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욕·악의·해침의 생각을 남김없이 버리다

버림의 노력을 묻고 이미 일어난 해로운 생각과 모든 나쁜 상태를 참아 두지 않고 몰아내 없애는 수행으로 답함

“벗들이여, 버림의 노력이란 무엇입니까? 수행자들이여, 여기서 수행자는 이미 일어난 감각욕의 생각을 참아 두지 않고 버리고 몰아내며 끝내어 없앱니다. 악의의 생각은 … 해치려는 생각은 … 그때그때 일어난 모든 나쁘고 해로운 상태도 참아 두지 않고 버리고 몰아내며 끝내어 없앱니다. 벗들이여, 이것이 버림의 노력입니다.”

Katamañcāvuso, pahānapadhānaṁ? Idha, bhikkhave, bhikkhu uppannaṁ kāmavitakkaṁ nādhivāseti pajahati vinodeti byantiṁ karoti anabhāvaṁ gameti; uppannaṁ byāpādavitakkaṁ …pe… uppannaṁ vihiṁsāvitakkaṁ …pe… uppannuppanne pāpake akusale dhamme nādhivāseti pajahati vinodeti byantiṁ karoti anabhāvaṁ gameti. Idaṁ vuccatāvuso, pahānapadhānaṁ.

디가 니까야 DN 33 상기띠경 (Saṅgītisutta)

배경

둘째 노력은 이미 마음에 들어온 해로운 상태를 다룹니다. 감각적 욕망, 악의, 해치려는 생각을 알아차렸을 때 그대로 견디며 키우지 않고, 버리고 몰아내고 끝장내어 다시 작동하지 못하게 합니다. 세 대표 생각만이 아니라 그때그때 생기는 모든 나쁘고 해로운 상태에도 같은 단호함을 적용합니다. 이 대목에는 “벗들이여”라는 질문 뒤 인용된 수행 공식의 “수행자들이여”라는 호격이 함께 남아, 공동 암송 속에서 세존의 직접 가르침을 되살립니다. 억누름보다 해로운 흐름을 지속시키지 않는 능동적 포기가 핵심입니다.

묵상

감각욕·악의·해침이라는 세 생각을 차례로 떠올리면 어느 말에서 마음이나 몸이 반응하나요? 구체적인 내용을 꺼내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 반응을 계속 품고 싶은지 흘려보내고 싶은지, 아직 모르겠는지도 그대로 알아차릴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