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을 놓고 평정과 마음챙김을 맑히다

기쁨이 바랜 셋째 선정과 즐거움·괴로움을 모두 놓아 평정과 마음챙김이 청정한 넷째 선정을 밝힘

“기쁨이 바래면 평정 속에 머물고 마음챙기며 분명히 알고, 몸으로 즐거움을 느낍니다. 성자들이 ‘평정하고 마음챙기며 즐겁게 머문다’고 말하는 셋째 선정에 들어 머뭅니다. 즐거움과 괴로움을 버리고 앞서 기쁨과 슬픔도 사라지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고 평정과 알아차림이 청정한 넷째 선정에 들어 머뭅니다.”

Pītiyā ca virāgā upekkhako ca viharati sato ca sampajāno, sukhañca kāyena paṭisaṁvedeti, yaṁ taṁ ariyā ācikkhanti: ‘upekkhako satimā sukhavihārī’ti tatiy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Sukhassa ca pahānā dukkhassa ca pahānā, pubbeva somanassadomanassānaṁ atthaṅgamā, adukkhamasukhaṁ upekkhāsatipārisuddhiṁ catutth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디가 니까야 DN 33 상기띠경 (Saṅgītisutta)

배경

셋째 선정에서는 들뜨게 하는 기쁨이 바래지만 몸으로 느끼는 고요한 즐거움은 남습니다. 수행자는 평정하고 마음챙기며 현재 상태를 분명히 압니다. 넷째 선정에서는 즐거움과 괴로움, 그보다 앞선 기쁜 마음과 슬픈 마음까지 모두 사라집니다. 느낌이 무감각해지는 것이 아니라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바탕에서 평정과 마음챙김이 청정해집니다. 선정이 깊어질수록 더 강한 쾌감을 찾는 것이 아니라, 반응의 동요가 가라앉고 알아차림의 균형이 맑아지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묵상

강한 기쁨이 사라질 때 좋은 상태가 끝났다고 붙잡지는 않나요? 즐겁거나 괴로운 쪽으로 기울지 않으면서도 또렷이 알아차리는 평정은 무관심과 어떻게 다른가요? 몸과 마음에서 어떤 차이가 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