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에서 주눅 들고 죽을 때 혼란스럽다

윤리가 없는 사람이 왕족·바라문·재가자·수행자의 모임에 자신 없이 들어가는 셋째 손해와 혼란 속에 죽는 넷째를 밝힘

“또 벗들이여, 윤리가 없고 윤리에 실패한 사람은 왕족·바라문·재가자·수행자 모임 중 어떤 모임에 들어가더라도 자신감이 없고 부끄러워합니다. 이것이 윤리가 없고 윤리에 실패한 사람이 윤리의 실패 때문에 겪는 셋째 손해입니다. 또 벗들이여, 윤리가 없고 윤리에 실패한 사람은 혼란스러운 채 죽습니다. 이것이 윤리가 없고 윤리에 실패한 사람이 윤리의 실패 때문에 겪는 넷째 손해입니다.”

Puna caparaṁ, āvuso, dussīlo sīlavipanno yaññadeva parisaṁ upasaṅkamati yadi khattiyaparisaṁ yadi brāhmaṇaparisaṁ yadi gahapatiparisaṁ yadi samaṇaparisaṁ, avisārado upasaṅkamati maṅkubhūto, ayaṁ tatiyo ādīnavo dussīlassa sīlavipattiyā. Puna caparaṁ, āvuso, dussīlo sīlavipanno sammūḷho kālaṁ karoti, ayaṁ catuttho ādīnavo dussīlassa sīlavipattiyā.

디가 니까야 DN 33 상기띠경 (Saṅgītisutta)

배경

윤리의 실패에 따른 셋째와 넷째 손해가 각각 별도의 결과로 나란히 제시됩니다. 셋째에서 “윤리가 없고 윤리에 실패한 사람”은 왕족·바라문·재가자·수행자의 네 모임 가운데 어디에 들어가든 자신감이 없고 부끄러워합니다. 결론은 같은 두 자격과 윤리의 실패를 되풀이해 셋째 손해라고 확인합니다. 넷째에서도 그 두 자격을 다시 갖춘 주어가 혼란스러운 채 죽는다고 하며, 별도의 결론이 넷째 손해라고 닫습니다. 모임에서의 상태와 죽을 때의 상태는 진행 단계가 아니라 병렬적인 두 손해입니다.

묵상

어떤 모임에 들어갈 때 담대함이나 주눅이 느껴진 장면이 있나요? 그 느낌의 원인을 판정하거나 누군가에게 알릴 필요는 없어요. 지금은 문을 열고 들어갈 때의 발걸음, 시선, 어깨 중 하나에 나타난 작은 반응을 살펴볼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