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들이여, 여래는 말가짐이 청정합니다. 여래에게는 말의 나쁜 행위가 없으며, 여래가 ‘남이 이것을 알지 못하게 해야겠다’ 하며 숨길 것도 없습니다. 벗들이여, 여래는 마음가짐이 청정합니다. 여래에게는 마음의 나쁜 행위가 없으며, 여래가 ‘남이 이것을 알지 못하게 해야겠다’ 하며 숨길 것도 없습니다.”
Parisuddhavacīsamācāro āvuso, tathāgato, natthi tathāgatassa vacīduccaritaṁ, yaṁ tathāgato rakkheyya: ‘mā me idaṁ paro aññāsī’ti. Parisuddhamanosamācāro, āvuso, tathāgato, natthi tathāgatassa manoduccaritaṁ yaṁ tathāgato rakkheyya: ‘mā me idaṁ paro aññāsī’ti.
디가 니까야 DN 33 상기띠경 (Saṅgītisutta)배경
둘째와 셋째 행위 영역인 말과 마음이 같은 구조로 나란히 이어집니다. 여래는 말가짐이 청정하고 말의 나쁜 행위가 없으며, 남이 알지 못하게 하려고 감출 말도 없습니다. 마음가짐도 청정하고 마음의 나쁜 행위가 없으며, 그것을 숨길 의도도 없습니다. 두 영역에서 여래는 청정한 주체로, 나쁜 행위가 없는 이로, 숨김을 택하지 않는 이로 매번 다시 밝혀집니다. 청정과 투명성은 말과 마음 양쪽에서 대칭적으로 확인됩니다.
묵상
말과 마음의 청정을 각각 따로 밝힌 이유는 무엇일까요? 숨기고 싶은 내용을 떠올리거나 평가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말의 투명함’과 ‘마음의 투명함’이라는 두 표현은 각각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