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막 바르게 깨달으신 뒤 우루웰라 네란자라강 기슭, 염소치기의 반얀나무 아래에 머무셨다. 그때 홀로 물러나 계시던 세존의 마음에 이러한 생각이 일어났다. “내가 깨달은 이 가르침은 깊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뛰어나며, 사유의 영역을 넘고, 미묘하여 지혜로운 이라야 알 수 있느니라.”
Evaṁ me sutaṁ—ekaṁ samayaṁ bhagavā uruvelāyaṁ viharati najjā nerañjarāya tīre ajapālanigrodhamūle paṭhamābhisambuddho. Atha kho bhagavato rahogatassa paṭisallīnassa evaṁ cetaso parivitakko udapādi: “adhigato kho myāyaṁ dhammo gambhīro duddaso duranubodho santo paṇīto atakkāvacaro nipuṇo paṇḍitavedanīyo.
상윳따 니까야 SN 6.1 범천의 청원경 (Brahmāyācanasutta)배경
전승자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고 시작한 뒤, 막 바르게 깨달은 세존께서 우루웰라 네란자라강 기슭의 반얀나무 아래 머문 장면을 놓습니다. 홀로 물러난 세존의 생각 속에서 가르침은 깊음·보기 어려움·깨닫기 어려움·고요함·뛰어남·사유의 영역을 넘어섬·미묘함·지혜로운 이가 앎으로 열거됩니다. 이 어려움의 인식은 뒤에 이어질 설법의 망설임을 여는 근거이지, 아직 최종 결정을 말하는 대목은 아닙니다.
묵상
깊음, 고요함, 미묘함처럼 가르침을 나타내는 말들 가운데 어떤 표현이 가장 오래 머무나요? 이해의 정도를 평가할 필요는 없어요. 아직 결정이 내려지지 않은 첫 생각의 결을 천천히 읽어 보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