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실과 실천의 네 쌍

네 결실을 이룬 이와 그 결실을 닦는 이를 짝지은 뒤 게으름의 첫 조건을 엶

“수다원과 그 결실을 실현하려 닦는 이, 한 번 돌아올 이와 그 결실을 실현하려 닦는 이, 돌아오지 않을 이와 그 결실을 실현하려 닦는 이, 완성된 이와 완성을 실현하려 닦는 이입니다. 게으름의 여덟 근거입니다. 벗들이여, 첫째로 수행자에게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sotāpanno, sotāpattiphalasacchikiriyāya paṭipanno; sakadāgāmī, sakadāgāmiphalasacchikiriyāya paṭipanno; anāgāmī, anāgāmiphalasacchikiriyāya paṭipanno; arahā, arahattaphalasacchikiriyāya paṭipanno. Aṭṭha kusītavatthūni. Idhāvuso, bhikkhunā kammaṁ kātabbaṁ hoti. Tassa evaṁ hoti:

디가 니까야 DN 33 상기띠경 (Saṅgītisutta)

배경

공양받을 만한 여덟 사람은 네 단계마다 결실을 얻은 이와 그 결실을 향해 실천하는 이가 짝을 이룹니다. 아직 닦는 중인 사람도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어 사리뿟따는 사람의 성숙 단계를 말한 자리에서 노력을 늦추게 하는 여덟 가지 구실로 방향을 돌립니다. 첫 상황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생긴 때입니다. 일 자체가 게으름은 아니며, 그 일을 미리 떠올리는 생각이 수행할 힘을 어떻게 빼앗는지가 다음 문장에 드러납니다.

묵상

결과를 이룬 모습만 귀하게 여기고 그곳을 향해 닦는 과정을 작게 본 적이 있나요? 해야 할 일을 떠올리는 순간 실제 피로가 오기 전부터 쉬고 싶어진다면, 그 생각과 몸의 상태를 어떻게 구별해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