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수행의 삶을 살 기회를 잃는 여섯째 때입니다. 또 여래가 세상에 나타나 가르침을 설하지만 … 어떤 이는 중심 지역에 태어나고도 그릇된 견해와 뒤틀린 관점을 지닙니다.”
Ayaṁ chaṭṭho akkhaṇo asamayo brahmacariyavāsāya. Puna caparaṁ …pe… majjhimesu janapadesu paccājāto hoti. So ca hoti micchādiṭṭhiko viparītadassano:
디가 니까야 DN 33 상기띠경 (Saṅgītisutta)배경
남성 수행자와 비구니와 남녀 재가 제자가 찾아가지 않는 변방의 태어남이 여섯째 기회 상실로 확정됩니다. 일곱째에서는 정반대로 가르침이 유통되는 중심 지역에 태어납니다. 지리와 공동체의 접근성은 갖추었지만, 그 사람의 견해가 그릇되고 보는 방향이 뒤틀려 있습니다. 외부 조건이 충분해도 받아들이는 관점이 닫혀 있으면 수행 기회를 잃을 수 있다는 대조입니다. 다음 문장은 보시와 행위의 결과부터 부모와 다른 세계, 직접 아는 수행자의 가능성까지 열 가지 부정을 펼칩니다.
묵상
배울 환경이 충분한데도 이미 굳힌 관점 때문에 듣지 못한 적이 있나요? 자신의 믿음을 억지로 버리지 않더라도, 무엇을 부정하고 있는지 정확히 살피는 일이 새로운 이해에 어떤 여지를 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