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벗들이여, 세상에 아라한이며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여래가 나타납니다. 평온으로 이끌고, 완전한 소멸로 이끌며, 깨달음으로 이끄는, 잘 가신 분께서 밝히신 가르침이 설해집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동물 세계에 태어났습니다.”
Puna caparaṁ, āvuso, tathāgato ca loke uppanno hoti arahaṁ sammāsambuddho, dhammo ca desiyati opasamiko parinibbāniko sambodhagāmī sugatappavedito. Ayañca puggalo tiracchānayoniṁ upapanno hoti.
디가 니까야 DN 33 상기띠경 (Saṅgītisutta)배경
둘째 경우도 여래와 가르침을 짧은 지시어로 대신하지 않고 모든 자격과 특징을 다시 말합니다. 세상에 나타난 여래는 아라한이고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입니다. 설해지는 가르침은 평온으로 이끌고, 완전한 소멸로 이끌며, 깨달음으로 이끌고, 잘 가신 분께서 밝히신 것입니다. 첫째 경우와 달라지는 것은 그 사람이 태어난 자리로, 여기서는 동물 세계입니다. 같은 좋은 조건을 온전히 되풀이함으로써 두 기회 상실의 차이가 가르침이 아니라 존재의 자리에서 생긴다는 점이 분명해집니다.
묵상
둘째 경우에도 여래의 자격과 가르침의 네 특징을 한 번 더 전부 되풀이한 데에는 어떤 뜻이 있을까요? 지옥과 동물 세계를 비교해 판단할 필요는 없어요. 같은 조건과 달라진 한 조건을 구별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