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벗들이여, 스승이나 존경할 만한 수행 도반이 수행자에게 가르침을 설하지 않더라도, 그 수행자가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다른 이들에게 가르침을 자세히 설합니다. … 또 들은 대로 배운 대로 가르침을 자세히 소리 내어 외웁니다. … 또 들은 대로 배운 대로 가르침을 마음속으로 거듭 생각하고 고찰하며 마음으로 관찰합니다. …”
Puna caparaṁ, āvuso, bhikkhuno na heva kho satthā dhammaṁ deseti aññataro vā garuṭṭhāniyo sabrahmacārī, api ca kho yathāsutaṁ yathāpariyattaṁ dhammaṁ vitthārena paresaṁ deseti …pe… api ca kho yathāsutaṁ yathāpariyattaṁ dhammaṁ vitthārena sajjhāyaṁ karoti …pe… api ca kho yathāsutaṁ yathāpariyattaṁ dhammaṁ cetasā anuvitakketi anuvicāreti manasānupekkhati …pe…
디가 니까야 DN 33 상기띠경 (Saṅgītisutta)배경
해탈의 둘째부터 넷째 기회는 가르침과 능동적으로 만나는 세 방식입니다. 스승이나 존경할 도반이 직접 설하지 않을 때에도, 자신이 듣고 배운 내용을 다른 이에게 자세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또는 같은 내용을 자세히 소리 내어 외우거나, 마음속으로 거듭 생각하고 고찰하며 관찰할 수 있습니다. 각 방식 뒤에는 뜻과 이치를 느끼고 기쁨에서 삼매로 이어지는 첫째의 과정이 줄여져 있습니다. 말로 풀어 줌, 소리로 익힘, 마음으로 숙고함이 각각 독립된 해탈의 기회가 됩니다.
묵상
배운 내용을 다른 이에게 설명할 때, 소리 내어 되새길 때, 조용히 생각할 때 이해가 서로 다르게 깊어지나요? 세 방식을 모두 해야 할 필요는 없어요. 지금 가장 부담 없이 시도하거나 떠올릴 수 있는 한 방식에서 마음과 몸이 보이는 반응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