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 가르침이 없는 아홉째 기회 상실

지혜롭고 중심지에 태어나도 여래와 가르침이 없으면 수행 기회를 잃음을 밝힘

“잘 가신 분이 밝힌 평온과 완전한 소멸과 깨달음으로 이끄는 가르침도 설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중심 지역에 태어나 지혜롭고 총명하며, 좋은 말과 나쁜 말의 뜻을 가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아홉째 기회 상실입니다. 이제 점차 깊어지는 아홉 머묾입니다.”

dhammo ca na desiyati opasamiko parinibbāniko sambodhagāmī sugatappavedito. Ayañca puggalo majjhimesu janapadesu paccājāto hoti, so ca hoti paññavā ajaḷo aneḷamūgo, paṭibalo subhāsitadubbhāsitānamatthamaññātuṁ. Ayaṁ navamo akkhaṇo asamayo brahmacariyavāsāya. Nava anupubbavihārā.

디가 니까야 DN 33 상기띠경 (Saṅgītisutta)

배경

아홉째 경우의 사람은 앞의 여덟째와 달리 지혜롭고 총명하며 좋은 말과 나쁜 말의 뜻을 분별할 수 있고, 가르침이 오갈 중심 지역에도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바르게 깨달은 여래가 출현하지 않았기에 평온과 완전한 소멸과 깨달음으로 이끄는 가르침 자체가 설해지지 않습니다. 개인 조건이 좋아도 시대의 조건이 없으면 수행의 결정적 기회를 잃는다는 대조입니다. 아홉 상실을 마친 뒤, 실제 수행이 점차 깊어지는 네 선정과 네 무형의 영역, 인식과 느낌의 멎음을 펼칩니다.

묵상

능력과 환경이 갖추어져도 안내할 가르침이 없다면 어떤 한계가 생길까요? 지금 만날 수 있는 가르침과 스승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으면서도 귀하게 검토하고 배우려면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