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충분히 길렀는데도 해치려 한다는 말

연민에 의한 마음의 해탈을 충분히 닦았지만 해치려는 마음이 아직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는 둘째 가정

“또 벗들이여, 여기 한 수행자가 이렇게 말한다고 합시다. ‘나는 연민에 의한 마음의 해탈을 닦았고 많이 익혔으며, 수레와 토대로 삼고 굳게 유지하고 숙달하여 잘 실행했습니다. 그런데도 해치려는 마음이 내 마음을 사로잡은 채 있습니다.’”

Idha panāvuso, bhikkhu evaṁ vadeyya: ‘karuṇā hi kho me cetovimutti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Atha ca pana me vihesā cittaṁ pariyādāya tiṭṭhatī’ti,

디가 니까야 DN 33 상기띠경 (Saṅgītisutta)

배경

첫째 벗어남의 요소가 자애와 악의의 관계를 완결한 뒤, 둘째는 연민과 해침의 관계를 같은 검증 구조로 엽니다. 연민의 마음 해탈을 닦고·많이 익히고·수레로 삼고·토대로 삼고·굳게 유지하고·숙달하고·잘 실행했다는 일곱 조건이 다시 빠짐없이 나옵니다. 그럼에도 해치려는 마음이 전체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주장을 세웁니다. 자애 사례와 변하는 두 부분은 닦는 대상과 벗어나야 할 상태뿐이며, 이후의 반론과 불가능 판정은 같은 순서로 이어집니다. 뒤의 같은 후렴은 앞서 온전히 제시된 문장을 그대로 되풀이하므로, 같은 말을 거듭 적지 않고 이 흐름을 이어 읽습니다.

묵상

연민과 해침이라는 두 말을 함께 들을 때 마음이 부드러워지거나 굳어지는 반응이 있나요? 연민을 잘 닦았는지, 해치려는 마음이 있는지 답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두 말 중 하나가 몸에 남긴 한 반응만 볼까요, 아니면 지나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