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들이여, 무엇이 선한 것의 뿌리입니까?
탐욕 없음은 선한 것의 뿌리이고, 성냄 없음은 선한 것의 뿌리이며, 어리석음 없음은 선한 것의 뿌리입니다. 벗들이여, 이것을 선한 것의 뿌리라고 합니다.”
Katamañcāvuso, kusalamūlaṁ? Alobho kusalamūlaṁ, adoso kusalamūlaṁ, amoho kusalamūlaṁ—idaṁ vuccatāvuso, kusalamūlaṁ.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선하지 않은 세 뿌리와 열 가지 선한 행위를 밝힌 뒤, 첫 묶음의 마지막 정의가 나옵니다. alobha·adosa·amoha는 탐욕 없음·성냄 없음·어리석음 없음이며, 각각 kusalamūla라는 같은 서술을 가집니다. 세 이름의 부정 접두사는 선한 뿌리가 탐욕·성냄·어리석음이 약해지거나 없는 방향임을 보여 줍니다. 이를 새로운 실체나 타고난 성격으로 만들지 않고, 구체적인 선택을 낳는 조건으로 읽는 것이 이 묶음의 논리입니다. 질문과 끝의 두 호격도 모두 남겼습니다.
묵상
탐욕 없음·성냄 없음·어리석음 없음 가운데 힘주어 만들지 않아도 잠시 드러났던 방향이 있나요? 그런 경험이 없다거나 잘 모르겠다고 보아도 괜찮아요. 세 항목이 앞의 세 뿌리와 어떻게 반대가 되는지만 느껴 볼 수 있을까요?
“수행자들이여, 탐욕 없음에서 탐욕이 생겨나지 않느니라.
오히려 수행자들이여, 탐욕 없음에서 탐욕 없음만 생겨나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성냄 없음에서 성냄이 생겨나지 않느니라.
오히려 수행자들이여, 성냄 없음에서 성냄 없음만 생겨나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어리석음 없음에서 어리석음이 생겨나지 않느니라.
오히려 수행자들이여, 어리석음 없음에서 어리석음 없음만 생겨나느니라.”
Na, bhikkhave, alobhā lobho samudeti; atha kho, bhikkhave, alobhā alobhova samudeti. Na, bhikkhave, adosā doso samudeti; atha kho, bhikkhave, adosā adosova samudeti. Na, bhikkhave, amohā moho samudeti; atha kho, bhikkhave, amohā amohova samudeti.
앙굿따라 니까야 AN 6.39 근원경 (Nidānasutta) 배경
둘째 절의 세 근원을 첫 절과 같은 여섯 문장으로 풉니다. 탐욕 없음에서 탐욕이, 성냄 없음에서 성냄이, 어리석음 없음에서 어리석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세 부정이 먼저 옵니다. 각각의 뒤에는 ‘오히려’가 붙어 탐욕 없음에서는 탐욕 없음이, 성냄 없음에서는 성냄 없음이, 어리석음 없음에서는 어리석음 없음이 생긴다고 밝힙니다. 여섯 문장마다 ‘수행자들이여’가 한 번씩 있어 양쪽 쌍을 생략 없이 구별합니다. 수행의 뜻은 좋은 결과를 의지로 꾸며 내는 데 있지 않고, 행위가 시작되는 근원이 같은 방향의 상태를 이어 낳는다는 조건 관계를 알아차리는 데 있습니다.
묵상
탐욕 없음이나 성냄 없음에서 시작한 작은 선택이 뒤이어 비슷한 여유를 낳은 경험이 있나요? 반대로 한 번의 경험으로 마음이 늘 그렇다고 결론 낼 필요도 없어요. 이어진 반응 하나만 살펴보고, 무엇이 같은 방향을 지탱했는지 모르겠다면 그대로 두어도 괜찮아요.
“수행자들이여, 이 세 가지 상태를 버리기 위해
세 가지를 닦아야 하느니라.
어떤 셋인가?
탐욕을 버리기 위해 아름답지 않음을 닦아야 하고,
성냄을 버리기 위해 자애를 닦아야 하며,
어리석음을 버리기 위해 지혜를 닦아야 하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이 세 가지 상태를 버리기 위해
이 세 가지를 닦아야 하느니라.”
Imesaṁ kho, bhikkhave, tiṇṇaṁ dhammānaṁ pahānāya tayo dhammā bhāvetabbā. Katame tayo? Rāgassa pahānāya asubhā bhāvetabbā, dosassa pahānāya mettā bhāvetabbā, mohassa pahānāya paññā bhāvetabbā. Imesaṁ kho, bhikkhave, tiṇṇaṁ dhammānaṁ pahānāya ime tayo dhammā bhāvetabbā”ti.
앙굿따라 니까야 AN 6.107 탐욕경 (Rāgasutta) 배경
첫 목록을 닫은 뒤 버림과 닦음의 두 수량을 연결합니다. 버릴 상태가 셋이므로 닦아야 할 것도 셋이며, 다시 “어떤 셋인가?”라고 물은 뒤 각 항목을 일대일로 답합니다. rāga의 버림에는 asubhā, 곧 아름답지 않음을, dosa의 버림에는 mettā, 곧 자애를, moha의 버림에는 paññā, 곧 지혜를 닦아야 합니다. 세 문장은 모두 “버리기 위해”와 “닦아야 한다”를 반복하고, 마지막에는 앞의 세 상태와 뒤의 세 닦음을 다시 구별해 결론을 맺습니다. 수행의 뜻은 탐욕·성냄·어리석음을 한 덩어리로 다루지 않고, 드러난 상태에 알맞은 닦음을 선택하는 데 있습니다.
묵상
아름답지 않음·자애·지혜라는 세 대응 가운데 지금 의미가 가장 분명하게 들리는 하나가 있나요? 자신에게 곧바로 처방하거나 수행의 성과를 확인할 필요는 없어요. 한 쌍의 연결만 천천히 살펴보거나 아직 모르겠다고 두어도 괜찮아요.
“바라문이여, 남김없는 탐욕의 소멸을 경험하고,
남김없는 성냄의 소멸을 경험하며,
남김없는 어리석음의 소멸을 경험할 때,
바라문이여, 열반은 지금 여기에서 볼 수 있고,
때를 기다리지 않으며, 와서 보라고 할 만하고, 안으로 이끌며,
지혜로운 이가 저마다 직접 알 수 있느니라.”
“훌륭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여 …
고따마 존자께서는 오늘부터 평생 귀의한 재가 신자로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Yato kho ayaṁ, brāhmaṇa, anavasesaṁ rāgakkhayaṁ paṭisaṁvedeti, anavasesaṁ dosakkhayaṁ paṭisaṁvedeti, anavasesaṁ mohakkhayaṁ paṭisaṁvedeti; evaṁ kho, brāhmaṇa, sandiṭṭhikaṁ nibbānaṁ hoti akālikaṁ ehipassikaṁ opaneyyikaṁ paccattaṁ veditabbaṁ viññūhī”ti. “Abhikkantaṁ, bho gotama …pe… upāsakaṁ maṁ bhavaṁ gotamo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aṁ saraṇaṁ gata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55 지금 여기의 열반경 (Nibbutasutta) 배경
답의 결론과 자눗소니의 응답을 함께 담은 마지막 카드입니다. anavasesa, 곧 ‘남김없는’이 탐욕·성냄·어리석음의 소멸에 세 번 붙고, 질문의 다섯 특성이 같은 순서로 되돌아와 세존의 답을 닫습니다. 다음 인용에서는 화자가 자눗소니로 바뀝니다. 그는 “훌륭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여”라고 말한 뒤 원문 자체의 ‘…pe…’로 표준 찬탄의 나머지를 생략하므로, 생략된 말을 새로 채우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에는 오늘부터 평생 귀의한 재가 신자로 기억해 달라고 청합니다. 앞의 개별적인 버림을 세 뿌리의 남김없는 소멸로 모은 결론과, 그 말을 들은 사람의 귀의가 차례로 놓입니다.
묵상
“남김없는 소멸”과 열반의 다섯 특성 가운데 지금 조용히 머물러 읽고 싶은 말이 있나요? 열반을 실현했는지 묻거나 귀의를 결심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질문은 아니에요. 어느 말도 가까이 느껴지지 않으면 자눗소니가 질문에서 확인을 거쳐 응답으로 나아가는 순서만 보거나 지금은 건너뛰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