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는 자리를 깨닫고 가르침을 결심하다

죽지 않는 자리를 깨닫고 가르침을 결심하다을 다루는 대목을 원문 순서에 따라 짧은 카드로 나누어 읽습니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태어남·늙음·병듦·죽음·슬픔·오염을 겪는 존재로서 각각의 위험을 보았다. 그리고 태어나지 않고 늙지 않으며 병들지 않고 죽지 않고 슬픔과 오염이 없는 것, 속박에서 벗어난 최상의 안온인 열반을 찾아 마침내 그것을 얻었다.’

So kho ahaṁ, bhikkhave, attanā jātidhammo samāno jātidhamme ādīnavaṁ viditvā ajātaṁ anuttaraṁ yogakkhemaṁ nibbānaṁ pariyesamāno ajātaṁ anuttaraṁ yogakkhemaṁ nibbānaṁ ajjhagamaṁ, attanā jarādhammo samāno jarādhamme ādīnavaṁ viditvā ajaraṁ anuttaraṁ yogakkhemaṁ nibbānaṁ pariyesamāno ajaraṁ anuttaraṁ yogakkhemaṁ nibbānaṁ ajjhagamaṁ, attanā byādhidhammo samāno byādhidhamme ādīnavaṁ viditvā abyādhiṁ anuttaraṁ yogakkhemaṁ nibbānaṁ pariyesamāno abyādhiṁ anuttaraṁ yogakkhemaṁ nibbānaṁ ajjhagamaṁ, attanā maraṇadhammo samāno maraṇadhamme ādīnavaṁ viditvā amataṁ anuttaraṁ yogakkhemaṁ nibbānaṁ ajjhagamaṁ, attanā sokadhammo samāno sokadhamme ādīnavaṁ viditvā asokaṁ anuttaraṁ yogakkhemaṁ nibbānaṁ ajjhagamaṁ, attanā saṅkilesadhammo samāno saṅkilesadhamme ādīnavaṁ viditvā asaṅkiliṭṭhaṁ anuttaraṁ yogakkhemaṁ nibbānaṁ pariyesamāno asaṅkiliṭṭhaṁ anuttaraṁ yogakkhemaṁ nibbānaṁ ajjhagamaṁ.

맛지마 니까야 MN 26 성구경 (Pāsarāsisutta)

배경

이 카드는 「죽지 않는 자리를 깨닫고 가르침을 결심하다」 대목의 1/18번째이며, 새 장면이나 논증을 여는 자리입니다. 태어남·늙음·병듦·죽음·슬픔·오염을 넘어선 열반을 스스로 얻은 뒤, 가르침이 깊고 사람들이 집착을 즐기기에 설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을 염려합니다. 사함빠띠 범천의 청과 연꽃의 비유를 거쳐 서로 다른 능력을 지닌 존재들을 보고 가르치기로 결심하지만, 먼저 떠올린 두 스승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여섯 소멸을 넘어 열반을 직접 얻음’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고귀한 구도가 단순한 대상의 포기나 높은 명상 경지에 머무는 일로 축소되지 않습니다.

묵상

‘여섯 소멸을 넘어 열반을 직접 얻음’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나의 해탈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며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라는 앎과 봄이 생겼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이 가르침이 깊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려우며 고요하고 뛰어나고 추론을 넘고 미묘하여 현자가 알 수 있지만, 사람들은 집착을 즐기고 좋아하며 기뻐한다고 생각했다.

Ñāṇañca pana me dassanaṁ udapādi: ‘akuppā me vimutti, ayamantimā jāti, natthi dāni punabbhavo’ti. Tassa mayhaṁ, bhikkhave, etadahosi: ‘adhigato kho myāyaṁ dhammo gambhīro duddaso duranubodho santo paṇīto atakkāvacaro nipuṇo paṇḍitavedanīyo. Ālayarāmā kho panāyaṁ pajā ālayaratā ālayasammuditā.

맛지마 니까야 MN 26 성구경 (Pāsarāsisutta)

배경

이 카드는 「죽지 않는 자리를 깨닫고 가르침을 결심하다」 대목의 2/18번째이며, 앞의 조건을 더 구체적인 사례나 결과로 이어 가는 자리입니다. 태어남·늙음·병듦·죽음·슬픔·오염을 넘어선 열반을 스스로 얻은 뒤, 가르침이 깊고 사람들이 집착을 즐기기에 설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을 염려합니다. 사함빠띠 범천의 청과 연꽃의 비유를 거쳐 서로 다른 능력을 지닌 존재들을 보고 가르치기로 결심하지만, 먼저 떠올린 두 스승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흔들리지 않는 해탈의 앎과 가르침의 깊이’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고귀한 구도가 단순한 대상의 포기나 높은 명상 경지에 머무는 일로 축소되지 않습니다.

묵상

‘흔들리지 않는 해탈의 앎과 가르침의 깊이’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집착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기 어려운 것은 이것이다. 곧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조건성과 조건에 의한 발생이다. 모든 형성의 고요, 모든 의지처를 놓아 버림, 갈애의 소멸, 탐욕이 빛바램, 소멸, 열반도 보기 어렵다. 내가 가르쳐도 남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에게 피로와 곤란만 되리라.’

Ālayarāmāya kho pana pajāya ālayaratāya ālayasammuditāya duddasaṁ idaṁ ṭhānaṁ yadidaṁ—idappaccayatā paṭiccasamuppādo. Idampi kho ṭhānaṁ duddasaṁ yadidaṁ—sabbasaṅkhārasamatho sabbūpadhipaṭinissaggo taṇhākkhayo virāgo nirodho nibbānaṁ. Ahañceva kho pana dhammaṁ deseyyaṁ, pare ca me na ājāneyyuṁ, so mamassa kilamatho, sā mamassa vihesā’ti.

맛지마 니까야 MN 26 성구경 (Pāsarāsisutta)

배경

이 카드는 「죽지 않는 자리를 깨닫고 가르침을 결심하다」 대목의 3/18번째이며, 앞의 조건을 더 구체적인 사례나 결과로 이어 가는 자리입니다. 태어남·늙음·병듦·죽음·슬픔·오염을 넘어선 열반을 스스로 얻은 뒤, 가르침이 깊고 사람들이 집착을 즐기기에 설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을 염려합니다. 사함빠띠 범천의 청과 연꽃의 비유를 거쳐 서로 다른 능력을 지닌 존재들을 보고 가르치기로 결심하지만, 먼저 떠올린 두 스승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조건에 의한 발생과 열반을 보기 어려운 까닭’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고귀한 구도가 단순한 대상의 포기나 높은 명상 경지에 머무는 일로 축소되지 않습니다.

묵상

‘조건에 의한 발생과 열반을 보기 어려운 까닭’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수행자들이여, 전에 듣지 못했던 이 평범한 게송들이 내게 떠올랐다. “힘겹게 얻은 것을 이제 드러내어 무엇하랴. 탐욕과 성냄에 사로잡힌 이들은 이 가르침을 쉽게 깨닫지 못하리라.”

Apissu maṁ, bhikkhave, imā anacchariyā gāthāyo paṭibhaṁsu pubbe assutapubbā: ‘Kicchena me adhigataṁ, halaṁ dāni pakāsituṁ; Rāgadosaparetehi, nāyaṁ dhammo susambudho.

맛지마 니까야 MN 26 성구경 (Pāsarāsisutta)

배경

이 카드는 「죽지 않는 자리를 깨닫고 가르침을 결심하다」 대목의 4/18번째이며, 앞의 조건을 더 구체적인 사례나 결과로 이어 가는 자리입니다. 태어남·늙음·병듦·죽음·슬픔·오염을 넘어선 열반을 스스로 얻은 뒤, 가르침이 깊고 사람들이 집착을 즐기기에 설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을 염려합니다. 사함빠띠 범천의 청과 연꽃의 비유를 거쳐 서로 다른 능력을 지닌 존재들을 보고 가르치기로 결심하지만, 먼저 떠올린 두 스승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탐욕과 성냄에 물든 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가르침’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고귀한 구도가 단순한 대상의 포기나 높은 명상 경지에 머무는 일로 축소되지 않습니다.

묵상

‘탐욕과 성냄에 물든 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가르침’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흐름을 거슬러가고 미묘하며 깊고 보기 어렵고 섬세하니, 탐욕에 물든 이들은 어둠의 덩어리에 덮여 보지 못하리라.” 수행자들이여, 이렇게 살피자 내 마음은 가르침을 설하기보다 애쓰지 않는 쪽으로 기울었다.

Paṭisotagāmiṁ nipuṇaṁ, gambhīraṁ duddasaṁ aṇuṁ; Rāgarattā na dakkhanti, tamokhandhena āvuṭā’ti. Itiha me, bhikkhave, paṭisañcikkhato appossukkatāya cittaṁ namati, no dhammadesanāya.

맛지마 니까야 MN 26 성구경 (Pāsarāsisutta)

배경

이 카드는 「죽지 않는 자리를 깨닫고 가르침을 결심하다」 대목의 5/18번째이며, 앞의 조건을 더 구체적인 사례나 결과로 이어 가는 자리입니다. 태어남·늙음·병듦·죽음·슬픔·오염을 넘어선 열반을 스스로 얻은 뒤, 가르침이 깊고 사람들이 집착을 즐기기에 설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을 염려합니다. 사함빠띠 범천의 청과 연꽃의 비유를 거쳐 서로 다른 능력을 지닌 존재들을 보고 가르치기로 결심하지만, 먼저 떠올린 두 스승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흐름을 거스르는 가르침 앞에서 설법을 망설임’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고귀한 구도가 단순한 대상의 포기나 높은 명상 경지에 머무는 일로 축소되지 않습니다.

묵상

‘흐름을 거스르는 가르침 앞에서 설법을 망설임’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수행자들이여, 사함빠띠 범천은 내 마음의 생각을 알고 이렇게 여겼다. “참으로 세상은 사라지겠구나, 참으로 세상은 무너지겠구나. 여래·아라한·완전히 깨달은 분의 마음이 가르침을 설하기보다 애쓰지 않는 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이다.”

Atha kho, bhikkhave, brahmuno sahampatissa mama cetasā cetoparivitakkamaññāya etadahosi: ‘nassati vata bho loko, vinassati vata bho loko, yatra hi nāma tathāgatassa arahato sammāsambuddhassa appossukkatāya cittaṁ namati, no dhammadesanāyā’ti.

맛지마 니까야 MN 26 성구경 (Pāsarāsisutta)

배경

이 카드는 「죽지 않는 자리를 깨닫고 가르침을 결심하다」 대목의 6/18번째이며, 앞의 조건을 더 구체적인 사례나 결과로 이어 가는 자리입니다. 태어남·늙음·병듦·죽음·슬픔·오염을 넘어선 열반을 스스로 얻은 뒤, 가르침이 깊고 사람들이 집착을 즐기기에 설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을 염려합니다. 사함빠띠 범천의 청과 연꽃의 비유를 거쳐 서로 다른 능력을 지닌 존재들을 보고 가르치기로 결심하지만, 먼저 떠올린 두 스승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세상이 가르침을 잃을까 염려한 사함빠띠 범천’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고귀한 구도가 단순한 대상의 포기나 높은 명상 경지에 머무는 일로 축소되지 않습니다.

묵상

‘세상이 가르침을 잃을까 염려한 사함빠띠 범천’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수행자들이여, 사함빠띠 범천은 힘센 사람이 굽힌 팔을 펴거나 편 팔을 굽히듯 범천 세계에서 사라져 내 앞에 나타났다. 수행자들이여, 그는 윗옷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합장하여 말했다. “세존이시여, 가르침을 설해 주십시오. 잘 가신 분께서는 가르침을 설해 주십시오.”

Atha kho, bhikkhave, brahmā sahampati—seyyathāpi nāma balavā puriso samiñjitaṁ vā bāhaṁ pasāreyya, pasāritaṁ vā bāhaṁ samiñjeyya; evameva—brahmaloke antarahito mama purato pāturahosi. Atha kho, bhikkhave, brahmā sahampati ekaṁsaṁ uttarāsaṅgaṁ karitvā yenāhaṁ tenañjaliṁ paṇāmetvā maṁ etadavoca: ‘desetu, bhante, bhagavā dhammaṁ, desetu sugato dhammaṁ.

맛지마 니까야 MN 26 성구경 (Pāsarāsi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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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는 「죽지 않는 자리를 깨닫고 가르침을 결심하다」 대목의 7/18번째이며, 앞의 조건을 더 구체적인 사례나 결과로 이어 가는 자리입니다. 태어남·늙음·병듦·죽음·슬픔·오염을 넘어선 열반을 스스로 얻은 뒤, 가르침이 깊고 사람들이 집착을 즐기기에 설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을 염려합니다. 사함빠띠 범천의 청과 연꽃의 비유를 거쳐 서로 다른 능력을 지닌 존재들을 보고 가르치기로 결심하지만, 먼저 떠올린 두 스승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세존 앞에 나타나 가르침을 청한 범천’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고귀한 구도가 단순한 대상의 포기나 높은 명상 경지에 머무는 일로 축소되지 않습니다.

묵상

‘세존 앞에 나타나 가르침을 청한 범천’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눈에 먼지가 적은 존재들이 있습니다. 가르침을 듣지 못하면 쇠퇴하지만 가르침을 이해할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수행자들이여, 사함빠띠 범천은 이렇게 말하고 다시 게송을 읊었다. “마가다에 예전에 때 묻은 이들이 생각한 깨끗하지 못한 가르침이 나타났으니, 죽지 않음의 문을 여십시오. 때 없는 분이 깨달은 가르침을 듣게 하십시오.”

Santi sattā apparajakkhajātikā, assavanatā dhammassa parihāyanti. Bhavissanti dhammassa aññātāro’ti. Idamavoca, bhikkhave, brahmā sahampati. Idaṁ vatvā athāparaṁ etadavoca: ‘Pāturahosi magadhesu pubbe, Dhammo asuddho samalehi cintito; Apāpuretaṁ amatassa dvāraṁ, Suṇantu dhammaṁ vimalenānubuddhaṁ.

맛지마 니까야 MN 26 성구경 (Pāsarāsi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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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는 「죽지 않는 자리를 깨닫고 가르침을 결심하다」 대목의 8/18번째이며, 앞의 조건을 더 구체적인 사례나 결과로 이어 가는 자리입니다. 태어남·늙음·병듦·죽음·슬픔·오염을 넘어선 열반을 스스로 얻은 뒤, 가르침이 깊고 사람들이 집착을 즐기기에 설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을 염려합니다. 사함빠띠 범천의 청과 연꽃의 비유를 거쳐 서로 다른 능력을 지닌 존재들을 보고 가르치기로 결심하지만, 먼저 떠올린 두 스승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눈에 먼지가 적은 존재와 죽지 않음의 문’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고귀한 구도가 단순한 대상의 포기나 높은 명상 경지에 머무는 일로 축소되지 않습니다.

묵상

‘눈에 먼지가 적은 존재와 죽지 않음의 문’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바위산 꼭대기에 선 사람이 사방의 사람들을 바라보듯, 지혜로운 분이여, 가르침으로 된 누각에 올라 사방을 보는 눈으로 바라보십시오. 슬픔을 벗어난 분이여, 슬픔에 빠지고 태어남과 늙음에 짓눌린 사람들을 굽어보십시오.”

Sele yathā pabbatamuddhaniṭṭhito, Yathāpi passe janataṁ samantato; Tathūpamaṁ dhammamayaṁ sumedha, Pāsādamāruyha samantacakkhu; Sokāvatiṇṇaṁ janatamapetasoko, Avekkhassu jātijarābhibhūtaṁ.

맛지마 니까야 MN 26 성구경 (Pāsarāsi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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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는 「죽지 않는 자리를 깨닫고 가르침을 결심하다」 대목의 9/18번째이며, 앞의 조건을 더 구체적인 사례나 결과로 이어 가는 자리입니다. 태어남·늙음·병듦·죽음·슬픔·오염을 넘어선 열반을 스스로 얻은 뒤, 가르침이 깊고 사람들이 집착을 즐기기에 설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을 염려합니다. 사함빠띠 범천의 청과 연꽃의 비유를 거쳐 서로 다른 능력을 지닌 존재들을 보고 가르치기로 결심하지만, 먼저 떠올린 두 스승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산꼭대기에서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굽어보는 비유’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고귀한 구도가 단순한 대상의 포기나 높은 명상 경지에 머무는 일로 축소되지 않습니다.

묵상

‘산꼭대기에서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굽어보는 비유’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일어나십시오, 영웅이여, 싸움에서 이긴 분이여. 빚 없는 대상의 지도자여, 세상을 다니십시오. 세존께서는 가르침을 설하십시오. 이해할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범천의 청과 존재들에 대한 연민을 알고 부처의 눈으로 세상을 살펴보았다.

Uṭṭhehi vīra vijitasaṅgāma, Satthavāha aṇaṇa vicara loke; Desassu bhagavā dhammaṁ, Aññātāro bhavissantī’ti. Atha kho ahaṁ, bhikkhave, brahmuno ca ajjhesanaṁ viditvā sattesu ca kāruññataṁ paṭicca buddhacakkhunā lokaṁ volokesiṁ.

맛지마 니까야 MN 26 성구경 (Pāsarāsi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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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는 「죽지 않는 자리를 깨닫고 가르침을 결심하다」 대목의 10/18번째이며, 앞의 조건을 더 구체적인 사례나 결과로 이어 가는 자리입니다. 태어남·늙음·병듦·죽음·슬픔·오염을 넘어선 열반을 스스로 얻은 뒤, 가르침이 깊고 사람들이 집착을 즐기기에 설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을 염려합니다. 사함빠띠 범천의 청과 연꽃의 비유를 거쳐 서로 다른 능력을 지닌 존재들을 보고 가르치기로 결심하지만, 먼저 떠올린 두 스승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영웅에게 세상을 다니며 가르치라고 올린 청’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고귀한 구도가 단순한 대상의 포기나 높은 명상 경지에 머무는 일로 축소되지 않습니다.

묵상

‘영웅에게 세상을 다니며 가르치라고 올린 청’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수행자들이여, 부처의 눈으로 세상을 살펴보니 눈에 먼지가 적은 존재와 많은 존재, 능력이 날카로운 존재와 무딘 존재, 좋은 성향과 나쁜 성향, 가르치기 쉬운 존재와 어려운 존재가 있었다. 또 어떤 이들은 다음 세상과 잘못의 두려움을 보며 살았고, 어떤 이들은 보지 못하며 살았다.’

Addasaṁ kho ahaṁ, bhikkhave, buddhacakkhunā lokaṁ volokento satte apparajakkhe mahārajakkhe, tikkhindriye mudindriye, svākāre dvākāre, suviññāpaye duviññāpaye, appekacce paralokavajjabhayadassāvine viharante, appekacce na paralokavajjabhayadassāvine vihara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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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는 「죽지 않는 자리를 깨닫고 가르침을 결심하다」 대목의 11/18번째이며, 앞의 조건을 더 구체적인 사례나 결과로 이어 가는 자리입니다. 태어남·늙음·병듦·죽음·슬픔·오염을 넘어선 열반을 스스로 얻은 뒤, 가르침이 깊고 사람들이 집착을 즐기기에 설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을 염려합니다. 사함빠띠 범천의 청과 연꽃의 비유를 거쳐 서로 다른 능력을 지닌 존재들을 보고 가르치기로 결심하지만, 먼저 떠올린 두 스승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눈의 먼지와 능력과 성향이 서로 다른 존재들’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고귀한 구도가 단순한 대상의 포기나 높은 명상 경지에 머무는 일로 축소되지 않습니다.

묵상

‘눈의 먼지와 능력과 성향이 서로 다른 존재들’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푸른 연꽃·붉은 연꽃·흰 연꽃의 못에서 어떤 꽃은 물속에서 나고 자라 수면 아래 잠긴 채 자라며, 어떤 꽃은 물속에서 나고 자라 수면과 나란히 서고, 어떤 꽃은 물속에서 나고 자라 물 위로 솟아 물에 젖지 않고 서 있는 것과 같았다.’

Seyyathāpi nāma uppaliniyaṁ vā paduminiyaṁ vā puṇḍarīkiniyaṁ vā appekaccāni uppalāni vā padumāni vā puṇḍarīkāni vā udake jātāni udake saṁvaḍḍhāni udakānuggatāni antonimuggaposīni, appekaccāni uppalāni vā padumāni vā puṇḍarīkāni vā udake jātāni udake saṁvaḍḍhāni udakānuggatāni samodakaṁ ṭhitāni, appekaccāni uppalāni vā padumāni vā puṇḍarīkāni vā udake jātāni udake saṁvaḍḍhāni udakaṁ accuggamma ṭhitāni anupalittāni udak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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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는 「죽지 않는 자리를 깨닫고 가르침을 결심하다」 대목의 12/18번째이며, 앞의 조건을 더 구체적인 사례나 결과로 이어 가는 자리입니다. 태어남·늙음·병듦·죽음·슬픔·오염을 넘어선 열반을 스스로 얻은 뒤, 가르침이 깊고 사람들이 집착을 즐기기에 설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을 염려합니다. 사함빠띠 범천의 청과 연꽃의 비유를 거쳐 서로 다른 능력을 지닌 존재들을 보고 가르치기로 결심하지만, 먼저 떠올린 두 스승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물속과 수면과 물 위에서 자라는 세 연꽃’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고귀한 구도가 단순한 대상의 포기나 높은 명상 경지에 머무는 일로 축소되지 않습니다.

묵상

‘물속과 수면과 물 위에서 자라는 세 연꽃’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수행자들이여, 그와 같이 부처의 눈으로 세상을 살펴보니 눈에 먼지가 적거나 많은 존재, 능력이 날카롭거나 무딘 존재, 좋은 성향과 나쁜 성향, 가르치기 쉽거나 어려운 존재가 있었다. 어떤 이들은 다음 세상과 잘못의 두려움을 보았고, 어떤 이들은 보지 못했다.’

evameva kho ahaṁ, bhikkhave, buddhacakkhunā lokaṁ volokento addasaṁ satte apparajakkhe mahārajakkhe, tikkhindriye mudindriye, svākāre dvākāre, suviññāpaye duviññāpaye, appekacce paralokavajjabhayadassāvine viharante, appekacce na paralokavajjabhayadassāvine viharante.

맛지마 니까야 MN 26 성구경 (Pāsarāsisutta)

배경

이 카드는 「죽지 않는 자리를 깨닫고 가르침을 결심하다」 대목의 13/18번째이며, 앞의 조건을 더 구체적인 사례나 결과로 이어 가는 자리입니다. 태어남·늙음·병듦·죽음·슬픔·오염을 넘어선 열반을 스스로 얻은 뒤, 가르침이 깊고 사람들이 집착을 즐기기에 설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을 염려합니다. 사함빠띠 범천의 청과 연꽃의 비유를 거쳐 서로 다른 능력을 지닌 존재들을 보고 가르치기로 결심하지만, 먼저 떠올린 두 스승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연꽃처럼 가르침을 받아들일 조건이 다른 존재들’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고귀한 구도가 단순한 대상의 포기나 높은 명상 경지에 머무는 일로 축소되지 않습니다.

묵상

‘연꽃처럼 가르침을 받아들일 조건이 다른 존재들’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수행자들이여, 나는 사함빠띠 범천에게 게송으로 답했다. “들을 귀가 있는 이들에게 죽지 않음의 문이 열렸다. 믿음을 놓아 보내라. 범천이여, 해로움이라 여겨 사람들에게 익숙하고 뛰어난 가르침을 설하지 않았다.” 수행자들이여, 범천은 설법의 기회를 얻었음을 알고 절하고 오른쪽으로 돈 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Atha khvāhaṁ, bhikkhave, brahmānaṁ sahampatiṁ gāthāya paccabhāsiṁ: ‘Apārutā tesaṁ amatassa dvārā, Ye sotavanto pamuñcantu saddhaṁ; Vihiṁsasaññī paguṇaṁ na bhāsiṁ, Dhammaṁ paṇītaṁ manujesu brahme’ti. Atha kho, bhikkhave, brahmā sahampati ‘katāvakāso khomhi bhagavatā dhammadesanāyā’ti maṁ abhivādetvā padakkhiṇaṁ katvā tatthevantaradhāyi.

맛지마 니까야 MN 26 성구경 (Pāsarāsisutta)

배경

이 카드는 「죽지 않는 자리를 깨닫고 가르침을 결심하다」 대목의 14/18번째이며, 앞의 조건을 더 구체적인 사례나 결과로 이어 가는 자리입니다. 태어남·늙음·병듦·죽음·슬픔·오염을 넘어선 열반을 스스로 얻은 뒤, 가르침이 깊고 사람들이 집착을 즐기기에 설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을 염려합니다. 사함빠띠 범천의 청과 연꽃의 비유를 거쳐 서로 다른 능력을 지닌 존재들을 보고 가르치기로 결심하지만, 먼저 떠올린 두 스승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죽지 않음의 문을 열고 설법을 받아들임’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고귀한 구도가 단순한 대상의 포기나 높은 명상 경지에 머무는 일로 축소되지 않습니다.

묵상

‘죽지 않음의 문을 열고 설법을 받아들임’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수행자들이여, 나는 “누구에게 먼저 가르침을 설해야 하는가, 누가 빨리 이해할까?” 생각했다. 수행자들이여, 알라라 깔라마는 현명하고 유능하며 슬기롭고 오래전부터 눈에 먼지가 적으니, 그에게 먼저 가르치면 빨리 이해하리라고 생각했다.’

Tassa mayhaṁ, bhikkhave, etadahosi: ‘kassa nu kho ahaṁ paṭhamaṁ dhammaṁ deseyyaṁ; ko imaṁ dhammaṁ khippameva ājānissatī’ti? Tassa mayhaṁ, bhikkhave, etadahosi: ‘ayaṁ kho āḷāro kālāmo paṇḍito viyatto medhāvī dīgharattaṁ apparajakkhajātiko. Yannūnāhaṁ āḷārassa kālāmassa paṭhamaṁ dhammaṁ deseyyaṁ. So imaṁ dhammaṁ khippameva ājānissatī’ti.

맛지마 니까야 MN 26 성구경 (Pāsarāsisutta)

배경

이 카드는 「죽지 않는 자리를 깨닫고 가르침을 결심하다」 대목의 15/18번째이며, 앞의 조건을 더 구체적인 사례나 결과로 이어 가는 자리입니다. 태어남·늙음·병듦·죽음·슬픔·오염을 넘어선 열반을 스스로 얻은 뒤, 가르침이 깊고 사람들이 집착을 즐기기에 설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을 염려합니다. 사함빠띠 범천의 청과 연꽃의 비유를 거쳐 서로 다른 능력을 지닌 존재들을 보고 가르치기로 결심하지만, 먼저 떠올린 두 스승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먼저 가르칠 사람으로 알라라를 떠올림’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고귀한 구도가 단순한 대상의 포기나 높은 명상 경지에 머무는 일로 축소되지 않습니다.

묵상

‘먼저 가르칠 사람으로 알라라를 떠올림’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수행자들이여, 한 신이 다가와 “세존이시여, 알라라 깔라마는 이레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라고 말했다. 나에게도 그가 이레 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앎과 봄이 생겼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그가 이 가르침을 들었다면 빨리 이해했을 것이므로 큰 손실이라고 생각했다.’

Atha kho maṁ, bhikkhave, devatā upasaṅkamitvā etadavoca: ‘sattāhakālaṅkato, bhante, āḷāro kālāmo’ti. Ñāṇañca pana me dassanaṁ udapādi: ‘sattāhakālaṅkato āḷāro kālāmo’ti. Tassa mayhaṁ, bhikkhave, etadahosi: ‘mahājāniyo kho āḷāro kālāmo. Sace hi so imaṁ dhammaṁ suṇeyya, khippameva ājāneyyā’ti.

맛지마 니까야 MN 26 성구경 (Pāsarāsi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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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는 「죽지 않는 자리를 깨닫고 가르침을 결심하다」 대목의 16/18번째이며, 앞의 조건을 더 구체적인 사례나 결과로 이어 가는 자리입니다. 태어남·늙음·병듦·죽음·슬픔·오염을 넘어선 열반을 스스로 얻은 뒤, 가르침이 깊고 사람들이 집착을 즐기기에 설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을 염려합니다. 사함빠띠 범천의 청과 연꽃의 비유를 거쳐 서로 다른 능력을 지닌 존재들을 보고 가르치기로 결심하지만, 먼저 떠올린 두 스승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이레 전에 세상을 떠난 알라라의 큰 손실’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고귀한 구도가 단순한 대상의 포기나 높은 명상 경지에 머무는 일로 축소되지 않습니다.

묵상

‘이레 전에 세상을 떠난 알라라의 큰 손실’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수행자들이여, 나는 다시 “누구에게 먼저 가르침을 설해야 하는가, 누가 빨리 이해할까?” 생각했다. 수행자들이여, 웃다까 라마뿟따는 현명하고 유능하며 슬기롭고 오래전부터 눈에 먼지가 적으니, 그에게 먼저 가르치면 빨리 이해하리라고 생각했다.’

Tassa mayhaṁ, bhikkhave, etadahosi: ‘kassa nu kho ahaṁ paṭhamaṁ dhammaṁ deseyyaṁ; ko imaṁ dhammaṁ khippameva ājānissatī’ti? Tassa mayhaṁ, bhikkhave, etadahosi: ‘ayaṁ kho udako rāmaputto paṇḍito viyatto medhāvī dīgharattaṁ apparajakkhajātiko. Yannūnāhaṁ udakassa rāmaputtassa paṭhamaṁ dhammaṁ deseyyaṁ. So imaṁ dhammaṁ khippameva ājānissatī’ti.

맛지마 니까야 MN 26 성구경 (Pāsarāsi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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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는 「죽지 않는 자리를 깨닫고 가르침을 결심하다」 대목의 17/18번째이며, 앞의 조건을 더 구체적인 사례나 결과로 이어 가는 자리입니다. 태어남·늙음·병듦·죽음·슬픔·오염을 넘어선 열반을 스스로 얻은 뒤, 가르침이 깊고 사람들이 집착을 즐기기에 설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을 염려합니다. 사함빠띠 범천의 청과 연꽃의 비유를 거쳐 서로 다른 능력을 지닌 존재들을 보고 가르치기로 결심하지만, 먼저 떠올린 두 스승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먼저 가르칠 사람으로 웃다까를 떠올림’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고귀한 구도가 단순한 대상의 포기나 높은 명상 경지에 머무는 일로 축소되지 않습니다.

묵상

‘먼저 가르칠 사람으로 웃다까를 떠올림’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

‘수행자들이여, 한 신이 다가와 “세존이시여, 웃다까 라마뿟따는 어젯밤 세상을 떠났습니다”라고 말했다. 나에게도 그가 어젯밤 세상을 떠났다는 앎과 봄이 생겼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그가 이 가르침을 들었다면 빨리 이해했을 것이므로 큰 손실이라고 생각했다.’

Atha kho maṁ, bhikkhave, devatā upasaṅkamitvā etadavoca: ‘abhidosakālaṅkato, bhante, udako rāmaputto’ti. Ñāṇañca pana me dassanaṁ udapādi: ‘abhidosakālaṅkato udako rāmaputto’ti. Tassa mayhaṁ, bhikkhave, etadahosi: ‘mahājāniyo kho udako rāmaputto. Sace hi so imaṁ dhammaṁ suṇeyya, khippameva ājāneyyā’ti.

맛지마 니까야 MN 26 성구경 (Pāsarāsisutta)

배경

이 카드는 「죽지 않는 자리를 깨닫고 가르침을 결심하다」 대목의 18/18번째이며, 앞선 논증을 맺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자리입니다. 태어남·늙음·병듦·죽음·슬픔·오염을 넘어선 열반을 스스로 얻은 뒤, 가르침이 깊고 사람들이 집착을 즐기기에 설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을 염려합니다. 사함빠띠 범천의 청과 연꽃의 비유를 거쳐 서로 다른 능력을 지닌 존재들을 보고 가르치기로 결심하지만, 먼저 떠올린 두 스승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카드의 핵심은 ‘어젯밤 세상을 떠난 웃다까의 큰 손실’입니다. 화자와 청자, 반복되는 호격, 조건과 부정을 원문 순서대로 함께 읽어야 고귀한 구도가 단순한 대상의 포기나 높은 명상 경지에 머무는 일로 축소되지 않습니다.

묵상

‘어젯밤 세상을 떠난 웃다까의 큰 손실’이라는 대목을 지금 내 말과 반응에 비추어 보면 어떤 작은 장면이 떠오르나요? 불편함을 참아 내거나 자신을 탓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안전을 지키면서도 마음과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필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을까요?