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괴로운 느낌에 닿으면 그것에 맞서느니라. 괴로운 느낌에 맞서는 그에게 괴로운 느낌을 향한 성냄의 잠재 성향이 자리 잡느니라. 그는 괴로운 느낌에 닿으면 감각적 즐거움을 반기느니라. 왜인가?
수행자들이여, 배우지 못한 보통 사람은 감각적 즐거움 말고 괴로운 느낌에서 벗어날 길을 모르기 때문이니라. 그것을 반기는 그에게 즐거운 느낌을 향한 탐욕의 잠재 성향이 자리 잡느니라.”
Tassāyeva kho pana dukkhāya vedanāya phuṭṭho samāno paṭighavā hoti. Tamenaṁ dukkhāya vedanāya paṭighavantaṁ, yo dukkhāya vedanāya paṭighānusayo, so anuseti. So dukkhāya vedanāya phuṭṭho samāno kāmasukhaṁ abhinandati. Taṁ kissa hetu? Na hi so, bhikkhave, pajānāti assutavā puthujjano aññatra kāmasukhā dukkhāya vedanāya nissaraṇaṁ, tassa kāmasukhañca abhinandato, yo sukhāya vedanāya rāgānusayo, so anuseti.
상윳따 니까야 SN 36.6 두 화살경 (Sallasutta) 배경
두 화살의 비유 뒤에는 괴로운 느낌에 맞서는 반응에서 성냄의 잠재 성향이 자리 잡는 과정이 나옵니다. 이어 감각적 즐거움을 반기고, 다른 벗어남을 알지 못한다는 원인 때문에 즐거운 느낌을 향한 탐욕의 잠재 성향이 자리 잡습니다. 원문은 맞섬·감각적 즐거움·벗어남을 모름·탐욕이라는 인과를 순서대로 잇습니다. 즐거움 자체를 탓하기보다 괴로움의 유일한 도피처로 붙드는 조건을 밝히는 대목입니다.
묵상
힘든 느낌을 피하려 할 때 내가 자동으로 찾는 즐거움이나 주의 돌리기는 무엇인가요? 그것을 당장 끊으라는 질문이 아니에요. 잠깐 편안해지는 일과 실제로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일이 같은지 차분히 구별해 볼 수 있을까요?
“그는 느낌의 일어남과 사라짐,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느니라. 그래서 덤덤한 느낌을 향한 무명의 잠재 성향이 자리 잡느니라. 그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덤덤한 느낌을 모두 얽매인 채 겪느니라.
수행자들이여, 그를 태어남·늙음·죽음과 슬픔·비탄·아픔·근심·절망에 얽매이고, 괴로움에 얽매인 배우지 못한 보통 사람이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So tāsaṁ vedanānaṁ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ṁ nappajānāti. Tassa tāsaṁ vedanānaṁ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ṁ appajānato, yo adukkhamasukhāya vedanāya avijjānusayo, so anuseti. So sukhañce vedanaṁ vedayati, saññutto naṁ vedayati. Dukkhañce vedanaṁ vedayati, saññutto naṁ vedayati. Adukkhamasukhañce vedanaṁ vedayati, saññutto naṁ vedayati. Ayaṁ vuccati, bhikkhave, ‘assutavā puthujjano saññutto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saññutto dukkhasmā’ti vadāmi.
상윳따 니까야 SN 36.6 두 화살경 (Sallasutta) 배경
성냄과 탐욕의 잠재 성향을 밝힌 뒤, 느낌의 일어남·사라짐·달콤함·위험·벗어남이라는 다섯 측면을 알지 못하는 상태를 설명합니다. 그 때문에 덤덤한 느낌을 향한 무명의 잠재 성향이 자리 잡고, 즐거움·괴로움·덤덤함의 세 느낌을 모두 얽매인 채 겪습니다. 끝에서는 태어남·늙음·죽음과 슬픔·비탄·아픔·근심·절망, 그리고 괴로움에 얽매였다고 세존께서 말합니다. 세 잠재 성향의 결과를 산문의 첫 절에서 마치는 결론입니다.
묵상
강하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덤덤한 느낌에서도 습관적인 반응이 이어지고 있나요? 특별한 답이나 깊은 분석을 요구하지 않아요. 오늘 한 순간의 느낌이 생기고 달라지고 사라지는 모습 가운데 알아차릴 수 있는 한 부분만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