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들이여, 윤리적인 사람의 마음속 소원은 청정하기 때문에 이루어집니다. 또 벗들이여, 어떤 이는 수행자나 바라문에게 음식과 음료부터 … 침상과 거처와 등불까지 주고, 되돌아올 것을 기대합니다. 그는 ‘네 큰 왕의 신들은 오래 살고 아름다우며 행복이 많다’고 듣고, 죽은 뒤 그 신들의 무리에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Ijjhatāvuso, sīlavato cetopaṇidhi visuddhattā. Puna caparaṁ, āvuso, idhekacco dānaṁ deti samaṇassa vā brāhmaṇassa vā annaṁ pānaṁ …pe… seyyāvasathapadīpeyyaṁ. So yaṁ deti taṁ paccāsīsati. Tassa sutaṁ hoti: ‘cātumahārājikā devā dīghāyukā vaṇṇavanto sukhabahulā’ti. Tassa evaṁ hoti: ‘aho vatāhaṁ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cātumahārājikānaṁ devānaṁ sahabyataṁ upapajjeyyan’ti.
디가 니까야 DN 33 상기띠경 (Saṅgītisutta)배경
첫째 사례의 결론은 윤리적인 사람의 소원이 청정 때문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둘째 사례에서도 열 가지 생활 물품을 주고 보답을 기대하는 구조는 같지만, 바라보는 곳은 인간의 부유한 무리에서 네 큰 왕의 신들로 높아집니다. 그들이 오래 살고 아름다우며 행복이 많다는 말을 들은 사람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그 무리에 태어나기를 원합니다. 여덟 태어남은 보시만 나열하지 않고, 들은 정보와 반복해 기르는 소원이 다음 삶의 방향을 어떻게 정하는지 보여 줍니다.
묵상
다른 삶이 행복해 보인다는 말을 들을 때 무엇을 가장 부러워하나요? 오래 살고 아름다우며 많은 행복을 누리려는 마음과 지금의 베풂이 연결된다면, 그 연결을 어떻게 바라보고 싶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