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징에 매이지 않는 마음을 닦았는데도 특징을 따라간다는 말

표상 없는 마음의 해탈을 일곱 방식으로 닦았다고 하면서도 의식이 표상을 따른다는 다섯째 주장을 전함

“그런데 벗들이여, 한 수행자가 이렇게 말한다고 합시다. ‘나는 표상 없는 마음의 해탈을 닦고 거듭 닦아 수레로 삼고 토대로 삼아 확립하고 익혀 잘 성취했습니다. 그런데도 내 의식은 표상을 따라갑니다.’”

Idha panāvuso, bhikkhu evaṁ vadeyya: ‘animittā hi kho me cetovimutti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Atha ca pana me nimittānusāri viññāṇaṁ hotī’ti.

디가 니까야 DN 33 상기띠경 (Saṅgītisutta)

배경

평정과 욕망의 사례가 끝난 뒤 다섯째 수행자의 말이 시작됩니다. 앞의 네 사례가 각각 마음의 해탈과 장애를 짝지었다면, 이번에는 표상 없는 마음의 해탈과 표상을 따르는 의식이 놓입니다. 수행자는 이 해탈을 닦고 거듭 닦으며 수레와 토대로 삼고, 확립하고 익혀 잘 성취했다고 일곱 표현을 모두 사용합니다. 그런데도 자기 의식이 표상을 따라간다고 말합니다. 표상 없음의 해탈을 일곱 방식으로 성취했다는 주장과 의식이 여전히 표상을 뒤따른다는 진술이 함께 성립할 수 있는지를 다음 교정이 판정합니다.

묵상

표상 없는 마음의 해탈과 의식이 표상을 따른다는 두 말을 들을 때, 지금 마음에는 어떤 반응이 먼저 나타나나요? 표상의 뜻을 서둘러 규정하거나 표상 없는 상태를 만들어 낼 필요는 없어요. 두 말 가운데 주의가 더 오래 머무는 하나를 살펴볼까요, 아니면 지금은 건너뛰고 싶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