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왕이여, 갈애의 소멸로 해탈한 수행자들은 궁극의 끝과 궁극의 속박 없는 안온과 궁극의 청정한 삶과 궁극의 완결에 이르렀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수행자와 바라문이 궁극의 끝과 궁극의 속박 없는 안온과 궁극의 청정한 삶과 궁극의 완결에 이른 것은 아니니라.” 세존께서는 신들의 왕 삭까가 물은 질문에 이와 같이 답하셨다.
“Ye kho, devānaminda, bhikkhū taṇhāsaṅkhayavimuttā te accantaniṭṭhā accantayogakkhemī accantabrahmacārī accantapariyosānā. Tasmā na sabbe samaṇabrāhmaṇā accantaniṭṭhā accantayogakkhemī accantabrahmacārī accantapariyosānā”ti. Itthaṁ bhagavā sakkassa devānamindassa pañhaṁ puṭṭho byākāsi.
디가 니까야 DN 21 제석문경 (Sakkapañhasutta)배경
모든 수행자와 바라문이 네 가지 궁극에 이른 것은 아닌 까닭을 묻자, 세존께서는 갈애의 소멸로 해탈한 수행자들을 분명한 주어로 들어 답하십니다. 그들이 궁극의 끝·속박 없는 안온·청정한 삶·완결에 이르렀다는 네 항목을 모두 밝힌 뒤, 바로 그 때문에 모든 수행자와 바라문이 이 네 궁극에 이른 것은 아니라고 부정합니다. 핵심 조건은 단순히 수행자라는 이름을 갖는 데 있지 않고 갈애의 소멸로 해탈하는 데 있습니다. 마지막 서술은 세존께서 삭까의 질문에 답하셨다고 확인하여, 견해의 다양성과 궁극적 성취를 다룬 문답을 닫습니다. 뒤의 같은 후렴은 앞서 온전히 제시된 문장을 그대로 되풀이하므로, 같은 말을 거듭 적지 않고 이 흐름을 이어 읽습니다.
묵상
이름이나 소속보다 갈애의 소멸이라는 조건이 강조되는 대목에서 무엇이 눈에 들어오나요? 자신의 성취를 판정하려 하지 말고, 지금 붙들고 있는 한 반응을 알아차리는 데 머물러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