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네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벗들이여,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실천하지만 남의 이익을 위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벗들이여, 어떤 사람은 남의 이익을 위해 실천하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벗들이여, 어떤 사람은 자신과 남 모두의 이익을 위해 실천하지 않습니다. 벗들이여, 어떤 사람은 자신과 남 모두의 이익을 위해 실천합니다.”
Aparepi cattāro puggalā. Idhāvuso, ekacco puggalo attahitāya paṭipanno hoti no parahitāya. Idhāvuso, ekacco puggalo parahitāya paṭipanno hoti no attahitāya. Idhāvuso, ekacco puggalo neva attahitāya paṭipanno hoti no parahitāya. Idhāvuso, ekacco puggalo attahitāya ceva paṭipanno hoti parahitāya ca.
디가 니까야 DN 33 상기띠경 (Saṅgītisutta)배경
자신의 이익과 남의 이익을 두 축으로 놓고 네 가지 사람을 빠짐없이 배치합니다. 자신만을 위하는 사람과 남만을 위하는 사람이 먼저 대조됩니다. 그뒤에 둘 모두를 위하지 않는 사람과 둘 다의 이익을 위해 실천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이때 단지 이익을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그 이익을 위해 “실천하는”지가 분류의 기준입니다. 자기 희생과 이기심의 두 극단을 넘어, 둘의 이익을 함께 살피는 실천이 넷째로 완성됩니다.
묵상
내 이익과 남의 이익이 겹칠 수 있는데도 둘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지금 하는 일 하나에서 자신과 남에게 각각 실제로 이익이 되는 선택을 찾아볼 수 있나요? 그 선택을 실천으로 옮길 첫 행동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