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의 매듭 없이 ‘나’라고 말하다

그 말이 자만에서 나오는지 되묻는 신과 모든 매듭이 사라졌다고 답하는 부처님의 최종 문답

“아라한이며 할 일을 마치고, 번뇌가 다하여 마지막 몸을 지닌 수행자가 자만에 다가가 ‘내가 말한다’고 말하고, ‘그들이 나에게 말한다’고도 말합니까?” “자만을 버린 이에게는 매듭이 없고, 자만의 매듭은 모두 흩어졌느니라. 그 지혜로운 이는 여김을 넘어섰으나, ‘내가 말한다’고 말할 수 있느니라. ‘그들이 나에게 말한다’고도 말할 수 있고, 세상에서 통용되는 명칭을 유익하게 알아, 단지 관습적 표현으로 말할 뿐이니라.”

“Yo hoti bhikkhu arahaṁ katāvī, Khīṇāsavo antimadehadhārī; Mānaṁ nu kho so upagamma bhikkhu, Ahaṁ vadāmītipi so vadeyya; Mamaṁ vadantītipi so vadeyyā”ti. “Pahīnamānassa na santi ganthā, Vidhūpitā mānaganthassa sabbe; Sa vītivatto maññataṁ sumedho, Ahaṁ vadāmītipi so vadeyya. Mamaṁ vadantītipi so vadeyya, Loke samaññaṁ kusalo viditvā; Vohāramattena so vohareyyā”ti.

상윳따 니까야 SN 1.25 아라한경 (Arahantasutta)

배경

첫 답을 들은 신은 같은 네 한정을 다시 온전히 말한 뒤, 두 표현을 말할 때 그 수행자가 자만에 다가가는지를 좁혀 묻습니다. upagamma는 “다가가서”라는 문법 역할을 하므로 질문의 두 인용 표현 모두에 걸리게 옮겼습니다. 부처님은 자만을 버린 이에게 매듭이 “없고”, 자만의 매듭은 “모두” 흩어졌다고 두 겹으로 답하십니다. maññatā는 대상을 특정하지 않은 “여김”이므로 경험을 ‘나’ 중심으로 여기는 작용이라고 범위를 좁히지 않았습니다. 그 지혜로운 이는 여김을 넘어섰어도 두 표현을 쓸 수 있고, 세상에서 통용되는 명칭을 알아 단지 관습적 표현으로 말합니다. 수행의 초점은 ‘나’라는 낱말 금지가 아니라 그 말과 함께 자만의 매듭을 짓는지 아는 데 있습니다.

묵상

최근 한 말 가운데 문장은 이미 끝났는데도 마음속에서 계속 방어하거나 비교하게 만든 것이 있나요? 그 매듭이 “나”라는 단어 자체에서 왔는지, 그 말에 붙인 의미에서 왔는지 살펴볼 수 있나요? 지금은 어느 쪽도 분명하지 않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