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해 고집이 보이지 않아도 다시 스며들지 않게 하다

여섯째 논쟁의 뿌리가 보이지 않을 때 미래의 비유입을 위해 수행하고, 버림과 비유입의 두 결론으로 논쟁의 뿌리 단락을 닫음

“그대들이, 벗들이여, 이와 같은 논쟁의 뿌리를 자신 안이나 밖에서 보지 않는다면, 그대들은, 벗들이여, 바로 그 해로운 뿌리가 앞으로 다시 스며들지 않도록 수행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그 해로운 논쟁의 뿌리를 버립니다. 이와 같이 그 해로운 논쟁의 뿌리가 앞으로 다시 스며들지 않게 합니다.”

Evarūpañce tumhe, āvuso, vivādamūlaṁ ajjhattaṁ vā bahiddhā vā na samanupasseyyātha. Tatra tumhe, āvuso, tasseva pāpakassa vivādamūlassa āyatiṁ anavassavāya paṭipajjeyyātha. Evametassa pāpakassa vivādamūlassa pahānaṁ hoti. Evametassa pāpakassa vivādamūlassa āyatiṁ anavassavo hoti.

디가 니까야 DN 33 상기띠경 (Saṅgītisutta)

배경

여섯째 뿌리에서도 두 경우의 대칭은 변하지 않습니다. 자신 안이나 밖에서 견해 고집의 뿌리를 보지 않는다면, 현재에 버릴 대상을 찾기보다 미래에 그 뿌리가 다시 스며들지 않게 수행합니다. “보지 않는다”와 “스며들지 않게”라는 두 부정은 각각 현재의 판별과 미래의 예방을 가리킵니다. 이어지는 두 문장은 이미 있는 뿌리의 버림과 앞으로의 비유입을 각각 확인합니다. 성냄에서 견해 고집까지 여섯 뿌리 모두에 현재의 버림과 미래의 예방이 필요하다는 구조로 전체 단락을 닫습니다.

묵상

지금 견해 고집의 뿌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몸에 안도·불안·아무 반응 없음 중 무엇을 남기나요? 앞으로 무엇을 실천해야 한다고 답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 부재의 말이 숨과 자세에 남긴 한 반응만 볼까요, 아니면 넘어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