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벗들이여, 윤리적이고 윤리를 성취한 사람은 좋은 평판을 얻습니다. 이것이 윤리적이고 윤리를 성취한 사람이 윤리의 성취 때문에 얻는 둘째 이득입니다. 또 벗들이여, 윤리적이고 윤리를 성취한 사람은 왕족·바라문·재가자·수행자 모임 중 어떤 모임에 들어가더라도 담대하고 당당합니다. 이것이 윤리적이고 윤리를 성취한 사람이 윤리의 성취 때문에 얻는 셋째 이득입니다.”
Puna caparaṁ, āvuso, sīlavato sīlasampannassa kalyāṇo kittisaddo abbhuggacchati, ayaṁ dutiyo ānisaṁso sīlavato sīlasampadāya. Puna caparaṁ, āvuso, sīlavā sīlasampanno yaññadeva parisaṁ upasaṅkamati yadi khattiyaparisaṁ yadi brāhmaṇaparisaṁ yadi gahapatiparisaṁ yadi samaṇaparisaṁ, visārado upasaṅkamati amaṅkubhūto, ayaṁ tatiyo ānisaṁso sīlavato sīlasampadāya.
디가 니까야 DN 33 상기띠경 (Saṅgītisutta)배경
윤리의 성취에 따른 둘째와 셋째 이득이 병렬로 이어집니다. 둘째 결과에서는 “윤리적이고 윤리를 성취한 사람”이 좋은 평판을 얻는다고 하며, 결론도 같은 두 자격과 윤리의 성취를 되풀이합니다. 셋째 결과에서도 주어의 두 자격이 다시 온전히 나옵니다. 그 사람은 왕족·바라문·재가자·수행자의 네 모임 가운데 어디에 들어가든 담대하고 당당하며, 별도의 결론이 이것을 셋째 이득으로 확인합니다. 좋은 평판과 모임에서의 담대함은 하나가 다른 하나를 낳는 단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이득입니다.
묵상
좋은 평판과 네 모임에서의 담대함이라는 두 결과를 들을 때 어느 표현에서 마음이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나요? 자신의 평판이나 담대함을 평가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한 문장이 숨과 자세에 남긴 반응만 볼까요, 아니면 그대로 건너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