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보는 눈과 배움, 마음을 모으는 세 방식

육안·천안·지혜안, 높은 윤리·마음·지혜의 훈련, 세 닦음과 비할 데 없는 성취 및 세 삼매를 밝힘

“세 눈은 육안·천안·지혜안입니다. 세 훈련은 높은 윤리·높은 마음·높은 지혜의 훈련이며, 세 닦음은 몸·마음·지혜의 닦음입니다. 비할 데 없는 셋은 봄·실천·해탈에서 비할 데 없음입니다. 세 집중은 생각을 대고 살피는 집중, 생각을 대지 않고 살피기만 하는 집중, 생각을 대지도 살피지도 않는 집중입니다.”

Tīṇi cakkhūni—maṁsacakkhu, dibbacakkhu, paññācakkhu. Tisso sikkhā—adhisīlasikkhā, adhicittasikkhā, adhipaññāsikkhā. Tisso bhāvanā—kāyabhāvanā, cittabhāvanā, paññābhāvanā. Tīṇi anuttariyāni—dassanānuttariyaṁ, paṭipadānuttariyaṁ, vimuttānuttariyaṁ. Tayo samādhī—savitakkasavicāro samādhi, avitakkavicāramatto samādhi, avitakkaavicāro samādhi.

디가 니까야 DN 33 상기띠경 (Saṅgītisutta)

배경

보는 능력은 육체의 눈, 보통 시야를 넘어 존재의 죽음과 태어남을 보는 천안, 현상의 성질을 꿰뚫는 지혜안으로 깊어집니다. 훈련은 윤리·마음·지혜를 높은 수준으로 닦는 셋이고, 닦음도 몸·마음·지혜를 모두 포함합니다. 봄과 실천과 해탈에서 비할 데 없는 성취를 말한 뒤, 삼매는 생각을 대상에 대는 작용과 계속 살피는 작용의 유무로 세밀하게 구분됩니다. 처음에는 두 작용이 모두 있고, 다음에는 살핌만 남으며, 마지막에는 둘 다 고요해집니다.

묵상

지식으로 이해할 때와 경험을 지혜로 꿰뚫어 본다고 느낄 때 몸과 마음은 어떻게 다른가요? 몸·마음·지혜의 훈련을 차례로 떠올리면 어느 말에서 관심이 머무나요? 지금 해 보고 싶은 작은 관찰이 있나요, 아직 없다면 무엇이 궁금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