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말은 관습적 표현이다

아라한도 일인칭 표현을 쓰는지 묻는 신과 세상의 명칭으로 답하는 부처님의 첫 문답

“아라한이며 할 일을 마치고, 번뇌가 다하여 마지막 몸을 지닌 수행자도 ‘내가 말한다’고 말하고, ‘그들이 나에게 말한다’고도 말합니까?” “아라한이며 할 일을 마치고, 번뇌가 다하여 마지막 몸을 지닌 수행자도 ‘내가 말한다’고 말할 수 있고, ‘그들이 나에게 말한다’고도 말할 수 있느니라. 그는 세상에서 통용되는 명칭을 유익하게 알아, 단지 관습적 표현으로 말할 뿐이니라.”

“Yo hoti bhikkhu arahaṁ katāvī, Khīṇāsavo antimadehadhārī; Ahaṁ vadāmītipi so vadeyya, Mamaṁ vadantītipi so vadeyyā”ti. “Yo hoti bhikkhu arahaṁ katāvī, Khīṇāsavo antimadehadhārī; Ahaṁ vadāmītipi so vadeyya, Mamaṁ vadantītipi so vadeyya; Loke samaññaṁ kusalo viditvā, Vohāramattena so vohareyyā”ti.

상윳따 니까야 SN 1.25 아라한경 (Arahantasutta)

배경

Bilara root에는 화자 표시가 없지만, 이 경이 속한 신 상윳따의 모음 배치와 질문-답의 교대에 따라 한 신이 먼저 묻고 부처님이 답하는 문답으로 읽습니다. 신은 수행자를 아라한, 할 일을 마친 이, 번뇌가 다한 이, 마지막 몸을 지닌 이로 한정합니다. mamaṁ은 말의 대상을 “나에게”로 표시하고, vadanti의 3인칭 복수 어미는 드러나지 않은 복수 주어를 나타내므로 “그들이 나에게 말한다”로 옮겼습니다. 부처님은 네 한정과 두 표현을 생략 없이 되받아 모두 말할 수 있다고 답하십니다. samaññā는 세상에서 통용되는 명칭, vohāra는 표현이며, matta는 그 쓰임을 “단지”로 한정합니다. 이 첫 문답은 일인칭 말 자체와 자만을 구분하고, 다음 문답이 그 말과 자만의 관계를 다시 묻게 합니다.

묵상

오늘 “내가”라고 말했던 한 문장을 떠올릴 수 있나요? 그 말이 누가 말하고 행동했는지를 알려 주는 관습적 표현이었는지, 자신을 지키거나 드러내려는 반응도 함께 있었는지 살펴볼 수 있나요? 어느 쪽이라고 분명히 정해지지 않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