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들이여, 스스로 만들어 낸 쾌락을 바라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거듭 쾌락을 만들어 그 쾌락에 지배됩니다. 창조를 즐기는 신들이 그러하며, 이것이 둘째 출생입니다. 벗들이여, 남이 만들어 낸 쾌락을 바라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남이 만들어 낸 쾌락에 지배됩니다. 남이 만든 것을 다스리는 신들이 그러하며, 이것이 셋째 출생입니다.”
Santāvuso, sattā nimmitakāmā, te nimminitvā nimminitvā kāmesu vasaṁ vattenti, seyyathāpi devā nimmānaratī. Ayaṁ dutiyā kāmūpapatti. Santāvuso sattā paranimmitakāmā, te paranimmitesu kāmesu vasaṁ vattenti, seyyathāpi devā paranimmitavasavattī. Ayaṁ tatiyā kāmūpapatti.
디가 니까야 DN 33 상기띠경 (Saṅgītisutta)배경
둘째와 셋째 출생은 쾌락을 누가 만들어 냈는지에 따라 구별됩니다. 둘째에서는 스스로 만들어 낸 쾌락을 바라는 존재가 먼저 나오고, 거듭 쾌락을 만들어 그 지배를 받는다고 다시 밝힙니다. 창조를 즐기는 신들이 그 예입니다. 셋째에서는 남이 만들어 낸 쾌락을 바라는 존재와 남이 만든 쾌락에 지배되는 관계가 각각 온전히 서술됩니다. 남이 만든 것을 다스리는 신들이 그 예입니다. 두 항목 모두 바람, 지배, 예, 서수의 네 부분을 따로 갖춥니다.
묵상
스스로 마련한 즐거움과 다른 이가 마련한 즐거움이라는 두 말을 들을 때 느낌이 다르게 나타나나요? 어느 쪽이 낫다고 고르거나 즐거움에 지배되는지를 판단할 필요는 없어요. 몸에 먼저 닿는 한 반응만 살펴볼까요, 모르겠다면 그대로 두거나 건너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