaṁ bandheyya, ukkaṁ bandhitvā ukkāmukhaṁ ālimpeyya, ukkāmukhaṁ ālimpetvā saṇḍāsena jātarūpaṁ gahetvā ukkāmukhe pakkhipeyya, tamenaṁ kālena kālaṁ abhidhameyya, kālena kālaṁ udakena paripphoseyya, kālena kālaṁ ajjhupekkheyya, taṁ hoti jātarūpaṁ sudhantaṁ niddhantaṁ nīhaṭaṁ ninnītakasāvaṁ mudu ca kammaññañca pabhassarañca, yassā yassā ca piḷandhanavikatiyā ākaṅkhati—yadi paṭṭikāya yadi kuṇḍalāya yadi gīveyyakāya yadi suvaṇṇamālāya tañcassa atthaṁ anubhoti; evameva kho, bhikkhu, athāparaṁ upekkhāyeva avasissati parisuddhā pariyodātā mudu ca kammaññā ca pabhassarā ca.

맛지마 니까야 MN 140 요소 분석경 (Dhātuvibhaṅgasutta)

배경

세 느낌의 조건과 소멸을 분명히 알면 순수하고 밝으며 유연하고 다루기 좋고 빛나는 평온이 남습니다. 부처님은 금세공인의 작업에 비유하십니다. 그는 화로와 도가니를 준비해 금을 넣고, 때로 바람을 불어 열을 더하고, 때로 물을 뿌리고, 때로 가만히 지켜봅니다. 알맞은 조절을 거치면 금은 찌꺼기가 빠져 부드럽고 가공하기 좋으며 빛나고 쉽게 부서지지 않아, 팔찌·귀걸이·목걸이·금화환 등 원하는 장신구가 됩니다. 평온도 무감각한 굳음이 아니라 맑고 유연하며 쓸 수 있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묵상

평온을 아무 느낌도 없는 굳은 상태로 오해하나요? 불을 더할 때와 식힐 때와 조용히 지켜볼 때를 구별하는 금세공인처럼 마음을 다룬다면, 지금은 노력·쉼·관찰 가운데 무엇이 필요할까요?

“그는 이렇게 아느니라. ‘이 맑은 평정을 무한 공간의 경지에 기울여 마음을 닦으면, 거기에 의지하고 붙든 평정이 아주 오래 머물 것이다. 무한 의식의 경지에 기울여 마음을 닦아도, 거기에 의지하고 붙든 평정이 아주 오래 머물 것이다.’”

So evaṁ pajānāti: ‘imañce ahaṁ upekkhaṁ evaṁ parisuddhaṁ evaṁ pariyodātaṁ ākāsānañcāyatanaṁ upasaṁhareyyaṁ, tadanudhammañca cittaṁ bhāveyyaṁ. Evaṁ me ayaṁ upekkhā tannissitā tadupādānā ciraṁ dīghamaddhānaṁ tiṭṭheyya. Imañce ahaṁ upekkhaṁ evaṁ parisuddhaṁ evaṁ pariyodātaṁ viññāṇañcāyatanaṁ upasaṁhareyyaṁ, tadanudhammañca cittaṁ bhāveyyaṁ. Evaṁ me ayaṁ upekkhā tannissitā tadupādānā ciraṁ dīghamaddhānaṁ tiṭṭheyya.

맛지마 니까야 MN 140 요소 분석경 (Dhātuvibhaṅgasutta)

배경

맑고 유연해진 평온은 더 높은 집중의 경지로 향할 수 있습니다. 먼저 무한 공간의 경지에 평온을 기울이고 그에 맞게 마음을 닦으면, 그 경지에 의지하고 그것을 붙든 평온이 매우 오래 지속될 수 있습니다. 무한 의식의 경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오래 머문다는 사실만으로 완전한 해탈은 아닙니다. 평온이 특정 경지에 기대고 그것을 취한다는 조건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높은 선정의 안정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의 미세한 의지와 붙듦을 함께 드러내십니다.

묵상

오래 지속되는 고요라면 곧 최종 자유라고 생각하나요? 무한 공간이나 의식처럼 드높은 상태도 의지하고 붙드는 바가 있음을 본다면, 평온을 성취나 소유물로 만들려는 마음은 어디에서 드러날까요?

“‘이 맑은 평정을 아무것도 없음의 경지에 기울이면 거기에 의지하고 붙든 평정이 아주 오래 머물 것이다. 인식도 비인식도 아닌 경지에 기울여도 거기에 의지하고 붙든 평정이 아주 오래 머물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시 분명히 살펴 아느니라.”

Imañce ahaṁ upekkhaṁ evaṁ parisuddhaṁ evaṁ pariyodātaṁ ākiñcaññāyatanaṁ upasaṁhareyyaṁ, tadanudhammañca cittaṁ bhāveyyaṁ. Evaṁ me ayaṁ upekkhā tannissitā tadupādānā ciraṁ dīghamaddhānaṁ tiṭṭheyya. Imañce ahaṁ upekkhaṁ evaṁ parisuddhaṁ evaṁ pariyodātaṁ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upasaṁhareyyaṁ, tadanudhammañca cittaṁ bhāveyyaṁ. Evaṁ me ayaṁ upekkhā tannissitā tadupādānā ciraṁ dīghamaddhānaṁ tiṭṭheyyā’ti. So evaṁ pajānāti:

맛지마 니까야 MN 140 요소 분석경 (Dhātuvibhaṅgasutta)

배경

같은 가능성은 아무것도 없음의 경지와 인식도 비인식도 아닌 경지에도 이어집니다. 맑은 평온을 각 경지에 기울이고 그에 맞추어 마음을 닦으면, 그 경지에 기대고 붙든 평온이 오랫동안 머물 수 있습니다. 이로써 네 무색의 경지 모두가 빠짐없이 제시됩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장수하는 평온에 매혹되어 멈추지 않고 다시 살핍니다. 평온의 맑음과 지속 시간보다 그것이 무엇에 의존하며 조건 지어졌는지를 묻는 지혜가 다음 단계입니다. 높은 상태도 관찰의 대상에서 제외하지 않습니다.

묵상

아무것도 없음이나 아주 미세한 의식 상태를 경험하면 그것을 영원한 안식처로 삼고 싶나요? 가장 고요한 평온에도 의존과 붙듦이 있는지 다시 묻는다면 수행의 목표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그는 아느니라. ‘이 평정을 무한 공간의 경지에 기울여 마음을 닦아도 그것은 조건 지어진 것이니라. 무한 의식의 경지에 기울여도 조건 지어진 것이며, 아무것도 없음의 경지에 기울여도 조건 지어진 것이니라.’”

‘imañce ahaṁ upekkhaṁ evaṁ parisuddhaṁ evaṁ pariyodātaṁ ākāsānañcāyatanaṁ upasaṁhareyyaṁ, tadanudhammañca cittaṁ bhāveyyaṁ; saṅkhatametaṁ. Imañce ahaṁ upekkhaṁ evaṁ parisuddhaṁ evaṁ pariyodātaṁ viññāṇañcāyatanaṁ upasaṁhareyyaṁ, tadanudhammañca cittaṁ bhāveyyaṁ; saṅkhatametaṁ. Imañce ahaṁ upekkhaṁ evaṁ parisuddhaṁ evaṁ pariyodātaṁ ākiñcaññāyatanaṁ upasaṁhareyyaṁ, tadanudhammañca cittaṁ bhāveyyaṁ; saṅkhatametaṁ.

맛지마 니까야 MN 140 요소 분석경 (Dhātuvibhaṅgasutta)

배경

수행자는 맑은 평온을 무한 공간, 무한 의식, 아무것도 없음의 경지에 적용하는 선택을 하나씩 다시 검토합니다. 각 경지는 오래 지속될 수 있지만 마음을 특정 방향으로 기울이고 닦아 만들어진 것이므로 모두 조건 지어졌습니다. “조건 지어졌다”는 판단은 그 경지들을 나쁘다고 폄하하는 말이 아닙니다. 생기게 한 의도와 조건에 기대므로 영원한 자아나 궁극의 피난처가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세 경지를 각각 같은 기준으로 보는 지혜가 가장 미세한 네 번째 경지의 관찰로 이어집니다.

묵상

노력해서 만든 훌륭한 마음 상태는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아야 한다고 기대하나요? 무한 공간·의식·아무것도 없음의 고요까지 조건 지어진 것으로 보면, 성취를 붙드는 두려움은 어떻게 바뀔까요?

“‘인식도 비인식도 아닌 경지에 기울여도 그것은 조건 지어진 것이니라.’ 그러므로 존재나 비존재를 위해 마음을 짓거나 의도하지 않느니라. 세상 어떤 것도 취하지 않으므로 불안하지 않고, 불안하지 않아 스스로 완전히 열반하느니라. ‘태어남은 끝났고 할 일은 다 했다’고 아느니라.”

Imañce ahaṁ upekkhaṁ evaṁ parisuddhaṁ evaṁ pariyodātaṁ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upasaṁhareyyaṁ, tadanudhammañca cittaṁ bhāveyyaṁ; saṅkhatametan’ti. So neva taṁ abhisaṅkharoti, na abhisañcetayati bhavāya vā vibhavāya vā. So anabhisaṅkharonto anabhisañcetayanto bhavāya vā vibhavāya vā na kiñci loke upādiyati, anupādiyaṁ na paritassati, aparitassaṁ paccattaṁyeva parinibbāyati. ‘Khīṇā jāti, vusitaṁ brahmacariyaṁ, kataṁ karaṇīyaṁ, nāparaṁ itthattāyā’ti pajānāti.

맛지마 니까야 MN 140 요소 분석경 (Dhātuvibhaṅgasutta)

배경

가장 미세한 인식도 비인식도 아닌 경지 역시 마음을 기울여 만들어 낸 조건 지어진 상태입니다. 이를 분명히 본 수행자는 존재하기 위해서도 존재하지 않기 위해서도 새로운 형성과 의도를 만들지 않습니다. 어느 극단도 목표로 삼지 않으니 세상 어떤 것도 취하지 않고, 취하지 않으니 잃을까 불안해하지 않으며, 불안이 없으니 스스로 완전히 열반합니다. 그때 태어남이 끝났고 청정한 삶을 마쳤으며 할 일을 다해 다시 이런 존재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압니다. 평온을 붙드는 수행에서 놓임으로 넘어가는 결정적 전환입니다.

묵상

더 나은 존재가 되거나 완전히 없어지고 싶다는 두 방향으로 마음을 만들고 있나요? 존재와 비존재 어느 쪽도 의도하지 않고 아무것도 취하지 않는다면, 지금 불안을 먹여 살리는 붙듦은 무엇인가요?

“즐거운 느낌·괴로운 느낌·중성 느낌을 느낄 때마다 그것이 무상하고, 붙들지 않으며, 즐겨 매달리지 않는다고 아느니라. 즐거움도 괴로움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모두 얽매임에서 벗어난 채 느끼느니라.”

So sukhañce vedanaṁ vedeti, ‘sā aniccā’ti pajānāti, ‘anajjhositā’ti pajānāti, ‘anabhinanditā’ti pajānāti. Dukkhañce vedanaṁ vedeti, ‘sā aniccā’ti pajānāti, ‘anajjhositā’ti pajānāti, ‘anabhinanditā’ti pajānāti. Adukkhamasukhañce vedanaṁ vedeti, ‘sā aniccā’ti pajānāti, ‘anajjhositā’ti pajānāti, ‘anabhinanditā’ti pajānāti. So sukhañce vedanaṁ vedeti, visaṁyutto naṁ vedeti; dukkhañce vedanaṁ vedeti, visaṁyutto naṁ vedeti; adukkhamasukhañce vedanaṁ vedeti, visaṁyutto naṁ vedeti.

맛지마 니까야 MN 140 요소 분석경 (Dhātuvibhaṅgasutta)

배경

해탈한 이는 느낌이 없어지는 사람이 아닙니다.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생기면 각각 무상하다고 알고, 거기에 달라붙지 않으며, 즐겨 매달리지 않는다고 압니다. 이어 세 느낌을 모두 얽매임에서 벗어난 채 경험합니다. 즐거움에는 탐욕으로, 괴로움에는 저항으로, 중성에는 무지로 묶이지 않습니다. 세 종류와 세 가지 앎을 빠짐없이 적용해야 해탈이 감각의 마비가 아니라 느낌과의 관계가 자유로워진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묵상

평온하려면 즐거움과 괴로움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세 느낌을 온전히 느끼되 무상함을 알고 붙들거나 즐겨 매달리지 않는다면, 지금의 감정과 함께 있는 방식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몸과 함께 끝날 느낌, 생명과 함께 끝날 느낌을 각각 그대로 안다. 몸이 무너지고 생명이 다하면 즐겨 붙들지 않은 모든 느낌은 바로 여기서 식으리라고 아느니라. 기름과 심지에 기대 타는 등불이 둘이 다하면 꺼지듯, 몸과 생명이 다할 때 모든 느낌도 바로 여기서 식느니라.”

So kāyapariyantikaṁ vedanaṁ vedayamāno ‘kāyapariyantikaṁ vedanaṁ vedayāmī’ti pajānāti, jīvitapariyantikaṁ vedanaṁ vedayamāno ‘jīvitapariyantikaṁ vedanaṁ vedayāmī’ti pajānāti,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uddhaṁ jīvitapariyādānā idheva sabbavedayitāni anabhinanditāni sītībhavissantī’ti pajānāti. Seyyathāpi, bhikkhu, telañca paṭicca vaṭṭiñca paṭicca telappadīpo jhāyati; tasseva telassa ca vaṭṭiyā ca pariyādānā aññassa ca anupahārā anāhāro nibbāyati; evameva kho, bhikkhu, kāyapariyantikaṁ vedanaṁ vedayamāno ‘kāyapariyantikaṁ vedanaṁ vedayāmī’ti pajānāti, jīvitapariyantikaṁ vedanaṁ vedayamāno ‘jīvitapariyantikaṁ vedanaṁ vedayāmī’ti pajānāti,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uddhaṁ jīvitapariyādānā idheva sabbavedayitāni anabhinanditāni sītībhavissantī’ti pajānāti.

맛지마 니까야 MN 140 요소 분석경 (Dhātuvibhaṅgasutta)

배경

해탈한 이는 몸과 함께 끝날 느낌과 생명과 함께 끝날 느낌을 분명히 압니다. 몸이 무너지고 생명이 다한 뒤에는 즐겨 붙들지 않은 모든 느낌이 바로 여기서 식는다고 압니다. 부처님은 기름과 심지에 기대 타는 등불을 비유로 드십니다. 기름과 심지가 모두 소진되고 새 연료도 더하지 않으면 불은 먹을 것이 없어 꺼집니다. 마찬가지로 몸과 생명이라는 조건이 다하면 느낌도 이어 붙들 연료 없이 식습니다. 이는 다른 곳으로 옮겨 가는 자아가 아니라 조건과 연료의 소진으로 설명되는 고요입니다.

묵상

느낌이 끝나면 그것을 경험한 고정된 내가 다른 곳으로 옮겨 가야 한다고 상상하나요? 기름과 심지가 다해 등불이 꺼지는 비유로 보면, 지금 느낌에 새 연료를 더하는 집착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