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적 형상은 보이며 저항 있음, 보이지 않으나 저항 있음, 보이지 않고 저항도 없음의 셋입니다. 의도적 형성은 공덕을 낳는 형성·공덕에 어긋나는 형성·흔들림 없는 형성입니다. 사람은 배우는 이·더 배울 것 없는 이·둘 다 아닌 이, 장로는 출생·가르침·공인에 따른 장로입니다. 공덕을 짓는 세 바탕은 보시·윤리·마음 닦기입니다.”
Tividhena rūpasaṅgaho—sanidassanasappaṭighaṁ rūpaṁ, anidassanasappaṭighaṁ rūpaṁ, anidassanaappaṭighaṁ rūpaṁ. Tayo saṅkhārā—puññābhisaṅkhāro, apuññābhisaṅkhāro, āneñjābhisaṅkhāro. Tayo puggalā—sekkho puggalo, asekkho puggalo, nevasekkho nāsekkho puggalo. Tayo therā—jātithero, dhammathero, sammutithero. Tīṇi puññakiriyavatthūni—dānamayaṁ puññakiriyavatthu, sīlamayaṁ puññakiriyavatthu, bhāvanāmayaṁ puññakiriyavatthu.
디가 니까야 DN 33 상기띠경 (Saṅgītisutta)배경
서로 다른 다섯 영역이 각각 셋으로 완결됩니다. 물질적 형상은 보임과 저항의 유무로 나뉘고, 의도적 형성은 공덕을 낳는지 공덕을 해치는지 또는 흔들림 없는 상태로 향하는지에 따라 구분됩니다. 사람은 아직 배우는 중인지, 더 배울 것이 없는 완성자인지, 어느 쪽도 아닌지로 나뉩니다. 장로라는 지위도 나이가 많음, 가르침에 깊음, 공동체의 공인이라는 서로 다른 근거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공덕은 재물을 나누는 보시, 삶을 바로 세우는 윤리, 마음을 닦는 수행에서 생깁니다.
묵상
누군가의 성숙을 나이나 공식 지위로 판단했던 장면이 떠오르나요? 보시·윤리·마음 닦기라는 세 바탕을 들을 때 친숙하거나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인가요? 지금 한 가지를 선택해 보고 싶은가요, 아니면 차이를 더 바라보고 싶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