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서 형상을 인식하며 밖의 한정 없이 크고 아름답거나 추한 형상들을 보고, 통달하여 ‘나는 알고 본다’고 인식합니다. 이것이 둘째 영역입니다. 안에서 형상을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의 작고 아름답거나 추한 형상들을 보고, 통달하여 ‘나는 알고 본다’고 인식합니다. 이것이 셋째 영역입니다.”
Ajjhattaṁ 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appamāṇāni suvaṇṇadubbaṇṇāni,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evaṁsaññī hoti. Idaṁ dutiyaṁ abhibhāyatanaṁ. Ajjhattaṁ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parittāni suvaṇṇadubbaṇṇāni,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ṁsaññī hoti. Idaṁ tatiyaṁ abhibhāyatanaṁ.
디가 니까야 DN 33 상기띠경 (Saṅgītisutta)배경
둘째 영역은 첫째와 마찬가지로 안에 형상 인식이 있지만, 밖에서 보는 형상이 제한되지 않는다는 점이 다릅니다. 아름답고 추한 양쪽을 통달하며 알고 본다는 결론은 같습니다. 셋째 영역에서는 안의 조건이 바뀌어 형상 인식이 없고, 밖의 대상은 다시 제한된 범위입니다. 앞의 두 영역과 교차해 보면 안의 형상 인식 유무와 밖의 형상 범위가 각각 독립된 축을 이룹니다. 감각적 평가를 없애기보다 대상을 압도당하지 않고 분명히 아는 훈련입니다.
묵상
대상의 크기나 강도가 커질수록 아름답다거나 추하다는 판단도 더 강해지나요? 안에서 생긴 이미지와 밖에서 마주친 대상을 구분해 본다면, 지금의 반응을 조금 더 분명히 아는 데 어떤 도움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