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 생각을 정하고 굳히며 기릅니다. 더 높은 데까지 기르지 않고 낮은 것에 머문 그 생각은 그곳에 태어나게 합니다. 그러나 이는 윤리적인 이에게만 해당하고 비윤리적인 이에게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벗들이여, 윤리적인 사람의 마음속 소원은 청정하기 때문에 이루어집니다.”
So taṁ cittaṁ dahati, taṁ cittaṁ adhiṭṭhāti, taṁ cittaṁ bhāveti, tassa taṁ cittaṁ hīne vimuttaṁ uttari abhāvitaṁ tatrūpapattiyā saṁvattati. Tañca kho sīlavato vadāmi no dussīlassa. Ijjhatāvuso, sīlavato cetopaṇidhi visuddhattā.
디가 니까야 DN 33 상기띠경 (Saṅgītisutta)배경
남이 만든 것을 다스리는 신들의 무리를 향한 생각도 반복해서 정착시키면 그 태어남으로 이어집니다. 감각적 즐거움의 신들 가운데 높은 자리이지만, 사리뿟따는 여전히 더 높이 기르지 않고 낮은 곳에 풀려난 생각이라고 말합니다. 결과에는 다시 윤리적인 사람과 비윤리적인 사람의 명확한 대조가 붙으며, 윤리적인 사람의 소원은 청정 때문에 성취된다고 결론 냅니다. 주는 행위, 집중된 소원, 삶의 윤리가 함께 있어야 한다는 구조가 여러 세계를 지나도 바뀌지 않습니다.
묵상
오랫동안 한 방향을 생각하면 그 방향이 삶의 선택을 이끈다는 점을 어디에서 경험했나요? 원하는 결과만 선명히 그리는 일과 그 바람에 맞는 윤리적 조건을 오늘 갖추는 일은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