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벗들이여, 수행자가 악의를 마음에 둘 때 마음은 악의로 향하지 않고, 맑아지지 않고, 자리 잡지 않고, 풀려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의를 마음에 둘 때 마음은 그것을 향하고, 맑아지고, 자리 잡고, 풀려납니다. 마음은 잘 나아가고, 잘 닦이고, 잘 서고, 잘 풀려나 악의에서 벗어납니다. 악의로 생긴 번뇌·괴로움·열병에서 풀려나 그런 느낌을 느끼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악의에서 벗어남이 설명됩니다.”
Puna caparaṁ, āvuso, bhikkhuno byāpādaṁ manasikaroto byāpāde cittaṁ na pakkhandati na pasīdati na santiṭṭhati na vimuccati. Abyāpādaṁ kho panassa manasikaroto abyāpāde cittaṁ pakkhandati pasīdati santiṭṭhati vimuccati. Tassa taṁ cittaṁ sugataṁ subhāvitaṁ suvuṭṭhitaṁ suvimuttaṁ visaṁyuttaṁ byāpādena. Ye ca byāpādapaccayā uppajjanti āsavā vighātā pariḷāhā, mutto so tehi, na so taṁ vedanaṁ vedeti. Idamakkhātaṁ byāpādassa nissaraṇaṁ.
디가 니까야 DN 33 상기띠경 (Saṅgītisutta)배경
둘째 벗어남의 요소는 악의와 악의 없는 선의를 마주 놓습니다. 악의를 생각할 때 마음에는 향함·맑아짐·자리 잡음·풀려남이 모두 없지만, 선의를 생각할 때에는 네 작용이 모두 생깁니다. 이어 마음이 잘 나아가고 닦이고 일어서고 풀려나 악의와의 결합에서 벗어나는 다섯 변화를 밝힙니다. 그 결과 악의를 조건으로 생기던 번뇌·괴로움·열병과 그 느낌도 사라집니다. 마음의 대상, 내적 변화, 고통의 소멸이 한 인과로 이어집니다.
묵상
누군가를 떠올릴 때 악의와 선의가 몸에 서로 다른 흔적을 남기나요? 상대를 용서하거나 좋아해야 한다고 몰아붙이지 말고, 두 마음이 숨의 깊이·턱의 긴장·가슴의 열감 가운데 하나를 어떻게 바꾸는지만 볼 수 있나요? 지금은 살펴보고 싶은가요, 아니면 건너뛰고 싶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