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마음을 분별하는 수행이 확산의 소멸로 이끌다

생각의 두 작용이 없는 평정을 더 뛰어나다고 한 뒤 세존께서 이 수행이 확산의 소멸에 맞는 길이라고 답을 맺으심

그 가운데 생각을 일으키고 이어 가는 두 작용이 있는 것도 있고, 그 두 작용이 없는 것도 있느니라. 그 두 작용이 없는 것들이 더 뛰어나니라. 신들의 왕이여, 내가 평정을 두 종류, 곧 길러야 할 것과 기르지 말아야 할 것으로 말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니라. “신들의 왕이여, 수행자가 이렇게 실천하면 확산된 인식과 관념의 소멸에 알맞게 이끄는 길을 실천하는 이가 되느니라.” 이와 같이 세존께서 신들의 왕 삭까의 질문을 받으시고 답하셨다.

Tattha yañce savitakkaṁ savicāraṁ, yañce avitakkaṁ avicāraṁ, ye avitakke avicāre, te paṇītatare. Upekkhampāhaṁ, devānaminda, duvidhena vadāmi sevitabbampi, asevitabbampīti iti yaṁ taṁ vuttaṁ, idametaṁ paṭicca vuttaṁ. Evaṁ paṭipanno kho, devānaminda, bhikkhu papañcasaññāsaṅkhānirodhasāruppagāminiṁ paṭipadaṁ paṭipanno hotī”ti. Itthaṁ bhagavā sakkassa devānamindassa pañhaṁ puṭṭho byākāsi.

디가 니까야 DN 21 제석문경 (Sakkapañhasutta)

배경

평정도 생각을 일으키고 이어 가는 두 작용의 있음과 없음으로 나뉘며, 두 작용이 없는 쪽이 더 뛰어납니다. 이 비교로 평정의 두 종류를 설명한 뒤 세존께서는 처음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수행자가 기쁨·슬픔·평정을 선과 불선의 증감 및 생각의 두 작용으로 분별해 기르면, 확산된 지각과 관념의 소멸에 알맞게 이끄는 길을 실천하는 이가 됩니다. “실천”이 두 번 되풀이되고, 서술자가 세존의 답이 끝났음을 확인하면서 긴 수행 설명이 닫힙니다.

묵상

기쁨·슬픔·평정을 느낌의 이름이 아니라 무엇을 키우고 줄이는지로 살펴보면 무엇이 달라지나요? 세 감정을 모두 분석할 필요는 없어요. 지금 가장 분명한 하나만 골라 결과를 살펴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