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치지 않는 연민으로 벗어나다

해치려는 마음에는 향하지 않지만 해치지 않는 연민에는 향한 마음이 해침 조건의 세 고통과 느낌에서 풀려남을 밝힘

“또 벗들이여, 수행자가 해침을 마음에 둘 때 마음은 해침으로 향하지 않고, 맑아지지 않고, 자리 잡지 않고, 풀려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해치지 않는 연민을 마음에 둘 때 마음은 그것을 향하고, 맑아지고, 자리 잡고, 풀려납니다. 마음은 잘 나아가고, 잘 닦이고, 잘 서고, 잘 풀려나 해침에서 벗어납니다. 해침으로 생긴 번뇌·괴로움·열병에서 풀려나 그런 느낌을 느끼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해침에서 벗어남이 설명됩니다.”

Puna caparaṁ, āvuso, bhikkhuno vihesaṁ manasikaroto vihesāya cittaṁ na pakkhandati na pasīdati na santiṭṭhati na vimuccati. Avihesaṁ kho panassa manasikaroto avihesāya cittaṁ pakkhandati pasīdati santiṭṭhati vimuccati. Tassa taṁ cittaṁ sugataṁ subhāvitaṁ suvuṭṭhitaṁ suvimuttaṁ visaṁyuttaṁ vihesāya. Ye ca vihesāpaccayā uppajjanti āsavā vighātā pariḷāhā, mutto so tehi, na so taṁ vedanaṁ vedeti. Idamakkhātaṁ vihesāya nissaraṇaṁ.

디가 니까야 DN 33 상기띠경 (Saṅgītisutta)

배경

셋째 요소의 대조는 다른 이를 괴롭히려는 해침과, 해치지 않는 연민 사이에 놓입니다. 해침을 생각할 때에는 마음의 네 긍정적 움직임이 일어나지 않지만, 해치지 않음을 생각하면 마음이 향하고 맑아지고 굳게 자리 잡고 풀려납니다. 그렇게 닦인 마음은 해침과의 연결에서 벗어나며, 해침을 조건으로 뒤따르던 번뇌·괴로움·열병에서도 자유로워집니다. 행동을 억누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고통을 낳지 않는 대상에 마음이 안정되는 변화가 핵심입니다.

묵상

말이나 행동으로 밀어붙이고 싶은 충동과 해치지 않으려는 마음을 떠올리면 몸의 느낌이 어떻게 다른가요? 어느 쪽이 옳은지 지금 결론 내리지 않아도 괜찮아요. 두 상태 가운데 하나가 손·목소리·호흡에 남긴 작은 신호만 알아차릴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