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로운 상태를 막고 이미 생긴 것은 버리다

네 바른 노력 가운데 아직 생기지 않은 해로움을 막고 이미 생긴 해로움을 버리는 앞의 두 노력을 밝힘

“네 가지 바른 노력이 있습니다. 벗들이여, 수행자는 아직 생기지 않은 나쁘고 해로운 상태가 생기지 않도록 열의를 일으키고 애쓰며 정진하고 마음을 북돋워 힘씁니다. 이미 생긴 나쁘고 해로운 상태는 버리도록 열의를 일으키고 애쓰며 정진하고 마음을 북돋워 힘씁니다.”

Cattāro sammappadhānā. Idhāvuso, bhikkhu anuppannānaṁ pāpakānaṁ akusalānaṁ dhammānaṁ anuppādāya chandaṁ janeti vāyamati vīriyaṁ ārabhati cittaṁ paggaṇhāti padahati. Uppannānaṁ pāpakānaṁ akusalānaṁ dhammānaṁ pahānāya chandaṁ janeti vāyamati vīriyaṁ ārabhati cittaṁ paggaṇhāti padahati.

디가 니까야 DN 33 상기띠경 (Saṅgītisutta)

배경

네 바른 노력의 앞 절반은 해로운 상태를 시간 순서에 따라 다룹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탐욕이나 성냄에는 생기지 않도록 미리 조건을 돌보고, 이미 일어난 것은 그대로 키우지 않고 버립니다. 두 경우 모두 단순히 바라기만 하지 않습니다. 열의를 내고, 실제로 애쓰고, 정진의 힘을 일으키며, 처지는 마음을 북돋우고, 끝까지 힘쓴다는 다섯 동작이 되풀이됩니다. 예방과 제거는 서로 다른 과제이므로 일어나기 전의 환경 관리와 일어난 뒤의 단호한 대응이 모두 필요합니다.

묵상

아직 생기지 않은 해로움과 이미 생긴 해로움이라는 두 표현을 들을 때 마음이 서로 다르게 반응하나요? 자신의 습관이나 예방·버림 능력을 평가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한 문장이 숨과 자세에 남긴 반응만 볼까요, 잘 모르겠거나 원치 않으면 건너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