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 삼마딧티경

맛지마 니까야 MN 9

사리뿟따가 선악과 자양분, 네 가지 진리, 늙음과 죽음에서 무명과 번뇌까지를 일어남·소멸·길의 네 측면으로 풀어낸다.

인용된 가르침 61구절

이 경을 61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사리뿟따가 수행자들을 벗이라 부르다 1구절

사왓티 제따 숲에서 사리뿟따가 비구들을 벗이라 부르고, 비구들이 응답한 뒤 설법을 시작합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무셨습니다. 그곳에서 사리뿟따 존자가 수행자들을 “벗들이여”라고 불렀습니다. 수행자들은 “벗이여”라고 응답했고, 사리뿟따 존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Evaṁ me sutaṁ—ekaṁ samayaṁ bhagavā sāvatthiyaṁ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Tatra kho āyasmā sāriputto bhikkhū āmantesi: “āvuso bhikkhave”ti. “Āvuso”ti kho te bhikkhū āyasmato sāriputtassa paccassosuṁ. Āyasmā sāriputto etadavoca: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경은 세존의 머무는 곳을 밝힌 뒤 설법자를 사리뿟따 존자로 분명히 전환합니다. Tatra kho 뒤의 주어는 āyasmā sāriputto입니다. āvuso bhikkhave는 사리뿟따가 수행자들을 “벗들이여”라고 부른 말이고, 수행자들도 “벗이여”라고 답합니다. 두 āvuso를 모두 옮겨 동료 수행자 사이의 문답임을 보존했습니다. 첫 문장이 세존의 머무는 곳을 밝히지만, 이어지는 설명을 세존의 직접 말씀으로 바꾸거나 동일한 현장에 함께 앉아 계셨다고 단정하지 않았습니다. 이 발화 관계가 이후 반복되는 질문과 답 전체의 바탕입니다.

묵상

사리뿟따와 수행자들이 서로 “벗”이라 부르는 장면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가르치는 이와 듣는 이를 위아래로만 보지 않을 때 배움의 분위기가 달라지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특별한 느낌이 없다면 호칭의 반복만 들어 보아도 괜찮아요.

2 바른 견해의 뜻을 묻고 설명을 청하다 1구절

사리뿟따가 바른 견해의 기준을 묻자 비구들이 먼 곳에서도 와서 듣겠다며 직접 뜻을 밝혀 달라고 청합니다.

“벗들이여, ‘바른 견해, 바른 견해’라고 합니다. 벗들이여, 어떤 점에서 성스러운 제자를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르렀다고 합니까?” “벗이여, 우리는 이 말씀의 뜻을 사리뿟따 존자 앞에서 알기 위해 먼 곳에서도 오겠습니다. 존자께서 직접 뜻을 밝혀 주시면, 수행자들은 듣고 간직할 것입니다.”

“‘Sammādiṭṭhi sammādiṭṭhī’ti, āvuso, vuccati. Kittāvatā nu kho, āvuso,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n”ti? “Dūratopi kho mayaṁ, āvuso, āgaccheyyāma āyasmato sāriputtassa santike etassa bhāsitassa atthamaññātuṁ. Sādhu vatāyasmantaṁyeva sāriputtaṁ paṭibhātu etassa bhāsitassa attho. Āyasmato sāriputtassa sutvā bhikkhū dhāressantī”ti.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사리뿟따는 먼저 sammādiṭṭhi라는 이름을 두 번 되풀이한 뒤 그 기준을 네 겹으로 묻습니다. 바른 견해를 지님, 견해가 곧음, 가르침에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갖춤, 참된 가르침에 이름이 그 네 표현입니다. 수행자들은 답을 추측하지 않고 먼 곳에서도 와서 들을 만큼 그 뜻을 알고 싶다고 밝힙니다. 설명을 사리뿟따 자신에게 청하고 듣고 간직하겠다는 순서가 이어지므로, 질문과 청을 같은 대화 안에 두었습니다. 이 네 겹의 기준은 이후 각 묶음의 결론으로 반복됩니다.

묵상

바른 견해를 단지 한 생각이 아니라 견해의 곧음·확신·가르침에 이름과 함께 묻는 점이 어떻게 들리나요? 네 표현을 모두 정의할 필요는 없어요. 지금 가장 궁금한 하나가 있는지, 없다면 수행자들이 먼저 설명을 청한 태도만 느껴 보아도 괜찮아요.

3 듣고 마음에 새긴 뒤 네 갈래를 알다 1구절

사리뿟따가 잘 들으라 한 뒤 선하지 않은 것과 선한 것, 그리고 각각의 뿌리를 아는 일을 첫 답으로 제시합니다.

“그러면 벗들이여, 듣고 잘 마음에 새기십시오. 내가 말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벗이여.” 수행자들이 응답하자 사리뿟따 존자가 말했습니다. “벗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선하지 않은 것과 그 뿌리, 선한 것과 그 뿌리를 알면, 벗들이여, 이만큼으로도 그는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릅니다.”

“Tena hi, āvuso, suṇātha, sādhukaṁ manasi karotha, bhāsissāmī”ti. “Evamāvuso”ti kho te bhikkhū āyasmato sāriputtassa paccassosuṁ. Āyasmā sāriputto etadavoca: “Yato kho, āvuso, ariyasāvako akusalañca pajānāti, akusalamūlañca pajānāti, kusalañca pajānāti, kusalamūlañca pajānāti—ettāvatāpi kho, āvuso,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ṁ.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청을 받은 사리뿟따는 듣기와 잘 마음에 새기기를 차례로 요청하고, 수행자들의 응답 뒤에 실제 답을 시작합니다. 첫 정의는 akusala·akusalamūla·kusala·kusalamūla, 곧 선하지 않은 것과 그 뿌리, 선한 것과 그 뿌리라는 네 갈래입니다. 단순히 선악을 판정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각각 무엇에서 비롯되는지 함께 아는 것이 바른 견해의 첫 방식입니다. “벗”이라는 호칭이 네 번 나타나는 발화 구조도 그대로 보존했습니다. 다음 네 대목은 이 네 갈래를 하나씩 질문하고 답합니다.

묵상

선한 것과 선하지 않은 것만 구별할 때와 각각의 뿌리까지 함께 볼 때 무엇이 달라질까요? 지금 어떤 행동을 평가하기보다, 그 행동이 나온 마음의 뿌리를 모른 채 결론 내린 적이 있는지 조용히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모르겠다면 네 갈래의 배열만 보아도 괜찮아요.

4 선하지 않은 열 가지를 밝히다 1구절

몸의 셋·말의 넷·마음의 셋으로 이루어진 선하지 않은 열 가지 행위를 사리뿟따가 차례로 정의합니다.

“벗들이여, 무엇이 선하지 않은 것이며 그 뿌리는 무엇입니까? 무엇이 선한 것이며 그 뿌리는 무엇입니까? 벗들이여, 생명을 죽임, 주지 않은 것을 가짐, 그릇된 성행위, 거짓말, 이간하는 말, 거친 말, 쓸데없는 말, 남의 것을 탐냄, 악의, 그릇된 견해입니다. 벗들이여, 이것을 선하지 않은 것이라 합니다.”

Katamaṁ panāvuso, akusalaṁ, katamaṁ akusalamūlaṁ, katamaṁ kusalaṁ, katamaṁ kusalamūlaṁ? Pāṇātipāto kho, āvuso, akusalaṁ, adinnādānaṁ akusalaṁ, kāmesumicchācāro akusalaṁ, musāvādo akusalaṁ, pisuṇā vācā akusalaṁ, pharusā vācā akusalaṁ, samphappalāpo akusalaṁ, abhijjhā akusalaṁ, byāpādo akusalaṁ, micchādiṭṭhi akusalaṁ—idaṁ vuccatāvuso akusalaṁ.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네 갈래의 총론 뒤 첫 질문은 선하지 않은 것과 뿌리, 선한 것과 뿌리를 한꺼번에 다시 묻습니다. 답은 먼저 선하지 않은 열 항목을 몸의 세 행위, 말의 네 행위, 마음의 세 방향 순으로 놓습니다. pāṇātipāta에서 micchādiṭṭhi까지 어느 항목도 대표어로 합치지 않았고, 마지막에 “이것을 선하지 않은 것이라 한다”는 범위를 닫았습니다. 선하지 않음은 사람의 고정된 본성을 가리키기보다 구체적인 행위와 말과 마음의 방향을 식별하는 기준이며, 다음에는 그 세 뿌리가 이어집니다.

묵상

열 항목을 한꺼번에 자신에게 적용해 채점할 필요는 없어요. 몸·말·마음의 세 영역 가운데 결과가 가장 직접 보이는 한 영역이 있나요? 없다면 목록이 바깥 행동에서 말과 마음으로 옮겨 가는 순서만 천천히 알아보아도 괜찮아요.

5 선하지 않은 세 뿌리를 밝히다 1구절

사리뿟따가 선하지 않은 것의 뿌리를 탐욕·성냄·어리석음 세 가지로 분명히 묶습니다.

“벗들이여, 무엇이 선하지 않은 것의 뿌리입니까? 탐욕은 선하지 않은 것의 뿌리이고, 성냄은 선하지 않은 것의 뿌리이며, 어리석음은 선하지 않은 것의 뿌리입니다. 벗들이여, 이것을 선하지 않은 것의 뿌리라고 합니다.”

Katamañcāvuso, akusalamūlaṁ? Lobho akusalamūlaṁ, doso akusalamūlaṁ, moho akusalamūlaṁ—idaṁ vuccatāvuso, akusalamūlaṁ.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열 가지 행위의 목록 다음에는 그 목록을 낳는 세 뿌리가 나옵니다. lobha·dosa·moha는 각각 탐욕·성냄·어리석음이며, 세 항목마다 akusalamūla라는 같은 서술이 반복됩니다. 뿌리라는 표현은 눈에 보이는 행동과 그 행동을 지탱하는 마음의 조건을 구별하게 합니다. 질문과 세 답과 마지막 범위 확인에 있는 두 번의 “벗들이여”도 남겼습니다. 다음 대목은 열 항목을 반대 방향으로 제시해 선한 것을 밝히므로, 여기의 세 뿌리는 뒤의 탐욕 없음·성냄 없음·어리석음 없음과 짝을 이룹니다.

묵상

탐욕·성냄·어리석음 가운데 어떤 말이 행동보다 앞선 조건으로 가장 쉽게 느껴지나요? 자신에게 뿌리가 있다고 단정하거나 없애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한 반응의 바로 앞에서 무엇이 움직였는지만 가볍게 물어볼 수 있을까요?

6 앞의 열 가지와 짝지어 선한 방향을 밝히다 1구절

앞의 일곱 행위를 삼가고 탐욕 없음·악의 없음·바른 견해를 갖추는 선한 열 가지를 밝힙니다.

“벗들이여, 무엇이 선한 것입니까? 생명을 죽임·주지 않은 것을 가짐·그릇된 성행위·거짓말·이간하는 말·거친 말·쓸데없는 말을 삼가는 것, 남의 것을 탐내지 않음, 악의 없음, 바른 견해가 선한 것입니다. 벗들이여, 이것을 선한 것이라고 합니다.”

Katamañcāvuso, kusalaṁ? Pāṇātipātā veramaṇī kusalaṁ, adinnādānā veramaṇī kusalaṁ, kāmesumicchācārā veramaṇī kusalaṁ, musāvādā veramaṇī kusalaṁ, pisuṇāya vācāya veramaṇī kusalaṁ, pharusāya vācāya veramaṇī kusalaṁ, samphappalāpā veramaṇī kusalaṁ, anabhijjhā kusalaṁ, abyāpādo kusalaṁ, sammādiṭṭhi kusalaṁ—idaṁ vuccatāvuso, kusalaṁ.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선한 것의 답은 앞의 열 항목과 정확히 같은 순서를 유지하면서 방향을 바꿉니다. 처음 일곱 항목에는 veramaṇī, 곧 삼감이 각각 붙고, 마음의 셋은 남의 것을 탐내지 않음·악의 없음·바른 견해로 제시됩니다. 그래서 선함은 행동과 말을 멈추는 일곱 선택과 마음의 세 방향을 함께 포함합니다. 질문과 마지막 확인의 “벗들이여”도 둘 다 옮겼습니다. 앞 목록과 항목별로 대조하면 무엇이 사라졌는지뿐 아니라 어떤 방향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지가 드러나며, 다음에는 그 선한 방향의 세 뿌리가 이어집니다.

묵상

일곱 가지 삼감과 마음의 세 방향 가운데 지금 구별하기 쉬운 하나가 있나요? 모두 실천했는지 평가할 필요는 없어요. 어떤 행동을 멈추는 것과 마음이 탐내지 않거나 해치지 않는 것 사이에 느껴지는 차이가 있는지 물어볼 수 있을까요?

7 선한 세 뿌리를 밝히다 1구절

사리뿟따가 선한 것의 뿌리를 탐욕 없음·성냄 없음·어리석음 없음 세 가지로 정의합니다.

“벗들이여, 무엇이 선한 것의 뿌리입니까? 탐욕 없음은 선한 것의 뿌리이고, 성냄 없음은 선한 것의 뿌리이며, 어리석음 없음은 선한 것의 뿌리입니다. 벗들이여, 이것을 선한 것의 뿌리라고 합니다.”

Katamañcāvuso, kusalamūlaṁ? Alobho kusalamūlaṁ, adoso kusalamūlaṁ, amoho kusalamūlaṁ—idaṁ vuccatāvuso, kusalamūlaṁ.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선하지 않은 세 뿌리와 열 가지 선한 행위를 밝힌 뒤, 첫 묶음의 마지막 정의가 나옵니다. alobha·adosa·amoha는 탐욕 없음·성냄 없음·어리석음 없음이며, 각각 kusalamūla라는 같은 서술을 가집니다. 세 이름의 부정 접두사는 선한 뿌리가 탐욕·성냄·어리석음이 약해지거나 없는 방향임을 보여 줍니다. 이를 새로운 실체나 타고난 성격으로 만들지 않고, 구체적인 선택을 낳는 조건으로 읽는 것이 이 묶음의 논리입니다. 질문과 끝의 두 호격도 모두 남겼습니다.

묵상

탐욕 없음·성냄 없음·어리석음 없음 가운데 힘주어 만들지 않아도 잠시 드러났던 방향이 있나요? 그런 경험이 없다거나 잘 모르겠다고 보아도 괜찮아요. 세 항목이 앞의 세 뿌리와 어떻게 반대가 되는지만 느껴 볼 수 있을까요?

8 네 갈래를 알아 괴로움을 끝내다 1구절

선악과 두 뿌리를 아는 성스러운 제자가 세 잠재 성향과 무명을 버려 바로 이 삶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벗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처럼 선하지 않은 것과 그 뿌리, 선한 것과 그 뿌리를 알면, 탐욕의 잠재 성향을 완전히 버리고 반감의 잠재 성향을 물리치며 ‘나는 있다’는 견해와 자만의 잠재 성향을 뿌리 뽑습니다. 무명을 버리고 참된 앎을 일으켜 바로 이 삶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벗들이여, 이만큼으로도 성스러운 제자는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릅니다.

Yato kho, āvuso, ariyasāvako evaṁ akusalaṁ pajānāti, evaṁ akusalamūlaṁ pajānāti, evaṁ kusalaṁ pajānāti, evaṁ kusalamūlaṁ pajānāti, so sabbaso rāgānusayaṁ pahāya, paṭighānusayaṁ paṭivinodetvā, ‘asmī’ti diṭṭhimānānusayaṁ samūhanitvā, avijjaṁ pahāya vijjaṁ uppādetvā, diṭṭheva dhamme dukkhassantakaro hoti—ettāvatāpi kho, āvuso,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n”ti.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첫 묶음의 정의들을 안다는 조건은 구체적인 버림과 결과로 이어집니다. 탐욕의 잠재 성향을 완전히 버림, 반감의 잠재 성향을 물리침, “‘나는 있다’는 견해와 자만”의 잠재 성향을 뿌리 뽑음이 서로 다른 세 동작입니다. 이어 무명을 버리고 참된 앎을 일으키는 대칭과 바로 이 삶에서 괴로움을 끝낸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마지막에는 바른 견해의 네 겹 기준이 다시 확인됩니다. 단순히 목록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뿌리와 결과를 실제로 아는 데까지 바른 견해의 뜻이 이어집니다.

묵상

탐욕을 버림·반감을 물리침·“나는 있다”는 견해와 자만을 뿌리 뽑음이 다른 동사로 놓인 점이 보이나요? 자신의 성취를 판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세 표현 가운데 의미가 가장 분명하거나 가장 낯선 하나만 골라 느껴 볼 수 있을까요?

9 자양분의 네 측면으로 다시 답하다 1구절

비구들이 또 다른 방법을 묻자 사리뿟따가 자양분·일어남·소멸·소멸의 길을 아는 것으로 답합니다.

“좋습니다, 벗이여.” 수행자들은 사리뿟따의 말에 기뻐하고 동의한 뒤 물었습니다. “벗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르는 다른 방법도 있습니까?” “있습니다, 벗들이여. 벗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자양분과 그 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알면, 벗들이여, 이만큼으로도 그는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릅니다.”

“Sādhāvuso”ti kho te bhikkhū āyasmato sāriputtassa bhāsitaṁ abhinanditvā anumoditvā āyasmantaṁ sāriputtaṁ uttari pañhaṁ apucchuṁ: “siyā panāvuso, aññopi pariyāyo yathā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n”ti? “Siyā, āvuso. Yato kho, āvuso, ariyasāvako āhārañca pajānāti, āhārasamudayañca pajānāti, āhāranirodhañca pajānāti, āhāranirodhagāminiṁ paṭipadañca pajānāti—ettāvatāpi kho, āvuso,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ṁ.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선악 묶음을 마친 수행자들은 사리뿟따의 설명을 기뻐하고 동의한 뒤 같은 기준을 만족하는 다른 방법을 묻습니다. 사리뿟따는 있다고 답하고 āhāra, 곧 존재를 유지시키는 자양분을 대상·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의 네 측면으로 제시합니다. 질문의 네 겹 기준과 답의 네 측면을 하나의 문답으로 보존했고, 다섯 번의 “벗” 호칭도 줄이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자양분은 먹는 것만이 아니라 다음 대목의 접촉·마음의 의도·의식까지 포함하는 넓은 조건입니다.

묵상

먹는 것만 떠올리던 자양분이 접촉과 의도와 의식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예고가 어떻게 들리나요? 아직 넓은 뜻이 이해되지 않아도 괜찮아요. 나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조건을 음식 이외에서 하나 떠올릴 수 있는지만 물어볼까요?

10 존재를 유지하는 네 자양분 1구절

태어난 존재를 유지하고 태어나려는 존재를 돕는 덩어리 음식·접촉·마음의 의도·의식 네 자양분을 밝힙니다.

“벗들이여, 무엇이 자양분이며 그 일어남과 소멸과 소멸로 이끄는 길은 무엇입니까? 벗들이여, 태어난 존재들을 유지하고 태어나려는 존재들을 돕는 네 자양분이 있습니다. 어떤 넷입니까? 거칠거나 미세한 덩어리 음식이 첫째, 접촉이 둘째, 마음의 의도가 셋째, 의식이 넷째입니다.”

Katamo panāvuso, āhāro, katamo āhārasamudayo, katamo āhāranirodho, katamā āhāranirodhagāminī paṭipadā? Cattārome, āvuso, āhārā bhūtānaṁ vā sattānaṁ ṭhitiyā, sambhavesīnaṁ vā anuggahāya. Katame cattāro? Kabaḷīkāro āhāro oḷāriko vā sukhumo vā, phasso dutiyo, manosañcetanā tatiyā, viññāṇaṁ catutthaṁ.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자양분의 네 측면을 선언한 뒤 사리뿟따는 같은 네 항목을 질문하고 먼저 대상 자체를 풉니다. 네 자양분의 기능은 이미 태어난 존재의 유지와 태어나려는 존재의 도움이라는 두 방향입니다. 목록은 거칠거나 미세한 덩어리 음식, 접촉, 마음의 의도, 의식의 순서이며 둘째·셋째·넷째라는 서수를 보존했습니다. kabaḷīkāra만 물질적 음식이고 나머지 셋은 경험과 의도가 지속되는 조건입니다. 다음 대목은 이 네 자양분 전체에 공통된 일어남과 소멸의 조건을 갈애로 밝힙니다.

묵상

덩어리 음식·접촉·마음의 의도·의식 가운데 “자양분”이라는 말과 가장 낯설게 붙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 낯섦을 바로 풀지 않아도 괜찮아요. 어떤 접촉이나 의도가 반복될 때 마음이 계속 이어지는 경험이 있는지만 가볍게 느껴 볼까요?

11 갈애와 고귀한 여덟 갈래 길 1구절

자양분은 갈애에서 일어나고 갈애가 소멸하면 소멸하며, 그 소멸로 이끄는 길은 고귀한 여덟 갈래 길입니다.

“갈애의 일어남에서 자양분의 일어남이 있고, 갈애의 소멸에서 자양분의 소멸이 있습니다. 자양분의 소멸로 이끄는 길은 바로 고귀한 여덟 갈래 길입니다. 곧 다음과 같습니다. 바른 견해·바른 의도·바른 말·바른 행위·바른 생계·바른 노력·바른 알아차림·바른 집중입니다.”

Taṇhāsamudayā āhārasamudayo, taṇhānirodhā āhāranirodho,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āhāranirodhagāminī paṭipadā, seyyathidaṁ—sammādiṭṭhi sammāsaṅkappo sammāvācā sammākammanto, sammāājīvo sammāvāyāmo sammāsati sammāsamādhi.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네 자양분의 목록 뒤에는 그것들이 생기고 멎는 공통 조건이 나옵니다. taṇhāsamudaya와 taṇhānirodha는 갈애가 일어나면 자양분이 일어나고 갈애가 소멸하면 자양분도 소멸한다는 정확한 대칭입니다. 이어 소멸로 이끄는 길을 고귀한 여덟 갈래 길이라고 밝히고, 바른 견해에서 바른 삼매까지 여덟 항목을 처음이자 온전한 형태로 열거합니다. 이 완전한 첫 목록은 뒤에서 공식 생략표로 줄어드는 길의 범위를 판별하는 기준이 됩니다.

묵상

자양분 자체를 없애라는 말보다 갈애의 일어남과 소멸을 조건으로 짚는 방식이 어떻게 들리나요? 지금 무엇을 끊으려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어떤 경험을 계속 먹이는 갈애가 있는지, 없다면 여덟 길의 한 이름만 익숙하게 느껴지는지 물어볼까요?

12 자양분을 알아 세 잠재 성향을 놓다 1구절

자양분의 네 측면을 아는 성스러운 제자가 잠재 성향과 무명을 버리고 괴로움을 끝내는 결론입니다.

벗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처럼 자양분과 그 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알면, 탐욕의 잠재 성향을 완전히 버리고 반감의 잠재 성향을 물리치며 ‘나는 있다’는 견해와 자만의 잠재 성향을 뿌리 뽑습니다. 무명을 버리고 참된 앎을 일으켜 바로 이 삶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벗들이여, 이만큼으로도 성스러운 제자는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릅니다.

Yato kho, āvuso, ariyasāvako evaṁ āhāraṁ pajānāti, evaṁ āhārasamudayaṁ pajānāti, evaṁ āhāranirodhaṁ pajānāti, evaṁ āhāranirodhagāminiṁ paṭipadaṁ pajānāti, so sabbaso rāgānusayaṁ pahāya, paṭighānusayaṁ paṭivinodetvā, ‘asmī’ti diṭṭhimānānusayaṁ samūhanitvā, avijjaṁ pahāya vijjaṁ uppādetvā, diṭṭheva dhamme dukkhassantakaro hoti—ettāvatāpi kho, āvuso,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n”ti.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자양분 묶음도 정의만으로 끝나지 않고 그것을 아는 조건과 해방의 결과를 연결합니다. 대상·일어남·소멸·길을 모두 아는 성스러운 제자는 탐욕의 잠재 성향을 버리고, 반감의 잠재 성향을 물리치며, “‘나는 있다’는 견해와 자만”의 잠재 성향을 뿌리 뽑습니다. 무명과 참된 앎의 반대 방향, 바로 이 삶에서 괴로움의 끝, 바른 견해의 네 기준도 첫 결론과 같은 순서로 온전히 반복됩니다. 반복은 각 주제를 아는 일이 같은 해방의 방향으로 수렴함을 보여 줍니다.

묵상

먹는 것과 접촉과 의도와 의식을 한 묶음으로 안다는 말이 괴로움의 끝과 연결되는 흐름에서 어느 부분이 가장 천천히 읽히나요? 자신의 앎을 시험할 필요는 없어요. 네 측면 가운데 지금 구별되는 하나만 확인해도 괜찮아요.

13 괴로움의 네 진리로 또 답하다 1구절

비구들의 반복 질문에 사리뿟따가 괴로움·일어남·소멸·소멸의 길을 아는 바른 견해로 답합니다.

“좋습니다, 벗이여.” 수행자들은 사리뿟따의 말에 기뻐하고 동의한 뒤 물었습니다. “벗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르는 다른 방법도 있습니까?” “있습니다, 벗들이여. 벗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괴로움과 그 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알면, 벗들이여, 이만큼으로도 그는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릅니다.”

“Sādhāvuso”ti kho te bhikkhū āyasmato sāriputtassa bhāsitaṁ abhinanditvā anumoditvā āyasmantaṁ sāriputtaṁ uttari pañhaṁ apucchuṁ: “siyā panāvuso, aññopi pariyāyo yathā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n”ti? “Siyā, āvuso. Yato kho, āvuso, ariyasāvako dukkhañca pajānāti, dukkhasamudayañca pajānāti, dukkhanirodhañca pajānāti, dukkhanirodhagāminiṁ paṭipadañca pajānāti—ettāvatāpi kho, āvuso,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ṁ.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자양분 묶음 뒤 수행자들은 다시 설명을 기뻐하고 동의하며 같은 질문을 합니다. 사리뿟따의 셋째 답은 dukkha·samudaya·nirodha·nirodhagāminī paṭipadā, 곧 괴로움과 그 일어남, 소멸, 소멸로 이끄는 길이라는 네 진리입니다. 질문의 네 기준과 답의 네 항목, 다섯 번의 “벗” 호칭을 모두 같은 문답 안에 두었습니다. 이 대목은 뒤의 연기 고리마다 되풀이될 네 측면의 기본 틀을 세우며, 다음 네 대목이 괴로움부터 길까지 하나씩 정의합니다.

묵상

괴로움만 떼어 묻지 않고 일어남·소멸·길을 함께 묻는 구성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지금의 어려움을 네 항목에 맞춰 분석할 필요는 없어요. “무엇인가”와 “어떻게 멎는가”가 같은 질문 안에 있다는 점만 느껴 보아도 괜찮아요.

14 괴로움의 여러 모습과 다섯 집착 무더기 1구절

태어남·늙음·죽음과 슬픔에서 절망까지, 싫은 것과 만남·좋은 것과 헤어짐·뜻대로 되지 않음·다섯 집착 무더기를 밝힙니다.

“벗들이여, 무엇이 괴로움이고 그 일어남과 소멸과 소멸로 이끄는 길은 무엇입니까? 태어남도 괴로움이고, 늙음도 괴로우며, 죽음도 괴로움입니다. 슬픔·비탄·육체적 괴로움·정신적 괴로움·절망도 괴로움이고, 싫은 것과 만남, 좋은 것과 헤어짐,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함도 괴로움입니다. 요컨대 다섯 집착 무더기가 괴로움입니다. 벗들이여, 이것을 괴로움이라 합니다.”

Katamaṁ panāvuso, dukkhaṁ, katamo dukkhasamudayo, katamo dukkhanirodho, katamā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 Jātipi dukkhā, jarāpi dukkhā, maraṇampi dukkhaṁ,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pi dukkhā, appiyehi sampayogopi dukkho, piyehi vippayogopi dukkho, yampicchaṁ na labhati tampi dukkhaṁ, saṅ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idaṁ vuccatāvuso, dukkhaṁ.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네 진리의 첫 정의는 괴로움의 범위를 단계적으로 넓힙니다. 태어남·늙음·죽음 뒤에 슬픔·비탄·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의 다섯 경험이 오고, 싫은 것과 만남·좋은 것과 헤어짐·원하는 것을 얻지 못함의 세 관계가 이어집니다. 마지막 saṅkhittena는 이를 요약해 다섯 집착 무더기가 괴로움이라고 묶습니다. 어느 한 감정만 괴로움의 전부로 만들지 않고 삶의 조건과 경험과 집착의 구조를 함께 봅니다. 다음 답은 이 괴로움이 일어나는 조건을 갈애로 밝힙니다.

묵상

긴 목록 가운데 지금 읽기 힘들거나 가까이 느껴지는 항목이 있나요? 감정을 줄이거나 이유를 설명할 필요는 없어요. 힘들다면 이 대목을 잠시 건너뛰어도 괜찮고, 읽는다면 여러 경험을 하나의 잘못으로 몰지 않는 점만 느껴 볼 수 있을까요?

15 괴로움의 일어남인 세 갈애 1구절

다시 존재하게 하고 즐김과 탐욕을 동반하며 곳곳에서 즐기는 갈애를 감각적 쾌락·존재·비존재의 세 갈애로 풉니다.

“벗들이여, 무엇이 괴로움의 일어남입니까? 다시 존재하게 하고 즐김과 탐욕을 동반하며 이곳저곳에서 즐기는 바로 그 갈애입니다. 곧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 비존재에 대한 갈애입니다. 벗들이여, 이것을 괴로움의 일어남이라 합니다.”

Katamo cāvuso, dukkhasamudayo? Yāyaṁ taṇhā ponobbhavikā nandīrāgasahagatā tatratatrābhinandinī, seyyathidaṁ—kāmataṇhā bhavataṇhā vibhavataṇhā—ayaṁ vuccatāvuso, dukkhasamudayo.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괴로움의 목록 다음에는 그 일어남을 설명하는 하나의 갈애와 세 갈래가 나옵니다. ponobbhavikā는 다시 존재하게 함, nandīrāgasahagatā는 즐김과 탐욕을 동반함, tatratatrābhinandinī는 이곳저곳에서 즐김이라는 세 성격입니다. 이어 감각적 쾌락·존재·비존재에 대한 갈애가 정확한 순서로 열거됩니다. 좋아하는 것을 더 원함만이 아니라 계속 존재하려는 방향과 존재하지 않으려는 방향도 같은 갈애의 범위에 들어갑니다. 다음 대목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바로 그 갈애”가 남김없이 사라지는 일을 소멸로 정의합니다.

묵상

감각적 쾌락·존재·비존재에 대한 세 갈애 가운데 뜻이 가장 낯선 것은 무엇인가요? 어떤 마음을 위험하다고 진단하거나 당장 버릴 필요는 없어요. 계속되기를 바람과 사라지기를 바람이 모두 붙듦일 수 있는지만 물어볼까요?

16 바로 그 갈애가 남김없이 소멸하다 1구절

괴로움의 소멸을 갈애가 남김없이 식어 소멸함과 내어 줌·놓아 버림·해방·기대지 않음으로 풉니다.

“벗들이여, 무엇이 괴로움의 소멸입니까? 바로 그 갈애가 남김없이 식어 소멸하는 것, 그것을 내어 주고 놓아 버리며 해방하고 기대지 않는 것입니다. 벗들이여, 이것을 괴로움의 소멸이라 합니다.”

Katamo cāvuso, dukkhanirodho? Yo tassāyeva taṇhāya asesavirāganirodho cāgo paṭinissaggo mutti anālayo—ayaṁ vuccatāvuso, dukkhanirodho.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일어남을 낳는 세 갈애 뒤에는 괴로움의 소멸이 나옵니다. tassāyeva는 다른 대상이 아니라 “바로 그 갈애”를 가리키고, asesa는 남김없음을 분명히 합니다. virāga와 nirodha는 갈애가 식음과 소멸함을 나타내며, cāga·paṭinissagga·mutti·anālaya는 내어 줌·놓아 버림·해방·기대지 않음의 네 표현입니다. 감정을 억지로 없애거나 존재 자체를 부정하라는 말로 바꾸지 않고, 괴로움을 일으키던 갈애와 기대가 힘을 잃는 방향으로 읽어야 합니다. 다음에는 이 소멸로 이끄는 실천의 길이 이어집니다.

묵상

내어 줌·놓아 버림·해방·기대지 않음 가운데 같은 방향을 조금 다르게 보여 주는 말이 있나요? 실제로 무언가를 버리라고 요구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네 말 중 지금 가장 부드럽게 들리는 하나만 골라 느껴 볼 수 있을까요?

17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 1구절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을 고귀한 여덟 갈래 길로 밝히고 첫째와 마지막 항목 사이를 공식 생략합니다.

“벗들이여, 무엇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입니까? 바로 이 고귀한 여덟 갈래 길입니다. 곧 바른 견해 … 바른 집중입니다. 벗들이여, 이것을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라 합니다.”

Katamā cāvuso,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seyyathidaṁ—sammādiṭṭhi …pe… sammāsamādhi—ayaṁ vuccatāvuso,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네 진리의 넷째 답은 소멸로 이끄는 paṭipadā, 곧 실천의 길을 묻고 고귀한 여덟 갈래 길이라고 답합니다. 공식 생략표 …pe… 한 곳은 바른 견해와 바른 삼매 사이의 바른 의도·말·행위·생계·노력·알아차림 여섯 항목을 줄입니다. 그 전체 범위는 자양분 묶음에서 이미 여덟 항목으로 온전히 제시되었습니다. 한국어와 빠알리에서 같은 위치에 같은 공식 생략표를 두었고, 마지막에는 이 길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라는 정의를 다시 닫습니다.

묵상

바른 견해에서 바른 삼매까지의 길이 괴로움을 직접 비난하거나 밀쳐 내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 어떻게 들리나요? 여덟 항목을 외울 필요는 없어요. 이미 익숙하거나 지금 궁금한 한 갈래가 있는지만 물어볼 수 있을까요?

18 네 진리를 알아 괴로움을 끝내다 1구절

괴로움의 네 측면을 아는 성스러운 제자가 세 잠재 성향과 무명을 버리고 바로 이 삶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벗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처럼 괴로움과 그 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알면, 탐욕의 잠재 성향을 완전히 버리고 반감의 잠재 성향을 물리치며 ‘나는 있다’는 견해와 자만의 잠재 성향을 뿌리 뽑습니다. 무명을 버리고 참된 앎을 일으켜 바로 이 삶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벗들이여, 이만큼으로도 성스러운 제자는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릅니다.

Yato kho, āvuso, ariyasāvako evaṁ dukkhaṁ pajānāti, evaṁ dukkhasamudayaṁ pajānāti, evaṁ dukkhanirodhaṁ pajānāti, evaṁ dukkhanirodhagāminiṁ paṭipadaṁ pajānāti, so sabbaso rāgānusayaṁ pahāya, paṭighānusayaṁ paṭivinodetvā, ‘asmī’ti diṭṭhimānānusayaṁ samūhanitvā, avijjaṁ pahāya vijjaṁ uppādetvā, diṭṭheva dhamme dukkhassantakaro hoti—ettāvatāpi kho, āvuso,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n”ti.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괴로움·일어남·소멸·길의 정의를 마친 뒤 첫 두 묶음과 같은 해방의 결론이 온전히 반복됩니다. 네 진리를 아는 조건에서 탐욕·반감·“나는 있다”는 견해와 자만의 세 잠재 성향을 각각 버리고 물리치고 뿌리 뽑습니다. 무명을 버림과 참된 앎을 일으킴, 바로 이 삶에서 괴로움을 끝냄, 바른 견해의 네 기준이 차례로 이어집니다. 이 결론 뒤부터 사리뿟따는 늙음과 죽음에서 무명까지 조건의 고리를 거꾸로 짚으며, 각 고리에도 같은 네 측면의 틀을 적용합니다.

묵상

네 진리가 다시 잠재 성향과 무명의 버림으로 이어지는 흐름에서 어느 연결이 가장 또렷하거나 낯선가요? 자신의 이해나 해탈을 확인할 필요는 없어요. 네 측면이 단순한 설명에서 삶의 방향으로 넘어가는 지점만 느껴 보아도 괜찮아요.

19 늙음과 죽음의 네 측면을 묻다 1구절

비구들의 반복 질문에 사리뿟따가 늙음과 죽음·일어남·소멸·소멸의 길을 아는 것으로 답합니다.

“좋습니다, 벗이여.” 수행자들은 사리뿟따의 말에 기뻐하고 동의한 뒤 물었습니다. “벗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르는 다른 방법도 있습니까?” “있습니다, 벗들이여. 벗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늙음과 죽음과 그 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알면, 벗들이여, 이만큼으로도 그는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릅니다.”

“Sādhāvuso”ti kho te bhikkhū āyasmato sāriputtassa bhāsitaṁ abhinanditvā anumoditvā āyasmantaṁ sāriputtaṁ uttari pañhaṁ apucchuṁ: “siyā panāvuso, aññopi pariyāyo yathā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n”ti? “Siyā, āvuso. Yato kho, āvuso, ariyasāvako jarāmaraṇañca pajānāti, jarāmaraṇasamudayañca pajānāti, jarāmaraṇanirodhañca pajānāti, jarāmaraṇanirodhagāminiṁ paṭipadañca pajānāti—ettāvatāpi kho, āvuso,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ṁ.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네 진리를 들은 수행자들은 사리뿟따의 말에 기뻐하고 동의한 뒤, 같은 바른 견해에 이르는 다른 설명이 있는지 다시 묻습니다. 이곳은 질문을 줄이지 않은 첫 연기 문답이므로 기쁨·동의·청문과 바른 견해의 네 기준이 모두 직접 나옵니다. 사리뿟따는 “있습니다”라고 답하고 늙음과 죽음, 그 일어남, 소멸, 소멸로 이끄는 길을 아는 것이 또 하나의 방식이라고 밝힙니다. 질문자의 두 “벗이여”와 답변자의 세 “벗들이여”를 남겨 수행자들과 사리뿟따의 발화를 구별했습니다.

묵상

늙음과 죽음을 피해야 할 낱말로만 두지 않고, 무엇에서 일어나며 어떻게 소멸하는지까지 함께 묻는 구성이 어떻게 들리나요? 개인의 상실이나 상태를 떠올릴 필요는 없어요. 힘들다면 이 대목을 건너뛰어도 괜찮습니다.

20 늙음의 일곱 징후를 정의하다 1구절

늙음을 노쇠·이 부러짐·머리 셈·피부 주름·수명 쇠퇴·감각 기능 쇠퇴까지 일곱 표현으로 정의합니다.

“벗들이여, 무엇이 늙음과 죽음이며 그 일어남과 소멸과 소멸로 이끄는 길은 무엇입니까? 여러 존재가 저마다 속한 존재 부류에서 겪는 늙음, 노쇠, 이가 부러짐, 머리가 셈, 피부가 주름짐, 수명이 쇠퇴함, 감각 기능이 쇠퇴함을 말합니다. 벗들이여, 이것을 늙음이라 합니다.”

Katamaṁ panāvuso, jarāmaraṇaṁ, katamo jarāmaraṇasamudayo, katamo jarāmaraṇanirodho, katamā jarāmaraṇanirodhagāminī paṭipadā? Yā tesaṁ tesaṁ sattānaṁ tamhi tamhi sattanikāye jarā jīraṇatā khaṇḍiccaṁ pāliccaṁ valittacatā āyuno saṁhāni indriyānaṁ paripāko—ayaṁ vuccatāvuso, jarā.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네 측면의 선언 뒤 먼저 jarā, 늙음을 풉니다. “여러 존재가 저마다 속한 존재 부류에서”라는 범위를 보존하고, 늙음·노쇠·이 부러짐·머리 셈·피부 주름·수명 쇠퇴·감각 기능 쇠퇴라는 일곱 표현을 순서대로 옮겼습니다. 마지막 indriyānaṁ paripāko는 다른 문맥에서 기능의 성숙을 뜻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늙음의 목록 안에서 감각 기능이 노화하여 쇠퇴하는 국면을 가리킵니다. 늙음을 한 순간이나 외모 하나로 줄이지 않고 몸과 수명과 감각 기능에 걸친 변화로 정의합니다. 다음 대목은 죽음의 더 긴 목록을 별도로 묻고 답합니다.

묵상

일곱 표현 가운데 늙음을 단순한 나이 숫자와 다르게 느끼게 하는 말이 있나요?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상태를 판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이 대목이 힘들다면 건너뛰어도 되고, 읽는다면 변화의 여러 얼굴만 조용히 알아보아도 괜찮아요.

21 죽음을 정의하고 늙음과 묶다 1구절

죽음을 떠남·사라짐·무더기의 해체·시신이 놓임·생명 기능의 끊어짐 등으로 정의한 뒤 늙음과 죽음으로 묶습니다.

“벗들이여, 무엇이 죽음입니까? 여러 존재가 저마다 속한 존재 부류에서 떠남, 사라짐, 무너짐, 없어짐, 죽음, 목숨을 마침, 무더기의 해체, 시신이 놓임, 생명 기능의 끊어짐을 말합니다. 벗들이여, 이것을 죽음이라 합니다. 이것이 늙음이고 이것이 죽음이니, 벗들이여, 이것을 늙음과 죽음이라 합니다.”

Katamañcāvuso, maraṇaṁ? Yā tesaṁ tesaṁ sattānaṁ tamhā tamhā sattanikāyā cuti cavanatā bhedo antaradhānaṁ maccu maraṇaṁ kālaṅkiriyā khandhānaṁ bhedo, kaḷevarassa nikkhepo, jīvitindriyassupacchedo—idaṁ vuccatāvuso, maraṇaṁ. Iti ayañca jarā idañca maraṇaṁ—idaṁ vuccatāvuso, jarāmaraṇaṁ.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늙음의 정의와 구별해 maraṇa, 죽음을 다시 묻습니다. “여러 존재가 저마다 속한 존재 부류에서”라는 범위를 먼저 두고, 떠남·사라짐·무너짐·없어짐·죽음·목숨을 마침·무더기의 해체·시신이 놓임·생명 기능의 끊어짐을 차례로 열거합니다. kaḷevarassa nikkhepo는 시신을 내려놓거나 두는 상태를 가리키므로, 장례 의식을 뜻할 수 있는 “안치”를 피하고 중립적인 “시신이 놓임”으로 옮겼습니다. 마지막 두 문장은 늙음과 죽음을 각각 가리킨 뒤 하나의 jarāmaraṇa로 묶습니다. 원문이 구별한 정의와 결합을 그대로 남겼으며, 죽음을 권하거나 미화하는 뜻은 없습니다. 이 대목이 힘든 독자는 잠시 건너뛰어도 괜찮습니다.

묵상

죽음에 관한 긴 목록이 힘들게 느껴진다면 지금은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읽을 수 있다면 늙음과 죽음을 먼저 따로 정의한 뒤 한 묶음으로 합치는 순서만 보아도 충분해요. 개인의 경험이나 감정을 이 목록에 맞춰 설명할 필요는 없어요.

22 태어남에 따라 늙음과 죽음이 일어나다 1구절

늙음과 죽음은 태어남에서 일어나고 태어남이 소멸하면 소멸하며, 고귀한 여덟 갈래 길이 그 소멸로 이끕니다.

“태어남의 일어남에서 늙음과 죽음의 일어남이 있고, 태어남의 소멸에서 늙음과 죽음의 소멸이 있습니다. 늙음과 죽음의 소멸로 이끄는 길은 바로 고귀한 여덟 갈래 길입니다. 곧 다음과 같습니다. 바른 견해 … 바른 집중입니다.”

Jātisamudayā jarāmaraṇasamudayo, jātinirodhā jarāmaraṇanirodho,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jarāmaraṇanirodhagāminī paṭipadā, seyyathidaṁ—sammādiṭṭhi …pe… sammāsamādhi.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늙음과 죽음을 각각 정의하고 하나로 묶은 뒤 조건 관계가 이어집니다. 이어 태어남의 일어남과 소멸이 각각 늙음과 죽음의 일어남과 소멸에 대응합니다. 같은 조건을 긍정과 소멸의 두 방향으로 정확히 짝지었고, 소멸로 이끄는 길은 고귀한 여덟 갈래 길입니다. 공식 생략표 …pe… 한 곳은 앞에서 온전히 제시된 바른 의도·말·행위·생계·노력·알아차림 여섯 항목을 줄이며, 바른 견해와 바른 삼매는 직접 남깁니다. 한국어와 빠알리가 같은 범위를 줄였고 새로운 조건이나 결과는 빠지지 않았습니다.

묵상

늙음과 죽음을 고정된 것으로 보지 않고 태어남에 따라 일어나고 멎는다고 읽으면 무엇이 달라지나요? 그 조건을 당장 없애거나 통제할 필요는 없어요. 두 항목 사이의 관계가 경험에서 조금이라도 보이는지, 모르겠다면 문장의 대칭만 느껴 보아도 괜찮아요.

23 늙음과 죽음을 네 측면으로 알아 해방으로 향하다 1구절

태어남에 기대어 일어나는 늙음과 죽음을 네 측면으로 아는 일이 해방의 정형과 괴로움의 끝으로 이어집니다.

벗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처럼 늙음과 죽음과 그 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알면, 탐욕의 잠재 성향을 완전히 버리고 … 바로 이 삶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벗들이여, 이만큼으로도 성스러운 제자는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릅니다.

Yato kho, āvuso, ariyasāvako evaṁ jarāmaraṇaṁ pajānāti, evaṁ jarāmaraṇasamudayaṁ pajānāti, evaṁ jarāmaraṇanirodhaṁ pajānāti, evaṁ jarāmaraṇanirodhagāminiṁ paṭipadaṁ pajānāti, so sabbaso rāgānusayaṁ pahāya …pe… dukkhassantakaro hoti—ettāvatāpi kho, āvuso,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n”ti.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늙음과 죽음을 각각 정의하고 태어남을 그 조건으로 밝힌 뒤, 사리뿟따는 이 네 측면을 아는 성스러운 제자의 결과를 말합니다. 직접 남은 문구는 탐욕의 잠재 성향을 완전히 버림과 바로 이 삶에서 괴로움을 끝냄입니다. 공식 생략표 …pe… 한 곳은 그 사이의 반감의 잠재 성향을 물리침, “‘나는 있다’는 견해와 자만”의 잠재 성향을 뿌리 뽑음, 무명을 버리고 참된 앎을 일으킴을 줄입니다. 한국어와 빠알리는 같은 범위를 생략하고 마지막 바른 견해의 네 기준은 온전히 보존합니다.

묵상

늙음과 죽음을 아는 일이 단순한 사실 인정이 아니라 일어남·소멸·길을 함께 보는 일로 제시됩니다. 이 대목이 무겁다면 멈추거나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읽는다면 네 측면 중 지금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만 남겨 두어도 충분합니다.

24 태어남의 네 측면을 다시 묻다 1구절

공식 생략된 반복 질문에 사리뿟따가 태어남·일어남·소멸·소멸의 길을 아는 것으로 답합니다.

“좋습니다, 벗이여.” 비구들은 … 다시 물었습니다. “벗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지니는 또 다른 방법도 …” “있습니다, 벗들이여. 벗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태어남과 그 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알면, 벗들이여, 이만큼으로도 그는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릅니다.”

“Sādhāvuso”ti kho …pe… apucchuṁ—siyā panāvuso …pe… “siyā, āvuso. Yato kho, āvuso, ariyasāvako jātiñca pajānāti, jātisamudayañca pajānāti, jātinirodhañca pajānāti, jātinirodhagāminiṁ paṭipadañca pajānāti—ettāvatāpi kho, āvuso,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ṁ.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늙음과 죽음의 결론을 들은 비구들은 다시 기뻐하며 동의하고, 바른 견해에 이르는 다른 방법을 묻습니다. 질문의 두 공식 생략표 …pe…는 앞에서 온전히 나온 기쁨과 동의의 서술, 그리고 바른 견해·곧은 견해·흔들림 없는 확신·참된 가르침에 이름이라는 기준을 각각 줄입니다. 사리뿟따는 “있습니다”라고 답한 뒤 태어남과 그 일어남·소멸·길을 아는 일을 제시합니다. 두 질문 호격과 답의 세 호격을 그대로 남겼고, 다음 설명에서 존재가 태어남의 조건으로 밝혀집니다.

묵상

태어남을 한 번의 사건으로만 보지 않고 일어남과 소멸, 그 길까지 네 방향으로 묻는 구성이 어떻게 다가오나요? 자신의 출생이나 믿음을 해석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다음의 여섯 표현 가운데 무엇을 태어남이라 부르는지만 천천히 읽어도 충분합니다.

25 태어남의 여섯 표현과 존재라는 조건 1구절

태어남을 여섯 표현으로 정의하고 존재의 일어남·소멸 및 고귀한 여덟 갈래 길과 연결합니다.

“벗들이여, 무엇이 태어남이며 그 일어남과 소멸과 소멸로 이끄는 길은 무엇입니까? 여러 존재가 저마다 속한 존재 부류에서 겪는 태어남, 생겨남, 잉태, 출생, 무더기의 나타남, 감각 영역의 획득을 말합니다. 벗들이여, 이것을 태어남이라 합니다. 존재의 일어남에서 태어남의 일어남이 있고, 존재의 소멸에서 태어남의 소멸이 있습니다. 그 소멸로 이끄는 길은 고귀한 여덟 갈래 길, 곧 바른 견해 … 바른 집중입니다.”

Katamā panāvuso, jāti, katamo jātisamudayo, katamo jātinirodho, katamā jātinirodhagāminī paṭipadā? Yā tesaṁ tesaṁ sattānaṁ tamhi tamhi sattanikāye jāti sañjāti okkanti abhinibbatti khandhānaṁ pātubhāvo, āyatanānaṁ paṭilābho—ayaṁ vuccatāvuso, jāti. Bhavasamudayā jātisamudayo, bhavanirodhā jātinirodho,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jātinirodhagāminī paṭipadā, seyyathidaṁ—sammādiṭṭhi …pe… sammāsamādhi.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태어남의 정의는 여러 존재와 여러 존재 부류를 범위로 두고, 태어남·생겨남·잉태·출생·무더기의 나타남·감각 영역의 획득이라는 여섯 표현을 순서대로 놓습니다. 이어 존재의 일어남과 소멸이 태어남의 일어남과 소멸에 정확히 대응합니다. 고귀한 여덟 갈래 길의 공식 생략표 …pe… 한 곳은 이미 온전히 나온 가운데 여섯 항목만 줄이며, 양언어의 범위가 같습니다. 이 묶음은 태어남을 한 순간만이 아니라 경험을 이루는 무더기와 감각 영역이 드러나는 과정으로 풉니다.

묵상

태어남을 무더기의 나타남과 감각 영역의 획득까지 포함해 설명하는 점이 어떻게 들리나요? 어떤 믿음을 확정하거나 자신의 삶을 해석할 필요는 없어요. 여섯 표현 가운데 이해되는 하나와 낯선 하나가 있는지만 느껴 볼 수 있을까요?

26 태어남의 여섯 표현을 알아 괴로움의 끝으로 향하다 1구절

태어남의 여섯 표현과 존재라는 조건을 네 측면으로 아는 일이 생략된 해방의 정형 뒤 괴로움의 끝으로 이어집니다.

벗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처럼 태어남과 그 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알면, 탐욕의 잠재 성향을 완전히 버리고 … 바로 이 삶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벗들이여, 이만큼으로도 성스러운 제자는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릅니다.

Yato kho, āvuso, ariyasāvako evaṁ jātiṁ pajānāti, evaṁ jātisamudayaṁ pajānāti, evaṁ jātinirodhaṁ pajānāti, evaṁ jātinirodhagāminiṁ paṭipadaṁ pajānāti, so sabbaso rāgānusayaṁ pahāya …pe… dukkhassantakaro hoti—ettāvatāpi kho, āvuso,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n”ti.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태어남을 생겨남·잉태·출생·무더기의 나타남·감각 영역의 획득까지 여섯 표현으로 밝히고, 존재에 따른 일어남과 소멸을 설명한 뒤 결과가 이어집니다. 이 대목은 탐욕의 잠재 성향을 완전히 버림과 바로 이 삶에서 괴로움을 끝냄을 직접 말합니다. 공식 생략표 …pe…는 반감의 잠재 성향, “‘나는 있다’는 견해와 자만”의 잠재 성향, 무명의 버림과 참된 앎의 일어남을 줄입니다. 양언어의 생략 범위는 같고, 끝의 바른 견해 네 기준은 남아 있습니다.

묵상

태어남에 무더기의 나타남과 감각 영역의 획득까지 포함된다는 설명에서 익숙한 뜻과 다른 부분이 있나요? 어떤 존재관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요. 여섯 표현이 한 과정의 서로 다른 면을 가리키는지만 살펴보는 것도 가능합니다.

27 존재의 네 측면을 다시 묻다 1구절

공식 생략된 반복 질문에 사리뿟따가 존재·일어남·소멸·소멸의 길을 아는 것으로 답합니다.

“좋습니다, 벗이여.” 비구들은 … 다시 물었습니다. “벗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지니는 또 다른 방법도 …” “있습니다, 벗들이여. 벗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존재와 그 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알면, 벗들이여, 이만큼으로도 그는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릅니다.”

“Sādhāvuso”ti kho …pe… apucchuṁ—siyā panāvuso …pe… “siyā, āvuso. Yato kho, āvuso, ariyasāvako bhavañca pajānāti, bhavasamudayañca pajānāti, bhavanirodhañca pajānāti, bhavanirodhagāminiṁ paṭipadañca pajānāti—ettāvatāpi kho, āvuso,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ṁ.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태어남의 결론 뒤 비구들은 바른 견해를 설명하는 또 다른 길을 묻고, 사리뿟따는 존재를 네 측면으로 아는 일이라고 답합니다. 질문에 놓인 두 공식 생략표 …pe…는 비구들의 기쁨과 동의, 그리고 바른 견해에 관한 네 기준을 앞의 온전한 문답과 같은 범위로 줄입니다. 답의 “있습니다”와 이어지는 선언은 생략하지 않았으며 모든 호격도 보존했습니다. 다음 설명은 존재를 감각적 욕망·물질·비물질의 세 영역에 따라 나누고, 집착을 그 일어남과 소멸의 조건으로 밝힙니다.

묵상

존재를 막연한 하나로 두지 않고 세 범주와 집착이라는 조건 아래 묻는 방식이 어떻게 들리나요? 세 범주를 자신의 경험에 맞춰 판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집착이 일어날 때 존재도 일어난다는 문장만 잠시 남겨 두어도 충분합니다.

28 세 존재 영역과 집착이라는 조건 1구절

감각적 욕망·물질·비물질의 세 영역에서의 존재를 밝히고 집착을 일어남과 소멸의 조건으로 제시합니다.

“벗들이여, 무엇이 존재이며 그 일어남과 소멸과 소멸로 이끄는 길은 무엇입니까? 벗들이여, 세 가지 존재가 있습니다. 곧 감각적 욕망의 영역에서의 존재, 물질 영역에서의 존재, 비물질 영역에서의 존재입니다. 집착의 일어남에서 존재의 일어남이 있고, 집착의 소멸에서 존재의 소멸이 있습니다. 그 소멸로 이끄는 길은 고귀한 여덟 갈래 길, 곧 바른 견해 … 바른 집중입니다.”

Katamo panāvuso, bhavo, katamo bhavasamudayo, katamo bhavanirodho, katamā bhavanirodhagāminī paṭipadā? Tayome, āvuso, bhavā—kāmabhavo, rūpabhavo, arūpabhavo. Upādānasamudayā bhavasamudayo, upādānanirodhā bhavanirodho,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bhavanirodhagāminī paṭipadā, seyyathidaṁ—sammādiṭṭhi …pe… sammāsamādhi.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존재는 먼저 세 가지라고 수를 밝힌 뒤 kāmabhava·rūpabhava·arūpabhava, 곧 감각적 욕망의 영역·물질 영역·비물질 영역에서의 존재로 나뉩니다. kāma를 순간의 감각적 쾌락 하나로 줄이지 않고 감각적 욕망이 작동하는 존재 영역으로 옮겼습니다. 이어 집착의 일어남과 소멸이 존재의 일어남과 소멸에 대응하고, 소멸의 길은 고귀한 여덟 갈래 길입니다. 공식 생략표 …pe… 한 곳은 처음과 마지막 사이의 여섯 길만 줄이며 양언어가 같습니다. 존재를 막연한 실재로 고정하지 않고 세 영역과 집착이라는 조건 아래에서 일어나고 멎는 과정으로 설명합니다.

묵상

감각적 욕망·물질·비물질이라는 세 영역에서의 존재가 한 묶음으로 놓인 점에서 무엇이 보이나요? 세 범주를 체험이나 믿음으로 판정할 필요는 없어요. “집착이 일어나면 존재가 일어난다”는 조건문만 지금 이해되는지 물어보아도 괜찮아요?

29 세 가지 존재와 그 조건을 알아 붙듦에서 벗어나다 1구절

감각적 욕망·물질·비물질의 세 영역에서 이어지는 존재와 집착이라는 조건을 아는 일이 잠재 성향의 버림과 괴로움의 끝으로 이어집니다.

벗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처럼 존재와 그 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알면, 탐욕의 잠재 성향을 완전히 버리고 … 바로 이 삶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벗들이여, 이만큼으로도 성스러운 제자는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릅니다.

Yato kho, āvuso, ariyasāvako evaṁ bhavaṁ pajānāti, evaṁ bhavasamudayaṁ pajānāti, evaṁ bhavanirodhaṁ pajānāti, evaṁ bhavanirodhagāminiṁ paṭipadaṁ pajānāti, so sabbaso rāgānusayaṁ pahāya …pe… dukkhassantakaro hoti. Ettāvatāpi kho, āvuso,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n”ti.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사리뿟따는 존재를 감각적 욕망의 영역, 물질 영역, 비물질 영역에서의 존재로 구별하고 집착을 그 조건으로 제시한 뒤, 이 전체를 아는 결과를 말합니다. 탐욕의 잠재 성향을 완전히 버림과 바로 이 삶에서 괴로움을 끝냄은 직접 남습니다. 공식 생략표 …pe… 한 곳은 반감과 “‘나는 있다’는 견해와 자만”의 잠재 성향을 다루는 두 동작, 무명을 버리고 참된 앎을 일으키는 동작을 줄입니다. 한국어와 빠알리의 생략 범위 및 뒤의 바른 견해 네 기준이 서로 맞습니다.

묵상

감각적 욕망·물질·비물질이라는 세 영역보다 그것들을 일으키는 집착이라는 조건이 더 선명하게 들리나요? 어느 범주가 사실인지 정할 필요는 없어요. 붙드는 마음과 이어지는 존재 방식이 있는지 열린 질문으로 남겨 두어도 괜찮습니다.

30 집착의 네 측면을 다시 묻다 1구절

공식 생략된 반복 질문에 사리뿟따가 집착·일어남·소멸·소멸의 길을 아는 것으로 답합니다.

“좋습니다, 벗이여.” 비구들은 … 다시 물었습니다. “벗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지니는 또 다른 방법도 …” “있습니다, 벗들이여. 벗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집착과 그 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알면, 벗들이여, 이만큼으로도 그는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릅니다.”

“Sādhāvuso”ti kho …pe… apucchuṁ—siyā panāvuso …pe… “siyā, āvuso. Yato kho, āvuso, ariyasāvako upādānañca pajānāti, upādānasamudayañca pajānāti, upādānanirodhañca pajānāti, upādānanirodhagāminiṁ paṭipadañca pajānāti—ettāvatāpi kho, āvuso,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ṁ.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존재의 결론 다음에 비구들은 다시 질문하고, 사리뿟따는 집착과 그 일어남·소멸·길을 아는 일을 바른 견해의 또 다른 방식으로 제시합니다. 질문의 첫 공식 생략표 …pe…는 기쁨과 동의의 서술을, 둘째 생략표는 바른 견해의 네 기준을 앞 문답과 같은 범위로 줄입니다. 답의 “있습니다”와 세 번의 “벗들이여”는 직접 남아 있습니다. 이어지는 정의에서는 감각적 쾌락·견해·계율과 의식·자아 주장이라는 네 집착을 구별하고, 갈애를 집착의 조건으로 밝힙니다.

묵상

집착이 감각적 쾌락뿐 아니라 견해·계율과 의식·자아 주장에도 미칠 수 있다는 예고가 어떤 차이를 만드나요? 지금 붙들고 있는 것을 찾아내야 할 필요는 없어요. 집착에도 서로 다른 대상이 있다는 점만 기억해도 괜찮습니다.

31 네 가지 집착과 갈애라는 조건 1구절

감각적 쾌락·견해·계율과 의식·자아 주장의 네 집착을 밝히고 갈애와 연결합니다.

“벗들이여, 무엇이 집착이며 그 일어남과 소멸과 소멸로 이끄는 길은 무엇입니까? 벗들이여, 네 가지 집착이 있습니다. 곧 감각적 쾌락에 대한 집착, 견해에 대한 집착, 계율과 의례에 대한 집착, 자아 주장에 대한 집착입니다. 갈애의 일어남에서 집착의 일어남이 있고, 갈애의 소멸에서 집착의 소멸이 있습니다. 그 길은 고귀한 여덟 갈래 길, 곧 바른 견해 … 바른 집중입니다.”

Katamaṁ panāvuso, upādānaṁ, katamo upādānasamudayo, katamo upādānanirodho, katamā upādānanirodhagāminī paṭipadā? Cattārimāni, āvuso, upādānāni—kāmupādānaṁ, diṭṭhupādānaṁ, sīlabbatupādānaṁ, attavādupādānaṁ. Taṇhāsamudayā upādānasamudayo, taṇhānirodhā upādānanirodho,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upādānanirodhagāminī paṭipadā, seyyathidaṁ—sammādiṭṭhi …pe… sammāsamādhi.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집착은 네 가지라고 수를 먼저 밝히고, 감각적 쾌락·견해·계율과 의식·자아 주장에 대한 집착을 순서대로 열거합니다. 네 대상을 하나의 욕망으로 합치지 않아, 감각 대상뿐 아니라 생각과 규범과 자아에 대한 붙듦도 범위에 들어갑니다. 이어 갈애의 일어남과 소멸이 집착의 일어남과 소멸에 대응합니다. 공식 생략표 …pe… 한 곳은 고귀한 여덟 갈래 길의 가운데 여섯 항목을 양언어에서 똑같이 줄입니다. 수행의 뜻은 대상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갈애가 붙듦으로 굳는 조건을 분명히 아는 데 있습니다.

묵상

감각적 쾌락·견해·계율과 의식·자아 주장 가운데 “집착”이라는 말이 예상 밖으로 붙는 대상이 있나요? 무엇을 당장 놓으려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갈애가 한 생각이나 규범을 붙드는 순간이 있는지만 가볍게 물어볼까요?

32 네 가지 집착과 갈애의 관계를 알아 놓아짐으로 향하다 1구절

네 가지 집착과 그것을 일으키는 갈애를 네 측면으로 아는 일이 해방의 정형과 괴로움의 끝으로 이어집니다.

벗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처럼 집착과 그 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알면, 탐욕의 잠재 성향을 완전히 버리고 … 바로 이 삶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벗들이여, 이만큼으로도 성스러운 제자는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릅니다.

Yato kho, āvuso, ariyasāvako evaṁ upādānaṁ pajānāti, evaṁ upādānasamudayaṁ pajānāti, evaṁ upādānanirodhaṁ pajānāti, evaṁ upādānanirodhagāminiṁ paṭipadaṁ pajānāti, so sabbaso rāgānusayaṁ pahāya …pe… dukkhassantakaro hoti—ettāvatāpi kho, āvuso,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n”ti.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감각적 쾌락·견해·계율과 의식·자아 주장이라는 네 집착과 갈애의 조건 관계를 밝힌 뒤, 사리뿟따는 그것을 아는 성스러운 제자의 결과를 말합니다. 탐욕의 잠재 성향을 버림과 바로 이 삶에서 괴로움을 끝냄은 직접 제시됩니다. 공식 생략표 …pe… 한 곳은 반감의 잠재 성향을 물리침, 자아 견해와 자만의 잠재 성향을 뿌리 뽑음, 무명을 버리고 참된 앎을 일으킴을 줄입니다. 같은 위치를 양언어가 줄이고, 결론의 바른 견해 네 기준은 온전히 남깁니다.

묵상

감각 대상보다 견해나 자아 주장에 대한 집착이 더 알아보기 어렵게 느껴지나요? 무엇을 즉시 놓아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갈애가 붙듦으로 굳어지는 한 순간이 있는지, 없다면 네 범주의 차이만 남겨 보아도 충분합니다.

33 갈애의 네 측면을 다시 묻다 1구절

공식 생략된 반복 질문에 사리뿟따가 갈애·일어남·소멸·소멸의 길을 아는 것으로 답합니다.

“좋습니다, 벗이여.” 비구들은 … 다시 물었습니다. “벗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지니는 또 다른 방법도 …” “있습니다, 벗들이여. 벗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갈애와 그 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알면, 벗들이여, 이만큼으로도 그는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릅니다.”

“Sādhāvuso”ti kho …pe… apucchuṁ—siyā panāvuso …pe… “siyā, āvuso. Yato kho, āvuso, ariyasāvako taṇhañca pajānāti, taṇhāsamudayañca pajānāti, taṇhānirodhañca pajānāti, taṇhānirodhagāminiṁ paṭipadañca pajānāti—ettāvatāpi kho, āvuso,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ṁ.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집착의 결론을 들은 비구들은 같은 기준에 이르는 다른 설명을 묻고, 사리뿟따는 갈애의 네 측면으로 답합니다. 질문의 두 공식 생략표 …pe…는 앞에서 모두 나온 기쁨과 동의, 그리고 바른 견해를 이루는 네 기준을 각각 같은 범위로 줄입니다. 답의 첫 “있습니다”와 갈애·일어남·소멸·길의 선언은 직접 남겼습니다. 다음 설명에서는 눈·귀·코·혀·몸·마음의 대상에 대한 여섯 갈애를 열거하고, 느낌이 갈애를 일으키고 멎게 하는 조건임을 밝힙니다.

묵상

갈애가 감각적 쾌락·존재·비존재라는 세 방향뿐 아니라 여섯 감각 대상과도 연결된다는 흐름이 어떻게 들리나요? 욕구를 나쁘다고 판정할 필요는 없어요. 느낌에서 갈애로 넘어가는 사이가 궁금한지만 물어보아도 괜찮습니다.

34 여섯 갈애와 느낌이라는 조건 1구절

여섯 감각 대상에 따른 갈애를 밝히고 느낌의 일어남과 소멸을 갈애의 조건으로 제시합니다.

“벗들이여, 무엇이 갈애이며 그 일어남과 소멸과 소멸로 이끄는 길은 무엇입니까? 벗들이여, 여섯 갈애 무리가 있습니다. 곧 형상·소리·냄새·맛·감촉·마음에 나타나는 것에 대한 갈애입니다. 느낌의 일어남에서 갈애의 일어남이 있고, 느낌의 소멸에서 갈애의 소멸이 있습니다. 그 길은 고귀한 여덟 갈래 길, 곧 바른 견해 … 바른 집중입니다.”

Katamā panāvuso, taṇhā, katamo taṇhāsamudayo, katamo taṇhānirodho, katamā taṇhānirodhagāminī paṭipadā? Chayime, āvuso, taṇhākāyā—rūpataṇhā, saddataṇhā, gandhataṇhā, rasataṇhā, phoṭṭhabbataṇhā, dhammataṇhā. Vedanāsamudayā taṇhāsamudayo, vedanānirodhā taṇhānirodho,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taṇhānirodhagāminī paṭipadā, seyyathidaṁ—sammādiṭṭhi …pe… sammāsamādhi.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갈애는 여섯 무리라고 수를 밝힌 뒤 눈에 보이는 형상·소리·냄새·맛·감촉·마음에 나타나는 것이라는 여섯 대상에 따라 나뉩니다. 마지막 dhammataṇhā를 막연한 “가르침에 대한 욕망”으로 바꾸지 않고 마음에 나타나는 것에 대한 갈애로 옮겼습니다. 느낌의 일어남과 소멸이 갈애의 두 방향에 대응하며, 길의 공식 생략표 한 곳은 가운데 여섯 항목만 줄입니다. 이 연결은 감각 대상 자체보다 접촉 뒤 생긴 느낌이 더 원하거나 밀쳐 내는 갈애의 가까운 조건임을 보여 줍니다.

묵상

형상·소리·냄새·맛·감촉·마음에 나타나는 것 가운데 느낌에서 갈애로 넘어가는 흐름이 비교적 쉽게 보이는 대상이 있나요? 반응을 억누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한 접촉 뒤 “더”나 “싫어”가 붙는 순간만 알아볼 수 있을까요?

35 여섯 갈애와 느낌의 연결을 알아 괴로움을 끝내다 1구절

여섯 감각 대상에 대한 갈애와 느낌이라는 조건을 아는 일이 잠재 성향의 버림과 괴로움의 끝으로 이어집니다.

벗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처럼 갈애와 그 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알면, 탐욕의 잠재 성향을 완전히 버리고 … 바로 이 삶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벗들이여, 이만큼으로도 성스러운 제자는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릅니다.

Yato kho, āvuso, ariyasāvako evaṁ taṇhaṁ pajānāti, evaṁ taṇhāsamudayaṁ pajānāti, evaṁ taṇhānirodhaṁ pajānāti, evaṁ taṇhānirodhagāminiṁ paṭipadaṁ pajānāti, so sabbaso rāgānusayaṁ pahāya …pe… dukkhassantakaro hoti—ettāvatāpi kho, āvuso,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n”ti.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갈애를 형상·소리·냄새·맛·감촉·마음의 대상에 대한 여섯 방향으로 나누고 느낌을 그 조건으로 밝힌 뒤, 이를 아는 결과가 이어집니다. 직접 남은 것은 탐욕의 잠재 성향을 완전히 버림과 바로 이 삶에서 괴로움을 끝냄입니다. 공식 생략표 …pe… 한 곳은 반감의 잠재 성향을 물리침, 자아 견해와 자만의 잠재 성향을 뿌리 뽑음, 무명을 버리고 참된 앎을 일으킴을 줄입니다. 양언어가 같은 범위를 생략하며 마지막 바른 견해의 네 기준은 직접 제시됩니다.

묵상

갈애가 대상에서 곧장 생긴다고 보기보다 느낌을 조건으로 일어난다는 설명이 어떤 여지를 열어 주나요? 느낌을 통제하거나 갈애를 없애려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둘 사이에 작은 간격이 있는지 궁금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36 느낌의 네 측면을 다시 묻다 1구절

공식 생략된 반복 질문에 사리뿟따가 느낌·일어남·소멸·소멸의 길을 아는 것으로 답합니다.

“좋습니다, 벗이여.” 비구들은 … 다시 물었습니다. “벗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지니는 또 다른 방법도 …” “있습니다, 벗들이여. 벗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느낌과 그 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알면, 벗들이여, 이만큼으로도 그는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릅니다.”

“Sādhāvuso”ti kho …pe… apucchuṁ—siyā panāvuso …pe… “siyā, āvuso. Yato kho, āvuso, ariyasāvako vedanañca pajānāti, vedanāsamudayañca pajānāti, vedanānirodhañca pajānāti, vedanānirodhagāminiṁ paṭipadañca pajānāti—ettāvatāpi kho, āvuso,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ṁ.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갈애의 결론 뒤 비구들은 다시 바른 견해의 다른 설명을 묻고, 사리뿟따는 느낌과 그 일어남·소멸·길을 아는 것이라고 답합니다. 두 공식 생략표 …pe…는 앞의 온전한 문답에 나온 비구들의 기쁨과 동의, 바른 견해에 관한 네 기준만 줄입니다. 질문·“있습니다”라는 답·느낌의 네 측면은 한 흐름으로 남아 있고 호격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이어지는 정의는 눈에서 마음까지 여섯 접촉에서 생긴 느낌을 나누며, 접촉을 느낌의 일어남과 소멸을 좌우하는 조건으로 제시합니다.

묵상

느낌을 좋고 나쁜 개인적 평가로만 보지 않고 여섯 접촉에서 생기는 것으로 묻는 방식이 어떻게 들리나요? 지금의 감정을 분석할 필요는 없어요. 어떤 접촉 뒤에 느낌이 따라오는지 한 장면이 떠오르는지만 가볍게 물어보아도 괜찮습니다.

37 여섯 느낌과 접촉이라는 조건 1구절

여섯 감각 접촉에서 생긴 느낌을 밝히고 접촉의 일어남·소멸과 고귀한 길에 연결합니다.

“벗들이여, 무엇이 느낌이며 그 일어남과 소멸과 소멸로 이끄는 길은 무엇입니까? 벗들이여, 여섯 느낌 무리가 있습니다. 곧 눈·귀·코·혀·몸·마음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입니다. 접촉의 일어남에서 느낌의 일어남이 있고, 접촉의 소멸에서 느낌의 소멸이 있습니다. 그 길은 고귀한 여덟 갈래 길, 곧 바른 견해 … 바른 집중입니다.”

Katamā panāvuso, vedanā, katamo vedanāsamudayo, katamo vedanānirodho, katamā vedanānirodhagāminī paṭipadā? Chayime, āvuso, vedanākāyā—cakkhusamphassajā vedanā, sotasamphassajā vedanā, ghānasamphassajā vedanā, jivhāsamphassajā vedanā, kāyasamphassajā vedanā, manosamphassajā vedanā. Phassasamudayā vedanāsamudayo, phassanirodhā vedanānirodho,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vedanānirodhagāminī paṭipadā, seyyathidaṁ—sammādiṭṭhi …pe… sammāsamādhi.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느낌은 여섯 무리라고 밝힌 뒤 눈·귀·코·혀·몸·마음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으로 하나씩 구별됩니다. 여섯 감각 기관만 나열한 것이 아니라 각 항목에 phassajā, “접촉에서 생긴”이라는 발생 관계가 붙습니다. 이어 접촉의 일어남과 소멸이 느낌의 일어남과 소멸에 그대로 대응합니다. 고귀한 여덟 갈래 길의 공식 생략표 한 곳은 가운데 여섯 항목을 양언어에서 같은 범위로 줄입니다. 느낌을 내 성격이나 의지로 고정하기 전에 어떤 접촉에서 생겼는지 보는 것이 이 조건 분석의 수행적 의미입니다.

묵상

눈·귀·코·혀·몸·마음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 가운데 지금 가장 알아보기 쉬운 것은 무엇인가요? 좋고 나쁨을 판단하거나 바꾸지 않아도 괜찮아요. 느낌 바로 앞에 어떤 만남이 있었는지만 가볍게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38 여섯 느낌과 접촉의 조건을 알아 반응의 뿌리를 보다 1구절

여섯 접촉에서 생긴 느낌과 그 조건 관계를 아는 일이 생략된 해방의 정형 뒤 괴로움의 끝으로 이어집니다.

벗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처럼 느낌과 그 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알면, 탐욕의 잠재 성향을 완전히 버리고 … 바로 이 삶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벗들이여, 이만큼으로도 성스러운 제자는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릅니다.

Yato kho, āvuso, ariyasāvako evaṁ vedanaṁ pajānāti, evaṁ vedanāsamudayaṁ pajānāti, evaṁ vedanānirodhaṁ pajānāti, evaṁ vedanānirodhagāminiṁ paṭipadaṁ pajānāti, so sabbaso rāgānusayaṁ pahāya …pe… dukkhassantakaro hoti—ettāvatāpi kho, āvuso,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n”ti.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눈·귀·코·혀·몸·마음의 접촉에서 생긴 여섯 느낌을 구별하고 접촉을 그 일어남과 소멸의 조건으로 밝힌 뒤, 사리뿟따는 이 네 측면을 아는 결과를 말합니다. 탐욕의 잠재 성향을 버림과 괴로움을 끝냄은 직접 남습니다. 공식 생략표 …pe…는 반감의 잠재 성향을 물리침, 자아 견해와 자만의 잠재 성향을 뿌리 뽑음, 무명을 버리고 참된 앎을 일으킴을 줄입니다. 한국어와 빠알리의 생략 위치가 같고, 바른 견해의 네 기준은 결론에 그대로 나옵니다.

묵상

느낌이 접촉에 기대어 일어난다면, 느낌을 곧바로 나 자신이나 영구한 상태라고 보는 습관은 조금 달라질 수 있을까요? 불편한 느낌을 참거나 없앨 필요는 없어요. 접촉과 느낌의 순서만 구별되어도 충분합니다.

39 접촉의 네 측면을 다시 묻다 1구절

공식 생략된 반복 질문에 사리뿟따가 접촉·일어남·소멸·소멸의 길을 아는 것으로 답합니다.

“좋습니다, 벗이여.” 비구들은 … 다시 물었습니다. “벗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지니는 또 다른 방법도 …” “있습니다, 벗들이여. 벗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접촉과 그 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알면, 벗들이여, 이만큼으로도 그는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릅니다.”

“Sādhāvuso”ti kho …pe… apucchuṁ—siyā panāvuso …pe… “siyā, āvuso. Yato kho, āvuso, ariyasāvako phassañca pajānāti, phassasamudayañca pajānāti, phassanirodhañca pajānāti, phassanirodhagāminiṁ paṭipadañca pajānāti—ettāvatāpi kho, āvuso,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ṁ.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느낌의 결론 다음에 비구들은 다시 묻고, 사리뿟따는 접촉과 그 일어남·소멸·길을 아는 것이 같은 바른 견해에 이르는 방식이라고 답합니다. 질문의 공식 생략표 두 곳은 비구들의 기쁨과 동의, 그리고 바른 견해의 네 기준을 앞 문답과 똑같은 범위로 줄입니다. “있습니다”라는 답과 접촉의 네 측면은 직접 나옵니다. 이어 눈·귀·코·혀·몸·마음의 여섯 접촉이 열거되고, 여섯 감각 영역의 일어남과 소멸이 접촉의 일어남과 소멸에 대응합니다.

묵상

접촉을 단순히 몸이 닿는 일로 한정하지 않고 눈·귀·코·혀·몸·마음의 만남으로 펼치는 구성이 어떻게 들리나요? 감각을 막을 필요는 없어요. 접촉이 일어나려면 감각 영역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관계만 생각해 보아도 괜찮습니다.

40 여섯 접촉과 감각 영역이라는 조건 1구절

눈에서 마음까지 여섯 접촉을 밝히고 여섯 감각 영역을 그 일어남과 소멸의 조건으로 제시합니다.

“벗들이여, 무엇이 접촉이며 그 일어남과 소멸과 소멸로 이끄는 길은 무엇입니까? 벗들이여, 여섯 접촉 무리가 있습니다. 곧 눈·귀·코·혀·몸·마음의 접촉입니다. 여섯 감각 영역의 일어남에서 접촉의 일어남이 있고, 여섯 감각 영역의 소멸에서 접촉의 소멸이 있습니다. 그 길은 고귀한 여덟 갈래 길, 곧 바른 견해 … 바른 집중입니다.”

Katamo panāvuso, phasso, katamo phassasamudayo, katamo phassanirodho, katamā phassanirodhagāminī paṭipadā? Chayime, āvuso, phassakāyā—cakkhusamphasso, sotasamphasso, ghānasamphasso, jivhāsamphasso, kāyasamphasso, manosamphasso. Saḷāyatanasamudayā phassasamudayo, saḷāyatananirodhā phassanirodho,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phassanirodhagāminī paṭipadā, seyyathidaṁ—sammādiṭṭhi …pe… sammāsamādhi.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접촉은 여섯 무리라고 수를 밝히고 눈·귀·코·혀·몸·마음의 접촉으로 나뉩니다. 앞의 느낌 목록에서 각 느낌을 낳던 여섯 접촉이 이번에는 독립된 분석 대상이 됩니다. 이어 여섯 감각 영역의 일어남과 소멸이 접촉의 일어남과 소멸에 대응하며, 원인과 결과의 순서가 한 고리 더 앞쪽으로 이동합니다. 길의 공식 생략표 …pe… 한 곳은 바른 견해와 바른 삼매 사이 여섯 항목을 똑같이 줄입니다. 접촉이 저절로 고립되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감각 영역을 조건으로 한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묵상

눈·귀·코·혀·몸·마음의 여섯 접촉 가운데 지금 가장 선명한 것은 무엇인가요? 대상을 피하거나 접촉을 없애려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감각 영역과 대상이 만나는 한 순간을 이름 붙이지 않고 느껴 볼 수 있을까요?

41 여섯 접촉과 감각 영역의 관계를 알아 괴로움을 끝내다 1구절

눈에서 마음까지 여섯 접촉과 여섯 감각 영역이라는 조건을 아는 일이 해방의 정형과 괴로움의 끝으로 이어집니다.

벗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처럼 접촉과 그 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알면, 탐욕의 잠재 성향을 완전히 버리고 … 바로 이 삶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벗들이여, 이만큼으로도 성스러운 제자는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릅니다.

Yato kho, āvuso, ariyasāvako evaṁ phassaṁ pajānāti, evaṁ phassasamudayaṁ pajānāti, evaṁ phassanirodhaṁ pajānāti, evaṁ phassanirodhagāminiṁ paṭipadaṁ pajānāti, so sabbaso rāgānusayaṁ pahāya …pe… dukkhassantakaro hoti—ettāvatāpi kho, āvuso,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n”ti.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눈·귀·코·혀·몸·마음의 여섯 접촉을 밝히고 여섯 감각 영역을 그 조건으로 제시한 뒤, 사리뿟따는 이 네 측면을 아는 성스러운 제자를 말합니다. 탐욕의 잠재 성향을 완전히 버림과 바로 이 삶에서 괴로움을 끝냄은 직접 남습니다. 공식 생략표 …pe… 한 곳은 반감과 자아 견해·자만의 잠재 성향을 다루는 두 동작, 무명의 버림과 참된 앎의 일어남을 줄입니다. 양언어가 같은 구간을 생략하고, 마지막에는 바른 견해를 이루는 네 기준이 온전히 반복됩니다.

묵상

접촉을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여섯 감각 영역에 따른 서로 다른 만남으로 보면 경험이 어떻게 달라 보이나요? 어느 문을 닫거나 자극을 피하도록 요구하는 뜻은 아니에요. 한 접촉이 성립하는 조건만 구별해도 괜찮습니다.

42 여섯 감각 영역의 네 측면을 다시 묻다 1구절

공식 생략된 반복 질문에 사리뿟따가 여섯 감각 영역·일어남·소멸·소멸의 길을 아는 것으로 답합니다.

“좋습니다, 벗이여.” 비구들은 … 다시 물었습니다. “벗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지니는 또 다른 방법도 …” “있습니다, 벗들이여. 벗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여섯 감각 영역과 그 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알면, 벗들이여, 이만큼으로도 그는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릅니다.”

“Sādhāvuso”ti kho …pe… apucchuṁ—siyā panāvuso …pe… “siyā, āvuso. Yato kho, āvuso, ariyasāvako saḷāyatanañca pajānāti, saḷāyatanasamudayañca pajānāti, saḷāyatananirodhañca pajānāti, saḷāyatananirodhagāminiṁ paṭipadañca pajānāti—ettāvatāpi kho, āvuso,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ṁ.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접촉의 결론 뒤 비구들은 같은 바른 견해에 이르는 다른 설명을 청하고, 사리뿟따는 여섯 감각 영역의 네 측면을 아는 일이라고 답합니다. 두 공식 생략표 …pe…는 앞서 온전히 제시된 비구들의 기쁨과 동의, 바른 견해·곧은 견해·흔들림 없는 확신·참된 가르침에 이름을 각각 줄입니다. 질문과 답은 한 흐름에 있고 모든 호격이 남아 있습니다. 다음 설명은 눈·귀·코·혀·몸·마음의 영역을 정확히 여섯으로 세고, 정신과 물질을 그 조건으로 밝힙니다.

묵상

눈에서 마음까지를 경험의 여섯 문으로 함께 묶는 방식이 익숙한가요, 낯선가요? 마음을 다른 감각보다 특별한 주인으로 정할 필요는 없어요. 여섯 감각 영역이 모두 조건에 기대어 작동한다는 예고만 남겨 보아도 충분합니다.

43 여섯 감각 영역과 정신과 물질 1구절

눈·귀·코·혀·몸·마음의 여섯 감각 영역을 밝히고 정신과 물질을 그 조건으로 제시합니다.

“벗들이여, 무엇이 여섯 감각 영역이며 그 일어남과 소멸과 소멸로 이끄는 길은 무엇입니까? 벗들이여, 여섯 감각 영역이 있습니다. 곧 눈·귀·코·혀·몸·마음의 영역입니다. 정신과 물질의 일어남에서 여섯 감각 영역의 일어남이 있고, 정신과 물질의 소멸에서 여섯 감각 영역의 소멸이 있습니다. 그 길은 고귀한 여덟 갈래 길, 곧 바른 견해 … 바른 집중입니다.”

Katamaṁ panāvuso, saḷāyatanaṁ, katamo saḷāyatanasamudayo, katamo saḷāyatananirodho, katamā saḷāyatananirodhagāminī paṭipadā? Chayimāni, āvuso, āyatanāni—cakkhāyatanaṁ, sotāyatanaṁ, ghānāyatanaṁ, jivhāyatanaṁ, kāyāyatanaṁ, manāyatanaṁ. Nāmarūpasamudayā saḷāyatanasamudayo, nāmarūpanirodhā saḷāyatananirodho,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saḷāyatananirodhagāminī paṭipadā, seyyathidaṁ—sammādiṭṭhi …pe… sammāsamādhi.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여섯 감각 영역은 눈·귀·코·혀·몸·마음의 영역으로 정확히 여섯 가지입니다. 앞 대목의 접촉이 일어날 수 있는 여섯 바탕을 별도로 정의한 것이며, 대상의 종류와 감각 기능을 하나로 뒤섞지 않습니다. 이어 정신과 물질의 일어남과 소멸이 여섯 감각 영역의 일어남과 소멸에 대응합니다. 고귀한 여덟 갈래 길의 공식 생략표 한 곳은 가운데 여섯 항목을 양언어에서 같은 범위로 줄입니다. 경험의 문들이 고정된 자아의 소유물이 아니라 정신과 물질에 의존해 작동하는 조건임을 드러냅니다.

묵상

눈·귀·코·혀·몸·마음이 경험의 여섯 감각 영역으로 나란히 놓인 점이 어떻게 들리나요? 어느 감각을 통제하거나 닫을 필요는 없어요. 지금 한 영역이 작동하는 데 정신과 몸의 조건이 함께 필요한지 가볍게 느껴 볼 수 있을까요?

44 여섯 감각 영역의 조건을 알아 고정된 문에서 벗어나다 1구절

눈·귀·코·혀·몸·마음의 영역과 정신과 물질이라는 조건을 아는 일이 괴로움의 끝으로 이어집니다.

벗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처럼 여섯 감각 영역과 그 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알면, 탐욕의 잠재 성향을 완전히 버리고 … 바로 이 삶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벗들이여, 이만큼으로도 성스러운 제자는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릅니다.

Yato kho, āvuso, ariyasāvako evaṁ saḷāyatanaṁ pajānāti, evaṁ saḷāyatanasamudayaṁ pajānāti, evaṁ saḷāyatananirodhaṁ pajānāti, evaṁ saḷāyatananirodhagāminiṁ paṭipadaṁ pajānāti, so sabbaso rāgānusayaṁ pahāya …pe… dukkhassantakaro hoti—ettāvatāpi kho, āvuso,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n”ti.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여섯 감각 영역을 눈·귀·코·혀·몸·마음으로 빠짐없이 밝히고 정신과 물질을 그 조건으로 설명한 뒤, 이 네 측면을 아는 결과가 나옵니다. 직접 제시된 것은 탐욕의 잠재 성향을 버림과 바로 이 삶에서 괴로움을 끝냄입니다. 공식 생략표 …pe… 한 곳은 반감의 잠재 성향, 자아 견해와 자만의 잠재 성향, 무명의 버림과 참된 앎의 일어남을 줄입니다. 한국어와 빠알리의 생략 범위가 일치하고, 바른 견해의 네 기준은 결론에서 모두 되풀이됩니다.

묵상

여섯 감각 영역이 정신과 물질에 기대어 일어난다면, 감각을 변하지 않는 내 소유로 보는 느낌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그런 변화를 꼭 느낄 필요는 없어요. 하나의 감각에도 여러 조건이 함께한다는 점만 떠올려도 괜찮습니다.

45 정신과 물질의 네 측면을 다시 묻다 1구절

공식 생략된 반복 질문에 사리뿟따가 정신과 물질의 네 측면을 아는 것으로 답합니다.

“좋습니다, 벗이여.” 비구들은 … 다시 물었습니다. “벗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지니는 또 다른 방법도 …” “있습니다, 벗들이여. 벗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정신과 물질과 그 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알면, 벗들이여, 이만큼으로도 그는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릅니다.”

“Sādhāvuso”ti kho …pe… apucchuṁ—siyā panāvuso …pe… “siyā, āvuso. Yato kho, āvuso, ariyasāvako nāmarūpañca pajānāti, nāmarūpasamudayañca pajānāti, nāmarūpanirodhañca pajānāti, nāmarūpanirodhagāminiṁ paṭipadañca pajānāti—ettāvatāpi kho, āvuso,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ṁ.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여섯 감각 영역의 결론 다음에 비구들은 다시 질문하고, 사리뿟따는 정신과 물질 및 그 일어남·소멸·길을 아는 것으로 답합니다. 질문의 두 공식 생략표 …pe…는 앞에서 온전히 나온 기쁨과 동의의 서술, 그리고 바른 견해의 네 기준을 같은 범위로 줄입니다. 답의 “있습니다”와 정신과 물질의 네 측면은 생략하지 않았습니다. 이어 정신을 느낌·인식·의도·접촉·마음 기울임으로, 물질을 네 큰 요소와 거기서 비롯된 물질로 나누고, 의식을 전체의 조건으로 밝힙니다.

묵상

정신과 물질을 하나로 섞지 않으면서도 함께 묶어 묻는 방식이 어떻게 들리나요? 마음과 몸 중 어느 쪽이 더 근본인지 결정할 필요는 없어요. 둘의 구성 요소와 의식이라는 조건이 어떤 순서로 나오는지만 따라가도 괜찮습니다.

46 정신의 다섯 항목과 물질의 바탕 1구절

느낌·인식·의도·접촉·마음 기울임을 정신으로, 네 큰 요소와 거기서 비롯된 물질을 물질로 정의합니다.

“벗들이여, 무엇이 정신과 물질이며 그 일어남과 소멸과 소멸로 이끄는 길은 무엇입니까? 느낌·인식·의도·접촉·마음 기울임이 있습니다. 벗들이여, 이것을 정신이라 합니다. 네 큰 요소와 네 큰 요소에서 비롯된 물질이 있습니다. 벗들이여, 이것을 물질이라 합니다. 이것이 정신이고 이것이 물질이니, 벗들이여, 이것을 정신과 물질이라 합니다.”

Katamaṁ panāvuso, nāmarūpaṁ, katamo nāmarūpasamudayo, katamo nāmarūpanirodho, katamā nāmarūpanirodhagāminī paṭipadā? Vedanā, saññā, cetanā, phasso, manasikāro—idaṁ vuccatāvuso, nāmaṁ; cattāri ca mahābhūtāni, catunnañca mahābhūtānaṁ upādāyarūpaṁ—idaṁ vuccatāvuso, rūpaṁ. Iti idañca nāmaṁ idañca rūpaṁ—idaṁ vuccatāvuso, nāmarūpaṁ.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정신과 물질의 정의는 먼저 nāma와 rūpa를 따로 풉니다. 정신은 느낌·인식·의도·접촉·마음 기울임의 다섯 항목이고, 물질은 네 큰 요소와 그 네 요소에서 비롯된 물질입니다. 정신의 다섯과 물질의 두 범위를 줄이지 않았으며, “이것이 정신이고 이것이 물질”이라고 다시 가리킨 뒤 하나의 정신과 물질로 묶습니다. 마음만 실재하거나 몸만 실재한다는 주장보다 경험을 이루는 두 측면의 구성 요소를 구별하는 설명입니다. 다음 대목은 이 전체가 의식에 따라 일어나고 멎는다고 밝힙니다.

묵상

느낌·인식·의도·접촉·마음 기울임의 다섯 정신 항목 가운데 지금 가장 쉽게 알아차려지는 것은 무엇인가요? 네 큰 요소를 바로 분석할 필요는 없어요. 정신과 물질을 따로 구별한 뒤 함께 묶는 순서만 느껴 보아도 괜찮아요.

47 의식에 따라 정신과 물질이 일어나고 멎다 1구절

정신과 물질은 의식에서 일어나고 의식이 소멸하면 소멸하며, 고귀한 여덟 갈래 길이 그 소멸로 이끕니다.

“의식의 일어남에서 정신과 물질의 일어남이 있고, 의식의 소멸에서 정신과 물질의 소멸이 있습니다. 정신과 물질의 소멸로 이끄는 길은 바로 고귀한 여덟 갈래 길입니다. 곧 다음과 같습니다. 바른 견해 … 바른 집중입니다.”

Viññāṇasamudayā nāmarūpasamudayo, viññāṇanirodhā nāmarūpanirodho,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nāmarūpanirodhagāminī paṭipadā, seyyathidaṁ—sammādiṭṭhi …pe… sammāsamādhi.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정신과 물질의 두 측면과 구성 항목을 정의한 뒤 조건 관계가 이어집니다. 이어 의식의 일어남과 소멸이 각각 정신과 물질의 일어남과 소멸에 대응합니다. 같은 조건을 긍정과 소멸의 두 방향으로 정확히 짝지었고, 소멸로 이끄는 길은 고귀한 여덟 갈래 길입니다. 공식 생략표 …pe… 한 곳은 앞에서 온전히 제시된 바른 의도·말·행위·생계·노력·알아차림 여섯 항목을 줄이며, 바른 견해와 바른 삼매는 직접 남깁니다. 한국어와 빠알리가 같은 범위를 줄였고 새로운 조건이나 결과는 빠지지 않았습니다.

묵상

정신과 물질을 고정된 것으로 보지 않고 의식에 따라 일어나고 멎는다고 읽으면 무엇이 달라지나요? 그 조건을 당장 없애거나 통제할 필요는 없어요. 두 항목 사이의 관계가 경험에서 조금이라도 보이는지, 모르겠다면 문장의 대칭만 느껴 보아도 괜찮아요.

48 정신과 물질의 구성과 의식의 조건을 알아 해방으로 향하다 1구절

정신의 다섯 항목과 물질의 바탕, 의식이라는 조건을 아는 일이 잠재 성향의 버림과 괴로움의 끝으로 이어집니다.

벗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처럼 정신과 물질과 그 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알면, 탐욕의 잠재 성향을 완전히 버리고 … 바로 이 삶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벗들이여, 이만큼으로도 성스러운 제자는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릅니다.

Yato kho, āvuso, ariyasāvako evaṁ nāmarūpaṁ pajānāti, evaṁ nāmarūpasamudayaṁ pajānāti, evaṁ nāmarūpanirodhaṁ pajānāti, evaṁ nāmarūpanirodhagāminiṁ paṭipadaṁ pajānāti, so sabbaso rāgānusayaṁ pahāya …pe… dukkhassantakaro hoti—ettāvatāpi kho, āvuso,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n”ti.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정신을 느낌·인식·의도·접촉·마음 기울임의 다섯 항목으로, 물질을 네 큰 요소와 거기서 비롯된 물질로 밝히고 의식을 그 조건으로 제시한 뒤 결과가 이어집니다. 탐욕의 잠재 성향을 버림과 괴로움을 끝냄은 직접 남아 있습니다. 공식 생략표 …pe…는 반감 및 자아 견해·자만의 잠재 성향을 다루는 두 동작과 무명을 버리고 참된 앎을 일으키는 동작을 줄입니다. 양언어가 동일한 범위를 생략하며 바른 견해의 네 기준은 끝에 보존됩니다.

묵상

느낌·인식·의도·접촉·마음 기울임과 물질의 바탕이 의식과 관계 맺는 설명에서 어느 연결이 가장 낯선가요? 마음이나 몸을 분석해 결론낼 필요는 없어요. 두 측면이 함께 조건 지어진다는 점만 열린 채 두어도 괜찮습니다.

49 의식의 네 측면을 다시 묻다 1구절

공식 생략된 반복 질문에 사리뿟따가 의식의 네 측면을 아는 것으로 답합니다.

“좋습니다, 벗이여.” 비구들은 … 다시 물었습니다. “벗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지니는 또 다른 방법도 …” “있습니다, 벗들이여. 벗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의식과 그 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알면, 벗들이여, 이만큼으로도 그는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릅니다.”

“Sādhāvuso”ti kho …pe… apucchuṁ—siyā panāvuso …pe… “siyā, āvuso. Yato kho, āvuso, ariyasāvako viññāṇañca pajānāti, viññāṇasamudayañca pajānāti, viññāṇanirodhañca pajānāti, viññāṇanirodhagāminiṁ paṭipadañca pajānāti—ettāvatāpi kho, āvuso,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ṁ.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정신과 물질의 결론 뒤 비구들은 바른 견해를 설명하는 또 다른 방법을 묻고, 사리뿟따는 의식의 네 측면을 아는 일이라고 답합니다. 질문에 있는 두 공식 생략표 …pe…는 기쁨과 동의의 서술 및 바른 견해의 네 기준을 앞 문답과 같은 범위로 줄입니다. “있습니다”라는 답과 의식·일어남·소멸·길의 선언은 직접 남겼습니다. 다음 설명은 의식을 눈·귀·코·혀·몸·마음에 따른 여섯 무리로 나누며, 의지적 형성을 그 일어남과 소멸의 조건으로 제시합니다.

묵상

의식을 하나의 변하지 않는 주체로 두지 않고 여섯 감각에 따른 무리로 묻는 방식이 어떻게 들리나요? 의식의 본질을 정할 필요는 없어요. 보는 앎과 듣는 앎이 서로 다른 조건에서 나타난다는 차이만 남겨도 괜찮습니다.

50 여섯 의식과 의지적 형성 1구절

눈에서 마음까지 여섯 의식을 밝히고 의지적 형성을 의식의 일어남과 소멸의 조건으로 제시합니다.

“벗들이여, 무엇이 의식이며 그 일어남과 소멸과 소멸로 이끄는 길은 무엇입니까? 벗들이여, 여섯 의식 무리가 있습니다. 곧 눈·귀·코·혀·몸·마음의 의식입니다. 의지적 형성의 일어남에서 의식의 일어남이 있고, 의지적 형성의 소멸에서 의식의 소멸이 있습니다. 그 길은 고귀한 여덟 갈래 길, 곧 바른 견해 … 바른 집중입니다.”

Katamaṁ panāvuso, viññāṇaṁ, katamo viññāṇasamudayo, katamo viññāṇanirodho, katamā viññāṇanirodhagāminī paṭipadā? Chayime, āvuso, viññāṇakāyā—cakkhuviññāṇaṁ, sotaviññāṇaṁ, ghānaviññāṇaṁ, jivhāviññāṇaṁ, kāyaviññāṇaṁ, manoviññāṇaṁ. Saṅkhārasamudayā viññāṇasamudayo, saṅkhāranirodhā viññāṇanirodho,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viññāṇanirodhagāminī paṭipadā, seyyathidaṁ—sammādiṭṭhi …pe… sammāsamādhi.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의식은 여섯 무리라고 수를 밝히고 눈·귀·코·혀·몸·마음의 의식으로 나뉩니다. 하나의 변하지 않는 의식을 세우지 않고 감각 영역에 따라 서로 다른 여섯 의식을 구별합니다. 이어 의지적 형성의 일어남과 소멸이 의식의 일어남과 소멸에 대응합니다. 고귀한 여덟 갈래 길의 공식 생략표 한 곳은 가운데 여섯 항목을 양언어에서 같은 범위로 줄입니다. 의식도 홀로 생기는 주체가 아니라 앞선 의지적 형성에 기대어 일어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연기의 분석이 더 깊어집니다.

묵상

눈·귀·코·혀·몸·마음의 의식이 하나가 아니라 여섯 무리로 나뉜 점이 어떻게 들리나요? 의식의 본질을 정할 필요는 없어요. 보는 앎과 듣는 앎이 각각 다른 조건에서 나타난다는 한 차이만 느껴 볼 수 있을까요?

51 여섯 의식과 의지적 형성의 관계를 알아 괴로움을 끝내다 1구절

여섯 감각에 따른 의식과 의지적 형성이라는 조건을 아는 일이 생략된 해방의 정형을 거쳐 괴로움의 끝으로 이어집니다.

벗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처럼 의식과 그 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알면, 탐욕의 잠재 성향을 완전히 버리고 … 바로 이 삶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벗들이여, 이만큼으로도 성스러운 제자는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릅니다.

Yato kho, āvuso, ariyasāvako evaṁ viññāṇaṁ pajānāti, evaṁ viññāṇasamudayaṁ pajānāti, evaṁ viññāṇanirodhaṁ pajānāti, evaṁ viññāṇanirodhagāminiṁ paṭipadaṁ pajānāti, so sabbaso rāgānusayaṁ pahāya …pe… dukkhassantakaro hoti—ettāvatāpi kho, āvuso,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n”ti.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눈·귀·코·혀·몸·마음의 의식을 여섯 무리로 구별하고 의지적 형성을 그 조건으로 밝힌 뒤, 이 네 측면을 아는 결과가 나옵니다. 직접 남은 것은 탐욕의 잠재 성향을 완전히 버림과 바로 이 삶에서 괴로움을 끝냄입니다. 공식 생략표 …pe… 한 곳은 반감의 잠재 성향을 물리침, 자아 견해와 자만의 잠재 성향을 뿌리 뽑음, 무명을 버리고 참된 앎을 일으킴을 줄입니다. 한국어와 빠알리는 같은 범위를 생략하고 바른 견해의 네 기준을 끝에 모두 남깁니다.

묵상

보는 의식과 듣는 의식이 각각 다른 조건에 기대고, 그 배후에 의지적 형성이 놓인다는 설명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의식을 붙잡아 관찰할 필요는 없어요. 앎도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는 가능성만 열어 두어도 괜찮습니다.

52 의지적 형성의 네 측면을 다시 묻다 1구절

공식 생략된 반복 질문에 사리뿟따가 의지적 형성의 네 측면을 아는 것으로 답합니다.

“좋습니다, 벗이여.” 비구들은 … 다시 물었습니다. “벗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지니는 또 다른 방법도 …” “있습니다, 벗들이여. 벗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의지적 형성과 그 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알면, 벗들이여, 이만큼으로도 그는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릅니다.”

“Sādhāvuso”ti kho …pe… apucchuṁ—siyā panāvuso …pe… “siyā, āvuso. Yato kho, āvuso, ariyasāvako saṅkhāre ca pajānāti, saṅkhārasamudayañca pajānāti, saṅkhāranirodhañca pajānāti, saṅkhāranirodhagāminiṁ paṭipadañca pajānāti—ettāvatāpi kho, āvuso,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ṁ.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의식의 결론 다음에 비구들은 다시 질문하고, 사리뿟따는 의지적 형성과 그 일어남·소멸·길을 아는 것을 바른 견해의 또 다른 방식으로 제시합니다. 질문의 두 공식 생략표 …pe…는 앞에서 온전히 나온 기쁨과 동의, 바른 견해를 이루는 네 기준을 각각 줄입니다. 답의 “있습니다”와 세 번의 “벗들이여”는 생략하지 않았습니다. 이어지는 설명은 의지적 형성을 몸·말·마음의 셋으로 나누고, 무명의 일어남과 소멸이 이 셋의 일어남과 소멸에 대응한다고 밝힙니다.

묵상

의지적 형성을 몸·말·마음의 세 영역으로 나누어 묻는 방식이 어떤 차이를 만드나요? 습관을 잘못이라고 판정하거나 당장 바꿀 필요는 없어요. 세 영역 중 조건의 흐름이 비교적 잘 보이는 곳이 있는지만 궁금해해도 괜찮습니다.

53 몸·말·마음으로 지어내는 것과 그 바탕인 모름 1구절

몸·말·마음의 세 의지적 형성을 밝히고 무명을 그 일어남과 소멸의 조건으로 제시합니다.

“벗들이여, 무엇이 의지적 형성이며 그 일어남과 소멸과 소멸로 이끄는 길은 무엇입니까? 벗들이여, 세 가지 의지적 형성이 있습니다. 곧 몸의 의지적 형성, 말의 의지적 형성, 마음의 의지적 형성입니다. 무명의 일어남에서 의지적 형성의 일어남이 있고, 무명의 소멸에서 의지적 형성의 소멸이 있습니다. 그 길은 고귀한 여덟 갈래 길, 곧 바른 견해 … 바른 집중입니다.”

Katame panāvuso, saṅkhārā, katamo saṅkhārasamudayo, katamo saṅkhāranirodho, katamā saṅkhāranirodhagāminī paṭipadā? Tayome, āvuso, saṅkhārā—kāyasaṅkhāro, vacīsaṅkhāro, cittasaṅkhāro. Avijjāsamudayā saṅkhārasamudayo, avijjānirodhā saṅkhāranirodho,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saṅkhāranirodhagāminī paṭipadā, seyyathidaṁ—sammādiṭṭhi …pe… sammāsamādhi.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saṅkhārā는 복수로 물은 뒤 몸·말·마음의 세 가지 의지적 형성으로 답합니다. 이 셋은 몸·말·마음과 관련된 의지적 형성을 가리키며 서로 하나로 합쳐지지 않습니다. 이어 무명의 일어남과 소멸이 의지적 형성의 일어남과 소멸에 대응합니다. 공식 생략표 …pe… 한 곳은 고귀한 여덟 갈래 길의 가운데 여섯 항목만 양언어에서 줄입니다. 경험의 연쇄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의식 앞에 의지적 형성이 있고, 그 조건으로 무명이 놓인다는 순서가 완성됩니다.

묵상

몸·말·마음의 세 의지적 형성 가운데 반복되는 경향이 가장 쉽게 보이는 영역이 있나요? 그것을 성격이라고 단정하거나 없애려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어떤 모름이 그 반응을 조건 짓는지 아직 모르겠다면 모른다고 두어도 괜찮아요.

54 모름과 몸·말·마음으로 지어내는 것을 알아 괴로움을 끝내다 1구절

몸·말·마음의 의지적 형성과 무명이라는 조건을 아는 일이 생략 없이 제시된 해방의 정형으로 이어집니다.

벗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처럼 의지적 형성과 그 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알면, 탐욕의 잠재 성향을 완전히 버리고 반감의 잠재 성향을 물리치며 ‘나는 있다’는 견해와 자만의 잠재 성향을 뿌리 뽑습니다. 무명을 버리고 참된 앎을 일으켜 바로 이 삶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벗들이여, 이만큼으로도 성스러운 제자는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릅니다.

Yato kho, āvuso, ariyasāvako evaṁ saṅkhāre pajānāti, evaṁ saṅkhārasamudayaṁ pajānāti, evaṁ saṅkhāranirodhaṁ pajānāti, evaṁ saṅkhāranirodhagāminiṁ paṭipadaṁ pajānāti, so sabbaso rāgānusayaṁ pahāya, paṭighānusayaṁ paṭivinodetvā, ‘asmī’ti diṭṭhimānānusayaṁ samūhanitvā, avijjaṁ pahāya vijjaṁ uppādetvā, diṭṭheva dhamme dukkhassantakaro hoti—ettāvatāpi kho, āvuso,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n”ti.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몸·말·마음의 세 의지적 형성을 구별하고 무명을 그 일어남과 소멸의 조건으로 밝힌 뒤, 이 네 측면을 아는 결과가 온전히 반복됩니다. 탐욕의 잠재 성향을 완전히 버리고, 반감의 잠재 성향을 물리치며, “‘나는 있다’는 견해와 자만”의 잠재 성향을 뿌리 뽑는 세 동작이 모두 직접 나옵니다. 이어 무명을 버리고 참된 앎을 일으켜 바로 이 삶에서 괴로움을 끝낸다는 결과와 바른 견해의 네 기준도 생략 없이 이어집니다. 이 완전한 반복은 앞의 공식 생략 범위를 다시 확인해 줍니다.

묵상

몸·말·마음의 의지적 형성이 무명에 기대어 일어난다는 설명에서, 의도와 모름의 관계는 어떻게 느껴지나요? 자신을 탓하거나 숨은 동기를 찾아낼 필요는 없어요. 어떤 반응에는 미처 보지 못한 조건이 있을 수 있다는 정도로 남겨도 괜찮습니다.

55 알지 못함의 생겨남과 끝, 그 길을 다시 묻다 1구절

공식 생략된 반복 질문에 사리뿟따가 무명·일어남·소멸·소멸의 길을 아는 것으로 답합니다.

“좋습니다, 벗이여.” 비구들은 … 다시 물었습니다. “벗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지니는 또 다른 방법도 …” “있습니다, 벗들이여. 벗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무명과 그 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알면, 벗들이여, 이만큼으로도 그는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릅니다.”

“Sādhāvuso”ti kho …pe… apucchuṁ—siyā panāvuso …pe… “siyā, āvuso. Yato kho, āvuso, ariyasāvako avijjañca pajānāti, avijjāsamudayañca pajānāti, avijjānirodhañca pajānāti, avijjānirodhagāminiṁ paṭipadañca pajānāti—ettāvatāpi kho, āvuso,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ṁ.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의지적 형성의 결론 뒤 비구들은 바른 견해에 이르는 또 다른 설명을 묻고, 사리뿟따는 무명과 그 일어남·소멸·길을 아는 것이라고 답합니다. 질문의 두 공식 생략표 …pe…는 비구들의 기쁨과 동의, 그리고 바른 견해의 네 기준을 앞의 온전한 문답과 같은 범위로 줄입니다. 질문과 “있습니다”라는 답은 한 흐름에 있고 모든 호격도 보존됩니다. 다음 설명에서 무명은 괴로움·일어남·소멸·길을 각각 알지 못하는 것으로 정의되며, 번뇌가 그 일어남과 소멸의 조건으로 제시됩니다.

묵상

무명을 막연한 어리석음이 아니라 무엇을 알지 못하는지 네 항목으로 묻는 방식이 어떻게 들리나요? 자신의 지혜를 평가할 필요는 없어요. 모름을 정확히 구별하는 질문이 자책과 다른 방향을 열 수 있는지만 느껴 보아도 괜찮습니다.

56 괴로움의 네 진리를 모르는 까닭은 무엇인가 1구절

무명을 괴로움의 네 진리를 모르는 것으로 정의하고 번뇌의 일어남·소멸 및 고귀한 길과 연결합니다.

“벗들이여, 무엇이 무명이며 그 일어남과 소멸과 소멸로 이끄는 길은 무엇입니까? 벗들이여, 괴로움·괴로움의 일어남·괴로움의 소멸·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벗들이여, 이것을 무명이라 합니다. 번뇌의 일어남에서 무명의 일어남이 있고, 번뇌의 소멸에서 무명의 소멸이 있습니다. 그 길은 고귀한 여덟 갈래 길, 곧 바른 견해 … 바른 집중입니다.”

Katamā panāvuso, avijjā, katamo avijjāsamudayo, katamo avijjānirodho, katamā avijjānirodhagāminī paṭipadā? Yaṁ kho, āvuso, dukkhe aññāṇaṁ, dukkhasamudaye aññāṇaṁ, dukkhanirodhe aññāṇaṁ, dukkhanirodhagāminiyā paṭipadāya aññāṇaṁ—ayaṁ vuccatāvuso, avijjā. Āsavasamudayā avijjāsamudayo, āsavanirodhā avijjānirodho,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avijjānirodhagāminī paṭipadā, seyyathidaṁ—sammādiṭṭhi …pe… sammāsamādhi.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무명은 추상적인 어리석음이 아니라 괴로움·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이라는 네 진리를 각각 알지 못하는 것으로 정의됩니다. 네 번의 aññāṇa를 하나의 막연한 “모름”으로 줄이지 않았습니다. 이어 번뇌의 일어남과 소멸이 무명의 일어남과 소멸에 대응합니다. 고귀한 여덟 갈래 길의 공식 생략표 한 곳은 가운데 여섯 항목을 양언어에서 같은 범위로 줄입니다. 이로써 역으로 거슬러 온 연기는 무명에 이르지만, 경은 다시 무명도 번뇌라는 조건에 기대어 있음을 밝힙니다.

묵상

괴로움의 네 진리를 각각 모르는 것이 무명이라는 정의에서 어느 항목이 가장 구체적으로 들리나요? 자신이 무명한지 판정할 필요는 없어요.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히 구별하는 일이 막연한 자책과 어떻게 다른지만 느껴 볼 수 있을까요?

57 네 진리를 모르는 상태를 알아 참된 앎을 일으키다 1구절

네 진리에 대한 무지와 번뇌라는 조건을 아는 일이 생략 없는 해방의 정형과 참된 앎으로 이어집니다.

벗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처럼 무명과 그 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알면, 탐욕의 잠재 성향을 완전히 버리고 반감의 잠재 성향을 물리치며 ‘나는 있다’는 견해와 자만의 잠재 성향을 뿌리 뽑습니다. 무명을 버리고 참된 앎을 일으켜 바로 이 삶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벗들이여, 이만큼으로도 성스러운 제자는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릅니다.

Yato kho, āvuso, ariyasāvako evaṁ avijjaṁ pajānāti, evaṁ avijjāsamudayaṁ pajānāti, evaṁ avijjānirodhaṁ pajānāti, evaṁ avijjānirodhagāminiṁ paṭipadaṁ pajānāti, so sabbaso rāgānusayaṁ pahāya, paṭighānusayaṁ paṭivinodetvā, ‘asmī’ti diṭṭhimānānusayaṁ samūhanitvā, avijjaṁ pahāya vijjaṁ uppādetvā, diṭṭheva dhamme dukkhassantakaro hoti—ettāvatāpi kho, āvuso,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n”ti.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괴로움·일어남·소멸·길을 각각 알지 못하는 것을 무명으로 정의하고 번뇌를 그 조건으로 밝힌 뒤, 무명의 네 측면을 아는 결과가 온전히 나옵니다. 탐욕의 잠재 성향을 완전히 버림, 반감의 잠재 성향을 물리침, 자아 견해와 자만의 잠재 성향을 뿌리 뽑음이 모두 직접 제시됩니다. 이어 무명을 버리고 참된 앎을 일으켜 바로 이 삶에서 괴로움을 끝낸다는 결과와 바른 견해의 네 기준도 빠짐없이 반복됩니다. 이곳에는 공식 생략표가 없습니다.

묵상

무명을 아는 결과에 다시 “무명을 버리고 참된 앎을 일으킨다”는 말이 이어지는 점은 어떻게 들리나요? 자신의 앎을 증명할 필요는 없어요. 모름의 내용이 분명해질 때 배울 방향도 함께 선명해질 수 있는지만 생각해 보아도 괜찮습니다.

58 마음에 흘러들어 괴롭히는 것들을 어떻게 끝내는지 묻다 1구절

비구들이 온전한 질문을 다시 하고 사리뿟따가 번뇌·일어남·소멸·소멸의 길을 아는 것으로 답합니다.

“좋습니다, 벗이여.” 수행자들은 사리뿟따의 말에 기뻐하고 동의한 뒤 물었습니다. “벗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르는 다른 방법도 있습니까?” “있습니다, 벗들이여. 벗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번뇌와 그 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알면, 벗들이여, 이만큼으로도 그는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릅니다.”

“Sādhāvuso”ti kho te bhikkhū āyasmato sāriputtassa bhāsitaṁ abhinanditvā anumoditvā āyasmantaṁ sāriputtaṁ uttari pañhaṁ apucchuṁ: “siyā panāvuso, aññopi pariyāyo yathā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n”ti? “Siyā, āvuso. Yato kho, āvuso, ariyasāvako āsavañca pajānāti, āsavasamudayañca pajānāti, āsavanirodhañca pajānāti, āsavanirodhagāminiṁ paṭipadañca pajānāti—ettāvatāpi kho, āvuso,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ṁ.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무명의 결론을 들은 수행자들은 다시 기뻐하고 동의한 뒤 마지막으로 다른 설명을 묻습니다. 이 질문은 줄이지 않았으므로 기쁨·동의의 서술과 바른 견해에 관한 네 기준이 모두 직접 나옵니다. 사리뿟따는 “있습니다”라고 답하며 번뇌, 그 일어남, 소멸, 소멸로 이끄는 길을 아는 일을 제시합니다. 질문자의 두 호격과 답변자의 세 호격도 온전히 남아 있습니다. 다음 대목은 감각적 욕망·존재·무명의 세 번뇌를 열거하고, 무명이 번뇌의 조건임을 밝혀 앞의 조건 관계를 반대 방향에서도 연결합니다.

묵상

마지막 질문이 다시 온전한 문장으로 돌아오고 무명과 번뇌가 서로의 조건으로 놓이는 구성이 어떻게 들리나요? 이 순환을 단번에 풀 필요는 없어요. 두 상태가 서로를 키울 수 있다는 관계만 열린 질문으로 남겨도 괜찮습니다.

59 감각의 즐거움을 향한 욕망·존재하려는 욕망·모름은 왜 생기는가 1구절

감각적 욕망·존재·무명의 세 번뇌를 밝히고 무명을 번뇌의 일어남과 소멸의 조건으로 제시합니다.

“벗들이여, 무엇이 번뇌이며 그 일어남과 소멸과 소멸로 이끄는 길은 무엇입니까? 벗들이여, 세 번뇌가 있습니다. 곧 감각적 욕망의 번뇌, 존재의 번뇌, 무명의 번뇌입니다. 무명의 일어남에서 번뇌의 일어남이 있고, 무명의 소멸에서 번뇌의 소멸이 있습니다. 그 길은 고귀한 여덟 갈래 길, 곧 바른 견해 … 바른 집중입니다.”

Katamo panāvuso, āsavo, katamo āsavasamudayo, katamo āsavanirodho, katamā āsav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Tayome, āvuso, āsavā—kāmāsavo, bhavāsavo, avijjāsavo. Avijjāsamudayā āsavasamudayo, avijjānirodhā āsavanirodho,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āsavanirodhagāminī paṭipadā, seyyathidaṁ—sammādiṭṭhi …pe… sammāsamādhi.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마지막 분석 대상인 āsava는 세 가지라고 수를 밝힌 뒤 감각적 욕망·존재·무명의 번뇌로 나뉩니다. 여기서 kāmāsava는 감각적 쾌락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향한 욕망의 번뇌이므로 “감각적 욕망의 번뇌”로 옮겼습니다. 이어 무명의 일어남과 소멸이 번뇌의 일어남과 소멸에 대응합니다. 바로 앞에서는 번뇌가 무명의 조건이었고 여기서는 무명이 번뇌의 조건이므로, 둘을 직선의 시작과 끝으로만 보지 않고 서로 먹이는 관계로 읽게 합니다. 공식 생략표 …pe… 한 곳은 고귀한 여덟 갈래 길의 가운데 여섯 항목을 양언어에서 같은 범위로 줄이며 새로운 원인이나 결과를 삼키지 않습니다.

묵상

감각적 욕망·존재·무명의 세 번뇌 가운데 뜻이 가장 구체적인 하나가 있나요? 무명과 번뇌가 서로의 조건으로 놓이는 관계를 당장 풀 필요는 없어요. 한 상태가 다른 상태를 되먹이는 경험이 있는지만 가볍게 떠올려 볼까요?

60 마음에 흘러들어 괴롭히는 것들을 알아 괴로움을 끝내다 1구절

감각적 욕망·존재·무명의 번뇌와 무명의 상호 조건을 아는 일이 생략 없는 해방의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벗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처럼 번뇌와 그 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알면, 탐욕의 잠재 성향을 완전히 버리고 반감의 잠재 성향을 물리치며 ‘나는 있다’는 견해와 자만의 잠재 성향을 뿌리 뽑습니다. 무명을 버리고 참된 앎을 일으켜 바로 이 삶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벗들이여, 이만큼으로도 성스러운 제자는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릅니다.

Yato kho, āvuso, ariyasāvako evaṁ āsavaṁ pajānāti, evaṁ āsavasamudayaṁ pajānāti, evaṁ āsavanirodhaṁ pajānāti, evaṁ āsavanirodhagāminiṁ paṭipadaṁ pajānāti, so sabbaso rāgānusayaṁ pahāya, paṭighānusayaṁ paṭivinodetvā, ‘asmī’ti diṭṭhimānānusayaṁ samūhanitvā, avijjaṁ pahāya vijjaṁ uppādetvā, diṭṭheva dhamme dukkhassantakaro hoti—ettāvatāpi kho, āvuso,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n”ti.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감각적 욕망·존재·무명의 세 번뇌를 밝히고 무명을 그 일어남과 소멸의 조건으로 제시한 뒤, 번뇌의 네 측면을 아는 결과가 온전히 나옵니다. 앞에서는 번뇌가 무명의 조건이었고 여기서는 무명이 번뇌의 조건이므로 둘의 상호 작용이 분명해집니다. 탐욕·반감·자아 견해와 자만의 잠재 성향을 다루는 세 동작, 무명을 버리고 참된 앎을 일으켜 괴로움을 끝내는 결과, 바른 견해의 네 기준이 모두 직접 제시됩니다. 공식 생략표는 없습니다.

묵상

무명과 번뇌가 서로를 조건 짓는다고 할 때, 하나의 최초 원인을 찾기보다 되먹임의 고리를 본다는 점이 어떻게 다가오나요? 자신에게 번뇌가 있다고 진단할 필요는 없어요. 관계를 이해하는 일이 순환에서 빠져나올 가능성과 이어지는지만 물어보아도 괜찮습니다.

61 사리뿟따의 가르침을 기쁘게 받아들인 수행자들 1구절

사리뿟따의 말이 끝나자 비구들이 만족하며 그의 말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장면으로 경이 닫힙니다.

사리뿟따 존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행자들은 만족하여 사리뿟따 존자의 말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Idamavocāyasmā sāriputto. Attamanā te bhikkhū āyasmato sāriputtassa bhāsitaṁ abhinandunti.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마지막 네 측면과 해방의 결론 뒤 서술자의 목소리가 돌아옵니다. Idamavocāyasmā sāriputto는 이 긴 설법의 화자가 사리뿟따 존자였음을 다시 확인하고, attamanā te bhikkhū는 수행자들이 만족했다는 반응을 전합니다. 끝의 abhinandunti는 그들이 사리뿟따의 말을 기쁘게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 세존의 말이라고 바꾸거나 세존의 승인 장면을 덧붙이지 않았습니다. 처음의 “벗”이라는 부름에서 시작한 동료 수행자들의 문답은 수행자들의 만족과 수용으로 완결됩니다.

묵상

설법의 끝에서 수행자들이 논쟁의 승패보다 만족과 기쁜 수용으로 응답하는 장면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모든 내용을 이해해야 같은 반응을 할 필요는 없어요. 긴 설명 가운데 남은 한 문장이나 한 관계가 있는지만 돌아보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