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의 화살에서 벗어나는 자만의 뿌리 뽑음

두 자아 규정의 부재와 의심의 화살이 양립할 수 없음을 밝히고 ‘나는 있다’라는 자만의 뿌리 뽑음을 여섯째 벗어남으로 맺음

그에게 이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존자여. 그런 말은 마십시오. 세존을 잘못 전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전함은 좋지 않습니다. 세존은 그러실 리 없습니다. 벗들이여, ‘나는 있다’가 사라지고 ‘나는 이것이다’라고 여기지 않는데도 의심과 망설임의 화살이 마음을 사로잡아 머무는 것은 불가능하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벗들이여, 의심과 망설임의 화살에서 벗어남은 ‘나는 있다’라는 자만을 뿌리 뽑는 것입니다.”

So ‘mā hevan’tissa vacanīyo ‘māyasmā evaṁ avaca, mā bhagavantaṁ abbhācikkhi, na hi sādhu bhagavato abbhakkhānaṁ, na hi bhagavā evaṁ vadeyya. Aṭṭhānametaṁ, āvuso, anavakāso, yaṁ asmīti vigate ayamahamasmīti asamanupassato, atha ca panassa vicikicchākathaṅkathāsallaṁ cittaṁ pariyādāya ṭhassati, netaṁ ṭhānaṁ vijjati. Nissaraṇaṁ hetaṁ, āvuso, vicikicchākathaṅkathāsallassa, yadidaṁ asmimānasamugghāto’ti.

디가 니까야 DN 33 상기띠경 (Saṅgītisutta)

배경

마지막 주장에도 존자에게 그렇지 않다고 하고, 그런 말을 하지 말며 세존을 잘못 전하지 말라는 금지를 온전히 둡니다. 잘못 전함은 좋지 않고 세존께서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신다는 부정도 이어집니다. 첫 호격 뒤에는 “나는 있다”가 사라짐과 “나는 이것이다”라고 여기지 않음이라는 두 조건을 다시 밝히고, 그때 의심과 망설임의 화살이 마음을 지배하는 일은 불가능·여지 없음·그럴 수 없음으로 판정합니다. 둘째 호격 뒤의 결론은 그 화살에서 벗어남을 “나는 있다”라는 자만의 뿌리 뽑음과 대응시켜 여섯째 사례를 닫습니다.

묵상

‘나는 있다’라는 감각이나 자기 규정과 답을 정하지 못하는 의심·망설임이 함께 강해지는 듯한 순간이 있나요? 이 결론을 자신의 성취 상태로 판정하거나 자신을 없애려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두 반응 중 무엇이 먼저 몸에 나타나는지 살펴볼까요, 아니면 건너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