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출생은 셋입니다. 벗들이여, 첫째는 즐거움을 거듭 일으키며 사는 범천 무리의 신들입니다. 벗들이여, 둘째는 즐거움에 젖고, 흠뻑 배고, 가득 차고, 두루 스며들어 때때로 ‘아, 즐겁다! 아, 즐겁다!’라고 외치는 광음천의 신들입니다. 벗들이여, 셋째도 즐거움에 젖고, 흠뻑 배고, 가득 차고, 두루 스며들며, 고요히 만족하여 즐거움을 느끼는 변정천의 신들입니다.”
Tisso sukhūpapattiyo—santāvuso sattā uppādetvā uppādetvā sukhaṁ viharanti, seyyathāpi devā brahmakāyikā. Ayaṁ paṭhamā sukhūpapatti. Santāvuso, sattā sukhena abhisannā parisannā paripūrā paripphuṭā. Te kadāci karahaci udānaṁ udānenti: ‘aho sukhaṁ, aho sukhan’ti, seyyathāpi devā ābhassarā. Ayaṁ dutiyā sukhūpapatti. Santāvuso, sattā sukhena abhisannā parisannā paripūrā paripphuṭā. Te santaṁyeva tusitā sukhaṁ paṭisaṁvedenti, seyyathāpi devā subhakiṇhā. Ayaṁ tatiyā sukhūpapatti.
디가 니까야 DN 33 상기띠경 (Saṅgītisutta)배경
즐거운 출생의 차이는 즐거움을 경험하는 방식에서 드러납니다. 범천 무리의 신들은 즐거움을 거듭 일으키며 지냅니다. 광음천과 변정천의 신들에게는 즐거움에 젖음, 흠뻑 뱀, 가득 참, 두루 스며듦이라는 네 표현이 각각 빠짐없이 반복됩니다. 그 뒤 광음천의 신들은 때때로 “아, 즐겁다”라고 외치고, 변정천의 신들은 고요히 만족하여 즐거움을 느낍니다. 첫째의 반복 생성, 둘째의 네 겹 충만과 감탄, 셋째의 같은 네 겹 충만과 고요한 만족이 서로 구별됩니다.
묵상
즐거움을 억지로 만들어 내거나 넘치게 표현하거나 고요히 누리는 순간은 서로 어떻게 다른가요? 지금의 기쁨을 붙잡거나 과장하지 않고 충분히 알아차리며 만족할 수 있나요? 몸에서는 어떻게 느껴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