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죽자 자이나교 수행자들은 두 편으로 갈려 싸우고 다투고 논쟁하며, 말의 창으로 서로를 찔렀습니다. “그대는 이 가르침과 수행을 모르나 나는 안다. 그대가 무엇을 알겠는가? 그대는 잘못 수행하고 나는 바르게 수행한다. 내 말은 맞고 그대 말은 맞지 않는다. 먼저 할 말을 뒤에, 뒤에 할 말을 먼저 했다. 그대가 오래 생각한 것은 뒤집혔고 주장은 논박되었다. 그대는 붙잡혔다. 가서 그대 주장을 구해 보라. 할 수 있다면 빠져나와 보라.”
Tassa kālaṅkiriyāya bhinnā nigaṇṭhā dvedhikajātā bhaṇḍanajātā kalahajātā vivādāpannā aññamaññaṁ mukhasattīhi vitudantā viharanti: “na tvaṁ imaṁ dhammavinayaṁ ājānāsi, ahaṁ imaṁ dhammavinayaṁ ājānāmi, kiṁ tvaṁ imaṁ dhammavinayaṁ ājānissasi. Micchāpaṭipanno tvamasi, ahamasmi sammāpaṭipanno. Sahitaṁ me, asahitaṁ te. Purevacanīyaṁ pacchā avaca, pacchāvacanīyaṁ pure avaca. Adhiciṇṇaṁ te viparāvattaṁ, āropito te vādo, niggahito tvamasi, cara vādappamokkhāya, nibbeṭhehi vā sace pahosī”ti.
디가 니까야 DN 33 상기띠경 (Saṅgītisutta)배경
지도자의 죽음 뒤 생긴 분열은 의견 차이라는 중립적 말로 끝나지 않습니다. 두 편은 싸움·다툼·논쟁에 빠지고, 입에서 나오는 말을 창에 비유할 만큼 서로를 공격합니다. 상대가 가르침을 어찌 알겠느냐고 비웃고, 수행·논리적 일관성·발언 순서·논박의 승패를 모두 자기 쪽에만 돌립니다. 마지막에는 상대의 주장이 논박되었다고 선언하고, 가서 그 주장을 구해 보라며 할 수 있으면 빠져나와 보라고 몰아붙입니다. 무엇이 참인지 함께 확인하는 문답이 아니라, 상대를 패자로 만드는 승부가 된 장면입니다.
묵상
의견이 다를 때 내용을 확인하기보다 상대의 무지나 패배를 증명하려는 말로 기울지는 않나요? 최근의 한 논쟁에서 이기려는 마음과 함께 이해하려는 마음은 각각 어떤 말투로 나타났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