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아끼는 마음으로 풀려나면 미움에서 벗어난다

자애에 의한 마음의 해탈을 일곱 방식으로 충분히 닦았는데도 악의가 마음을 사로잡는 일은 불가능하며, 자애가 바로 악의에서 벗어남임을 밝힘

“벗들이여, 자애에 의한 마음의 해탈을 닦고 많이 익히며, 수레와 토대로 삼고 굳게 유지하고 숙달하여 잘 실행했는데도 악의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채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여지가 없으며, 그럴 수 없습니다. 벗들이여, 자애에 의한 마음의 해탈이 바로 악의에서 벗어남이기 때문입니다.”

Aṭṭhānametaṁ, āvuso, anavakāso, yaṁ mettāya cetovimuttiyā bhāvitāya bahulīkatāya yānīkatāya vatthukatāya anuṭṭhitāya paricitāya susamāraddhāya. Atha ca panassa byāpādo cittaṁ pariyādāya ṭhassati, netaṁ ṭhānaṁ vijjati. Nissaraṇaṁ hetaṁ, āvuso, byāpādassa, yadidaṁ mettā cetovimuttī’ti.

디가 니까야 DN 33 상기띠경 (Saṅgītisutta)

배경

직접 반론의 근거가 불가능 판정과 벗어남의 관계로 완결됩니다. 자애의 마음 해탈을 닦음·많이 익힘·수레로 삼음·토대로 삼음·굳게 유지함·숙달함·잘 실행함이라는 일곱 조건을 빠짐없이 다시 제시합니다. 그 조건에서 악의가 마음을 사로잡아 머무는 일은 불가능하고, 여지가 없으며, 그럴 수 없다는 세 겹의 부정으로 차단됩니다. 마지막 인과는 자애의 마음 해탈이 바로 악의에서 벗어남이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힙니다.

묵상

“자애가 악의에서 벗어남이다”는 말을 들을 때 마음에 넓어짐·답답함·아무 반응 없음 중 무엇이 나타나나요? 자애를 실현했는지 묻는 것이 아니에요. 그 문장이 몸에 남긴 한 반응만 살펴볼까요, 아니면 그냥 지나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