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벗들이여, 어떤 이는 분명히 알아차리며 어머니 배 속에 들어가지만, 머물러 있을 때와 나올 때는 분명히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이것이 둘째 잉태입니다. 또 벗들이여, 어떤 이는 들어갈 때와 머물러 있을 때는 분명히 알아차리지만, 나올 때는 그렇지 못합니다. 이것이 셋째 잉태입니다.”
Puna caparaṁ, āvuso, idhekacco sampajāno mātukucchiṁ okkamati, asampajāno mātukucchismiṁ ṭhāti, asampajāno mātukucchimhā nikkhamati, ayaṁ dutiyā gabbhāvakkanti. Puna caparaṁ, āvuso, idhekacco sampajāno mātukucchiṁ okkamati, sampajāno mātukucchismiṁ ṭhāti, asampajāno mātukucchimhā nikkhamati, ayaṁ tatiyā gabbhāvakkanti.
디가 니까야 DN 33 상기띠경 (Saṅgītisutta)배경
둘째와 셋째는 세 단계의 앞에서부터 분명한 앎이 차례로 확대되는 구조입니다. 둘째는 들어갈 때만 분명하고 머물러 있음과 나옴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셋째는 들어감과 머물러 있음까지는 분명하지만 나올 때에는 그렇지 못합니다. 각 문장에서 긍정과 부정의 위치가 달라지며, 그 차이가 잉태의 순서와 서수를 결정합니다. 특별한 체험의 우열이 아니라 세 시점의 알아차림 유무를 정밀하게 분류하는 대목입니다.
묵상
시작할 때는 분명했지만 지속하거나 끝낼 때는 자동으로 흘러간 일이 있나요? 그 흐름에서 다시 분명한 앎을 찾기 좋은 시점은 시작, 중간, 끝 가운데 언제인가요? 그때 도움이 될 짧은 멈춤은 어떤 모습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