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겹 가사 위에 사자처럼 눕다

마음챙김을 유지한 채 사자 자세로 눕자 마라가 무기력과 취기를 들먹이며 묻습니다.

세존께서는 가사를 네 겹으로 접어 펴고, 오른쪽 옆구리를 대어 사자 자세를 취하셨다. 발 위에 발을 포갠 채, 알아차리고 분명히 아셨다. 그러자 악한 마라가 세존께 다가가 게송으로 말했다. “무기력해서 누워 있는 것인가, 아니면 시에 취한 것인가? 그대에게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지 않은가? 홀로 한적한 잠자리에서, 졸린 얼굴로 어찌 이처럼 잠자는가?”

Atha kho bhagavā catugguṇaṁ saṅghāṭiṁ paññapetvā dakkhiṇena passena sīhaseyyaṁ kappesi pāde pādaṁ accādhāya sato sampajāno. Atha kho māro pāpim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gāthāya ajjhabhāsi: “Mandiyā nu kho sesi udāhu kāveyyamatto, Atthā nu te sampacurā na santi; Eko vivitte sayanāsanamhi, Niddāmukho kimidaṁ soppase vā”ti.

상윳따 니까야 SN 4.13 나무조각경 (Sakalikasutta)

배경

첫 카드에서 몸의 느낌을 견딘 뒤, 세존은 가사를 정확히 네 겹으로 접어 펴고 오른쪽 옆구리를 대어 사자 자세를 취합니다. 이어 발 위에 발을 포갠 채 마음챙기고 분명히 알아차립니다. 화자가 악한 마라로 바뀌자, 마라는 무기력 때문인지 시에 취했는지 두 선택지를 던진 뒤,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지 않은지와 한적한 곳에서 왜 잠드는지를 묻습니다. 네 겹·오른쪽·사자 자세·두 발의 위치·마음챙김이라는 원문의 순서와 마라의 물음을 같은 장면에 보존했습니다. 이 대목은 누움 자체와 마라가 붙인 무기력이라는 해석을 구별하게 합니다.

묵상

몸을 쉬게 하면서도 마음챙김과 분명한 앎이 함께할 수 있다는 장면은 어떻게 들리나요? 쉬는 자신을 곧 무기력하다고 부르는 반응이 있다면, 지금 그것을 바꿔야 할 필요는 없어요. 다만 자세와 그 자세에 붙는 판단이 같은 것인지 잠시 살펴보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