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들이여, 스승이나 존경할 만한 수행 도반이 가르침을 설해 주는 만큼 수행자는 그 가르침에서 뜻을 느끼고 그 이치를 느낍니다. 뜻과 이치를 느끼는 이에게 기쁨이 생기고, 기뻐하는 이에게 희열이 생기며, 희열로 찬 마음을 지닌 이의 몸은 고요해집니다. 몸이 고요해진 이는 행복을 느끼고, 행복한 이의 마음은 집중에 듭니다. 이것이 첫째 해탈의 기회입니다.”
Yathā yathā, āvuso, bhikkhuno satthā dhammaṁ deseti aññataro vā garuṭṭhāniyo sabrahmacārī tathā tathā so tasmiṁ dhamme atthapaṭisaṁvedī ca hoti dhammapaṭisaṁvedī ca. Tassa atthapaṭisaṁvedino dhammapaṭisaṁvedino pāmojjaṁ jāyati, pamuditassa pīti jāyati, pītimanassa kāyo passambhati, passaddhakāyo sukhaṁ vedeti, sukhino cittaṁ samādhiyati. Idaṁ paṭhamaṁ vimuttāyatanaṁ.
디가 니까야 DN 33 상기띠경 (Saṅgītisutta)배경
다른 이에게서 가르침을 듣는 일이 해탈의 기회가 되는 조건과 과정을 밝힙니다. 설하는 내용이 펼쳐지는 만큼 수행자는 그 뜻과 가르침의 이치를 함께 느낍니다. 이 감응에서 기쁨이 생기고, 기쁨에서 희열, 희열에서 몸의 고요, 몸의 고요에서 행복, 행복에서 삼매가 순서대로 이어집니다. 뜻과 가르침에 감응하는 일이 마음의 기쁨과 희열을 일으키고 몸의 고요와 행복을 거쳐 삼매로 이어질 때, 다른 이의 가르침을 듣는 자리가 첫째 해탈의 기회가 됩니다.
묵상
어떤 설명의 뜻이 이해되며 마음이 밝아지고 몸까지 편안해졌던 순간이 있나요? 그 경험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여기지 말고, 이해·기쁨·몸의 고요·집중 가운데 지금 기억에 가장 가까운 한 단계만 살펴볼 수 있나요? 떠오르지 않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