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발하여 충분히 먹었더니 몸이 콩 짐을 진 듯 무겁고 일하기에 알맞지 않으니 누워야겠다.’ 그는 누워서 노력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 이것이 여섯째 근거입니다. 또 벗들이여, 몸에 가벼운 병이 든 수행자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ahaṁ kho gāmaṁ vā nigamaṁ vā piṇḍāya caranto alatthaṁ lūkhassa vā paṇītassa vā bhojanassa yāvadatthaṁ pāripūriṁ, tassa me kāyo garuko akammañño, māsācitaṁ maññe, handāhaṁ nipajjāmī’ti. So nipajjati na vīriyaṁ ārabhati … idaṁ chaṭṭhaṁ kusītavatthu. Puna caparaṁ, āvuso, bhikkhuno uppanno hoti appamattako ābādho. Tassa evaṁ hoti:
디가 니까야 DN 33 상기띠경 (Saṅgītisutta)배경
배불리 먹은 수행자는 몸의 무거움을 콩을 잔뜩 실은 짐에 빗댑니다. 음식이 부족했던 다섯째 경우와 반대인데도 눕고 노력을 일으키지 않는 결말은 같습니다. 여섯째라는 순서가 확정된 뒤 일곱째 근거는 가벼운 병으로 넘어갑니다. 여기서 병은 꾸며 낸 것이 아니라 실제 조건입니다. 문제는 병이 있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가벼운 증상을 어떻게 해석하여 가능한 활동 전체를 미리 닫는가에 있습니다. 다음 문장은 누움이 몸에 이롭다는 생각을 구실로 삼습니다.
묵상
몸이 무겁거나 가벼운 증상이 있을 때 필요한 돌봄과 습관적인 미룸을 어떻게 함께 살필 수 있을까요? 무리하지 않을 선택권을 지키면서도, 현재 상태에서 안전하게 가능한 범위를 묻는다면 어떤 답이 떠오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