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침을 아는 네 앎과 네 진리를 아는 앎

가르침·추론·포괄·통상의 앎과 괴로움·발생·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아는 네 앎을 제시함

“네 가지 앎은 가르침을 아는 앎, 그에 따라 추론하는 앎, 포괄하여 아는 앎, 통상적 표현을 아는 앎입니다. 또 다른 네 앎은 괴로움을 아는 앎, 괴로움의 발생을 아는 앎, 괴로움의 소멸을 아는 앎,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을 아는 앎입니다.”

Cattāri ñāṇāni—dhamme ñāṇaṁ, anvaye ñāṇaṁ, pariye ñāṇaṁ, sammutiyā ñāṇaṁ. Aparānipi cattāri ñāṇāni—dukkhe ñāṇaṁ, dukkhasamudaye ñāṇaṁ, dukkhanirodhe ñāṇaṁ, dukkhanirodhagāminiyā paṭipadāya ñāṇaṁ.

디가 니까야 DN 33 상기띠경 (Saṅgītisutta)

배경

첫 네 앎은 직접 제시된 가르침을 이해하고, 그 원리에 따라 다른 경우를 추론하며, 전체 관계를 포괄하고, 일상적 약속과 표현의 차원까지 아는 여러 지식 기능을 구분합니다. 다음 네 앎은 수행의 핵심 진리를 대상으로 삼습니다. 괴로움의 사실만 아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것이 생기는 원인, 사라질 가능성, 실제 소멸로 이끄는 실천까지 빠짐없이 알아야 합니다. 문제의 존재·원인·해결·방법이라는 네 구조가 완성될 때 앎은 설명에 그치지 않고 해방을 향한 길잡이가 됩니다.

묵상

한 가지 불편을 괴로움·발생 원인·소멸 가능성·그 길이라는 네 칸 옆에 놓아 보면 어느 칸이 가장 선명하고 어느 칸은 아직 흐릿한가요? 지금 더 보고 싶은 부분이 있나요, 아니면 네 칸 어느 곳에도 놓지 않고 쉬고 싶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