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현상을 알고 특징과 세부를 붙잡지 않습니다. 마음의 기능을 절제하지 않은 채 머물면 탐욕과 낙담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현상들이 밀려들기에, 이를 절제하려 수행하고 마음의 기능을 지키며 마음의 기능에 대한 절제를 성취합니다. 벗들이여, 이것이 절제의 노력입니다.”
manasā dhammaṁ viññāya na nimittaggāhī hoti nānubyañjanaggāhī. Yatvādhikaraṇamenaṁ manindriyaṁ asaṁvutaṁ viharantaṁ abhijjhādomanassā pāpakā akusalā dhammā anvāssaveyyuṁ, tassa saṁvarāya paṭipajjati, rakkhati manindriyaṁ, manindriye saṁvaraṁ āpajjati. Idaṁ vuccatāvuso, saṁvarapadhānaṁ.
디가 니까야 DN 33 상기띠경 (Saṅgītisutta)배경
여섯 감각 가운데 마지막인 마음의 절제가 온전히 제시됩니다. 마음으로 현상을 알 때 특징과 세부를 붙잡지 않습니다. 마음의 기능을 절제하지 않은 채 머물면 탐욕과 낙담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현상들이 밀려든다는 조건과 결과가 분명히 나옵니다. 그 때문에 마음을 절제하려 수행하고, 마음의 기능을 지키며, 마음의 기능에 대한 절제를 성취한다는 세 동작이 모두 이어집니다. 마지막 호격과 함께 “이것이 절제의 노력입니다”라고 결론지어 눈에서 마음까지 이어진 여섯 감각의 절제를 닫습니다.
묵상
현상을 앎·특징을 붙잡음·마음의 기능을 지킴이라는 말을 들을 때 어느 표현이 선명하거나 낯설게 느껴지나요? 마음이 절제되었는지 판단하거나 경험을 공개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한 반응만 잠시 볼까요, 아니면 이 물음을 건너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